오늘 다니엘이 줄자를 가지고 놀았다. 줄자를 길게 잡아 당겼다가 놓으면 자동으로 되감기는 동작이 재미가 있었나 보다. 감길 때 빠르게 감기기 때문에 조금은 위험해 보였지만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좋아 보여서 그냥 두고 지켜보았다. 그런데 녀석이 줄자로 TV크기도 재어 보고 집안에 있는 모든 사물의 크기를 쟀다. 그리고 그것이 정확히 몇cm인지 알아 맞추었다. 처음에는 짧은 길이만 재어 보더니 조금씩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아주 길게 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놓으니 순식간에 줄이 자동으로 감겼다. 그 순간 다니엘이 터트린 말이 "깜짝 놀랐다"였다. 녀석의 외마디 비명에 이런 문장도 익혔구나 생각하니 나 자신이 '깜짝 놀랐다'. 녀석이 겁이 많아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좀처럼 노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줄자는 겁이 나면서도 신기한가 보다. 한 참을 놀다가 아니나 다를까 결국은 줄자에 손이 베었다.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녀석은 피나는 손가락을 들고 나에게 달려와 '피난다'라고 외쳤다. 후시딘을 발라 주었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흡족하지 않았나 보다. 테이프를 붙여 달란다. 며칠 전 동생이 다리를 다쳤을 때 엄마가 1회 밴드를 부쳐 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밴드를 부쳐 주었다. 자기 손에 흐르는 피를 보며 '피난다'소리를 할 수 있는 아들이 자랑스럽다.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피를 좀 흘리는 것은 대수롭지 않다. 피 흘리는 안타까움보다 '피난다' 이 소리를 할 수 있는 아들이 고맙기 때문이다. 내일은 줄자로 이 녀석의 키를 재어 보아야겠다.  

줄자로 물건을 재다

 친척중에 미술교습소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 미대졸업반이었는데 우리가정의 형편을 이야기하고 가정교사로 초청했다. 다니엘에게 하루를 지도해 보더니 자신이 없다고 했다. 다니엘이 가르친대로 따라하지 않고 수업내내 자기 고집대로 했기 때문이다. 예상한 결과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그래서 다니엘에게 초점을 두지 말고 동생인 다혜중심으로 가르치라고 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성공이었다. 그동안 특수교사가 우리집으로 와서 다니엘을 개별지도할 때 다혜가 오빠를 많이 부러워했다. 그런데 미술선생님은 자기선생님으로 생각하고 찰싹 달라붙어서 애교를 떠는 것이었다. 갑자기 선생님을 빼앗긴 다니엘은 시기심이 생겨서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때때로 고집을 피울 때마다 무시하고 선생님이 다혜와 공부했기 때문에 다니엘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이 원리는 필리핀에 있을 때부터 터득한 정상아동 우선원칙의 원리이다. 덕분에 요사이 다니엘과 다혜는 미술선생님께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고 열심히 색칠공부를 한다.
 

정상아동 우선원칙....

오늘은 아이들을 데리고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를 보러갔다. 다니엘이 빛과 소리에 민감했었기 때문에 문제행동을 극복케 돕고 싶었다. 1년 전 이었다면 다니엘을 데리고 컴컴한 극장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다니엘이 상태가 조금 호전이 되었으니 문제행동들을 극복하도록 하나씩 도전해 볼 참이다.(나와 흡사함-1.퍼시픽랜드를 시도,2.비행기 시도등)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서도 다니엘이 컴컴한 소극장에 들어가려고 할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염려와 달리 표를 끊고 극장에 들어가기까지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이것으로도 흡족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다니엘은 극장의 분위기와 천정을 살피느라 분주했다. 연극이 시작되면서 다니엘이 가장 싫어하는 소음과 현란한 사이키 조명이 눈부셨다. 다니엘은 고개를 숙이고 귀를 막았다. 나는 다니엘을 꼭 껴안아 주었다. 다니엘의 두 손을 꼭 잡고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 다니엘아 하나도 무섭지 않지. 빨간 색깔이 너무 이쁘지.  조명이 평온해지고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오자 다니엘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배우들을 쳐다보았다. 중간에 사이키 조명이 돌아갈 때면 어김없이 고개를 숙였지만 대체로 고개를 숙인 시간보다 얼굴을 들고 연극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연극을 마치고 나오면서 동생 다혜는 신이 났다. 어린이집에 가서 뮤지컬 본 것을  자랑한단다. 다혜를 보면서 너는 참 오빠를 잘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가 정상이면 네가 이런 곳에 어떻게 오겠니? 아이들이 뮤지컬을 보고 나서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했다. 아이스크림은 초코와 바닐라 두 종류였다. 동생 다혜가 바닐라를 선택해서 바닐라 아이스크림 2개를 주문했다. 그런데 다니엘이 바닐라를 먹지 않고 초코를 먹겠단다. 아줌마는 기계에서 아이스크림을 이미 빼내었기 때문에 되돌릴 수도 없어 난감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3개를 살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아이가 장애아인데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고 하니 아주머니는 웃으시며 아이스크림을 바꾸어 주셨다. 장애아를 이해하고 번거로움을 참아준 그 아주머니가 고맙고 또  아이스크림 파는 아줌마 같은 한 사람으로 인해 이 사회 전체가 따뜻하게 보인 하루였다. 한편 아이가 말을 제대로 못한다고 그의 의사를 묻지 않은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아이가 말을 잘 하지 못해도 자기가 좋아하고 맛있어 하는 기호도는 다 가지고 있다. 우리 아이를 개별적으로 인격적으로 그의 의사와 선택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요즘은 거의 매일 다니엘, 다혜를 데리고 앞산을 오른다다니엘에게 푸른 나무를 보여주고 등산로를 오르며 집중력을 길러 주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자주 산을 오르면서 다리에 힘이 많이 붙었다. 다니엘은 거의 다람쥐 수준이 되었다. 오늘은 산을 내려오면서 비를 만났다. 날씨를 예측하지 못해서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다. 내려올 때는 항상 삭도를 타고 내려온다. 그런데 자주 타는 삭도의 비용이만만치 않다. 매표소에서 아이들 두 명과 함께 타는데 어른인 나 혼자 표만으로 타게 허락해 주면 타고 그렇지 않으면 타지 않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교육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이렇게 절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생아빠가 경제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나는 이미 다방면에서 터득하고 있다. 늘은 셋이서 삭도를 타고 내려오는데 비를 많이 맞았다. 우리는 비에 젖은 제비들처럼 서로의 몸을 얼싸안고 비볐다. 녀석들이 비를 맞으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재미있어 했다. 다니엘이 다혜 보다 더 좋아했다. 장애아이들은 항상 이색적인 경험을 좋아한다. 나 혼자만 괜히 마음을 졸였나 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여름에 비올 때 다니엘이 우산을 쓰지 않고 내리는 비를 킥킥거리며 맞았던 기억이 난다. 내년 여름에는 소나기가 쏟아질 때 다니엘과 함께 옷을 흠뻑 적시며 비를 맞아보리라.  녀석처럼 킥킥거리면서.
 

다니엘이 위험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30개월 때도 도로에 뛰어들어 교통혼잡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얼마 전 시골에 갔다가 도로에 뛰어들었다가 아주 위험한 상황을 맞았다. 어릴 때는 차가 달려오면 마치 박치기라도 할 듯이 정면으로 뛰어들었는데 이제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차가 오면 피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 동안 자동차 피하는 훈련을 시키고자 자전거를 가르쳤다. 세 발 자전거를 타다보면 자기가 운전자가 되어 핸들을 조작해야 한다. 또 넘어지면 다친다. 그래서 움직이는 대상은 마음대 조절이 되지 않으며 부딪히면 아프다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했다. 자전거훈련이 조금 도움이 되어 차를 의식하는데 까지는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미흡한 수준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한번에교통사고를 겪을 것만 같았다. 문제는 부모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부모가 보지 않는 상황에서는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경북대 캠퍼스에 데리고 가서 자동차를 피하는 훈련을 적극적으로 시키기로 했다. 경대는 캠퍼스 안이어서 속도를 낼 수 없다. 설령 다치더라도 가벼운 찰과상정도를 입을 것이다. 나는 멀찍이 다니엘을 따라다니면서 아이가 차가 올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체크해 보기를 원했다. 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연히 피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한마디로 아슬아슬했다. 차가 달리는 상황에서 순간순간 심장이 멎는 듯 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되기까지는  가능하면 그냥 두었다. 때로는 운전사가 아이를 꾸짖었다. 물론 다니엘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위험한 상황을 맞으면서 자기 스스로 차를 피하기 시작했다. 이날 이후로 골목에서 차가 오면 '차온다' 하고 공습경보를 울리는 연습을 한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지만 내가 '차온다'하고는 아이를 붙잡고 적극적으로 벽 쪽으로 대피하는 연습을 시켰다. 지난 1-2개월의 훈련결과 요즘은 제법 차가 오면 의식적으로 피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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