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긴긴 연휴가 끝났다

이젠 내일부터 또 6시반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또 피곤하다며 어떤 핑계를 나에게 대게 될지 모르겠다

살도 찌고 몸도 게을러지고 정신도 나태해졌다.

정신력 문제라지만 그것만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명탁이가 오늘도 조금 놀라운 말을 했다

가을은 보통이라고...

무슨말이지?라며 캐묻다보니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데 가을은 보통이란다 ㅎㅎㅎ

그리고 사회숙제를 하려고 교과서를 열었는데 밑에 그림같은것이 그려졌다가 지워져있어서 물었더니

낙서를 했다고 한다.

뭘 그렸니?라고 물었더니 로보트를 그렸다고 한다

조금씩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했었는지가 명확해지고 있다.

이틀전 금요일 크라리넷연주를 하다가 명탁이가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도 놀라고 같이 연습하는 현준이형도 놀랐다

지금 명탁이는 기본기연습을 한다고 계속 계이름대로 순차적으로 부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근데 그게 자꾸 반복적으로 한다는 생각에 악보를 보지않고 있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그럼 선생님의 질타가 일어나고 명탁이가 납득이 안되면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이틀전은 너무 뜬금이 없었다

불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거라 다들 어안이 벙벙핬다

당사자는 일본어로 불었다고라고 하는데 이해를 해줄수가 없어 답답했다

그때 내가 들어가서 짐을 싸라고 했다 하기싫으면 가자고

근데 그냥하겠다고 해서 약속을 하고 계속 진행했다

근데 오늘은 정말 잘했다...

충격요법이 이렇게 필요한지 답답하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옷을 사기위해 옷집에 들어갔는데 계속 혼잣말하고 뛰어다니고 아직도 멀었구나싶어 속상했다.

잠자리에서도 계속 혼잣말을 하기에 그러면 수업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내일은 집에 있자고 하니 쉿하며 검지를 자기입에 덴다

뭔가 다 알긴 아는거 같은데 자기통제가 안되는것이 가장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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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3일 난 다시금 우리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피아노학원까지 하교를 하고 찾아가길래 모든게 다 됐는 줄 착각했었나 보다.

피아노 학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보니 아이의 방의 문은 열려 있고 아이는 무에가 그리 못마땅한지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이가 혼잣말을 하면서 막 왔다갔다하는 바람에 학원에 다니는 아이가 집에 가서 장애아이가 학원에 있다고 말했다한다.

아이가 피아노학원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주면 집에서 바로 나오시라고 정중히?부탁을 하신다.

나도 순간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장애인처럼 그 분은 몇차례에 걸쳐 얘기하셨다.

예전같으면 이런 상황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미안하고 뭔가 죄를 지은것처럼 웅크려졌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마음이 심란했다.

자꾸 우리 아이는 아직 너무 멀었구나라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졌다.

집에 도착해선 맥주를 마시며 눕게 되어버렸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명탁이는 무지 왕창 성장해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1. 집에서는 이불 개고 펴기, 상 펴서 닦고 상차리는거 도와주기, 5분거리의 할머니댁에 심부름 가기,

클린하우스에 쓰례기 버려서 오기

우리집에서 상엽이를 데리고 상엽이네 집에 데려다 주기

빨래 널고 들이기, 혼자 목욕하기, 양치하기, 라면 끓이기

브라우니 만들기, 계란후라이 하기, 간단한 샌드워치만들기

혼자서 간단한 장보기, 돈을 지불하고 거스름돈 받기,

10000원을 주며 5000원어치만 사먹으라고 하면 영수증을 챙겨가며 5000원미만으로 사먹기,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혼자 대처하기

 

2. 학교에서는 특수반에 가지 않고 원반에서 수업하기

수학 영어는 점수도 상위권 하지만 국어, 사회, 과학은 하위권...

자기 화분에 물주기, 작은 빗자루로 청소하기

칠판 닦는거 도와드리기, 체육 수업 동참 가능등 원반 아이들과 동일한 활동이 30%정도 가능하다

수업시 활동과제를 할 때는 옆의 친구것을 베끼기도 한다

미술활동이나 음악활동은 70%정도를 따라한다.

 

3. 치료실에서는 취학전 수용, 표현 언어발달 척도 결과, 2015년11월: 수용언어 4세 8월, 2016년 9월: 수용언어 5세 8개월로 10개월만에 수용언어는 1세가 늘었고 표현언어는 4세가 늘었다.

6세 때 언어치료를 하고 초등 2학년부터 4학년까지 놀이치료를 위주로 한 언어치료를 했다

지금은 강명실선생님과 언어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임외국클리닉에서 야외활동을 위해 그룹으로 모여 한달에 두번 야외에서 수업을 한다.

치료는 아니지만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배우고 있으며

집에서 일기쓰기를 하기위해 컴퓨터에다가 기록하게 하며 컴퓨터를 게임이외에도 활용하도록 가르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감정표현지도프로그램을 엄마와 같이 하며 학교 숙제를 위해 아이스크림 홈런을 활용해서 스스로 숙제를 할 수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외 아직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혼잣말을 큰소리로 하고 뭔가에 꽂히면 웃음이 멈추지 않고 키가 172cm나 되는데 캥거루처럼 펄쩍펄쩍 뛰기도 한다.

식사시에 손을 아직도 쓰며 옷을 단정히 정리하는것을 자발적으로 하기 힘들며 청소기 돌리기, 마포걸레질,설거지

옷개기, 수건개기, 손빨래, 실내화빨기,버스 혼자서 타기, 자기방 정리하기등 해야할 일도 산적되어 있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기적같다.

일련 후 또 다른 기적을 꼭 경험하리라.

오늘 같은 절망감은 빨리빨리 털어버리자.

명탁어멍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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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명탁군과 버스나들이를 했다.

요즘 명탁이가 버스와 기차, 특히 고속철도에 필이 꽂혔다.

그래서 거의 한달전부터 졸라댔던것을 지금이야 하게된것이다.

늦게 들어간 사이버대학에서 기말고사가 저번주 일요일에 끝났기 때문이다.

내 수업이 있는 날은 데리고 나올 수 없어서 수업이 없는 이 수요일을 명탁이와의 데이트날로 잡은 것이다.

그런데 원체 차로만 다녔던지라 버스로 다니니 너무 피곤하다.

그런데 명탁이는 너무 신났다.

우선 초등학교에는 차로 픽업을 했고 치료실앞에 차를 세워놓고 거기에서 버스로 중앙로에 가기로 했다.

치료실에서 수업시간은 4시40분..

그런데 차에서 이동하는중 본 시계에서는 2시 6분이었다.

그래서 치료시간까지 시간이 얼마가 남았느냐고 물어보았다.

2시간은 금방 나오는데 분계산이 서툴러서 두번정도 가르쳐주었더니 바로 알아듣고 대답한다. 기특 기특^^

그때 소방차가 지나갔다. 저건 뭐하러 가는거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한다. 두어번 물어보고 선택형질문으로 수준을 낮췄다. "도둑 잡으러 가는거야? 불 끄러 가는거야?"

그랬더니 바로 대답이 나온다.

치료실앞에 차를 세우고 버스정류장까지 가는데 생각해보니 현금이 없었다. 그래서 농협에 현금인출도 하고 잔돈도 바꿀겸 갔다. 돈을 인출한 후 만원을 주며 천원짜리로 바꿔서 오라고 했다. 카운터에는 사람이 다 차 있었고 잠시 기다리데니 빈곳으로 간다. 그래서 만원을 내민다. 그런데 천원짜리를 바꾸겠다는 말을 안해서 직원이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천원짜리 주세요라 말한다 이것도 난 기특했다.

그런데 돈을 받고 나오는데 확인도 안할뿐더러 돈을 야무지게 쥐지도 못한다. 옆에서 돈세는법부터 가르쳐주고 농협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를 기다리며 지금 오는 버스는 몇번 버스고 이것은 중앙로를 가네마네하며 얘기를 하는데 버스가 왔다.

난 버스를 너무 오래간만에 타서 버스비를 몰라 명탁이에게 800원을 쥐어주었다. 그런데 400원인것이다.

아이는 손에 든 것을 모두 집어넣으려고 했고 난 그것을 제지하며 400원이라서 너는 너무 많이 넣으려고 하는거다라고 가르쳤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인지가 많이 모자라다..

버스를 내려 길을 지나다 나이키매장에 들어갔다. 여름용운동화를 사줄 셈이엤다.

5월5일 어린이 날...

어린이 날의 의의를 찾아봤다.

어린이 애호사상의 함양 및 건전육성을 위한 범 국민적 분위기 조성 이란다.

아이들을 데리고 항공우주박물관이라는 관광지를 갔는데 정말 아이들과 같이 온 어른들까지 해서 인산인해였다.

난 너무나 복잡해서 그냥 나오려고 하는데 명탁이와 미현이가 같이 뭘 좀 타겠다한다.

그래서 아이들만을 보내놓고 난 불안해서 아이의 보호자 역할을 하기 위해 같이 들어갔다.

한 곳을 아이끼리 들어갔다 나오더니 딸이 갑자기 어쩔 줄을 모른다.

학교 친구가 왔단다.

실은 딸 아이가 동생이 장애라는 것 때문에 1학년 때 애자소리를 들었다. 아이도 나도 많이 아팠었다.

그래서 제주시로 전학을 올 때는 같은 학교로 진학을 하지 말아야 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선생님께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그 결과 괜히 아이에 대한 선입견만 선생님이 갖게 되는 이상한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딸 아이는동생의 장애를 친구들에게 숨기기로 했다. 4학년 정말 심하게 왕따를 당하고 난 후의 결론이었다.

정말 놀랍게도 우리 아인 교우 관계부터 모든 면에서 밝아지고 또한 자신감이 넘쳤다.

우린 질풍노도의 시기인 이 중학교 과정만 넘기면 친한 친구에게는 말하자며 그렇게 동생의 장애사실을 숨겨온 것이다.

 그런데  난 오늘 무척 놀랐다.

참 당당한 우리 큰 아이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며 친구가 왔다고 나 그냥 나가야 겠다며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는데 정말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아이의 얼굴도 너무 가슴이 아팠다.

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다는 것이 놀림감이 되는 이 사회...

어린이 날은 건전육성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점점 이 사회가 조금 모자라거나 다른 이들에게 더 모진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아이가 얼굴이 파래지면서까지 숨기고 싶어하는 이 진실이 사회에서 정말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는 사회가 오길 정말 정말 바랄 뿐이다.

 

대학교 강의를 들어야 한다며 아이를 아빠와 함께 나들이를 보냈다.

봄  기운을 물씬 만끽하며 탐라 도서관엘 갔구만 자리를 모두 곽 차 있고 난 아쉬움을 뒤로 집으로 왔다.

얼마나 있었을까 명탁이를 도와주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명탁이한테 전화 와신디, 찜질방 못 갔다며 화 난다고... 아빠 없다고 "

빨리 전화를 해 보란다.

이게 무슨 말인가 남편 전화로 부리나케 전화를 했다.

명탁이가 받는다.

"명탁아" "네"

"명탁이 아빠 옆에 있어?" "네"

"명탁이 아까 은지 이모한테 전화했어?" "떼 쓸거에요"

"뭐라고? 왜 떼 쓰는데?" " 찜질방 안갔었어요. 떼 쓸거에요"

"아~ 명탁이가 가고 싶었는데 아빠가 어제 사우나를 다녀 와서 안간다고 했구나?" "떼 쓸거예요"

아이의 목소리는 커가고 난 가시방석처럼 엉덩이를 들썩이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옛날처럼 아이가 말썽 피운다고 많이 혼내지는 않을까? 남편의 태도가 어떻게 바뀔지 너무 불안했다.

"명탁아 아빠 좀 바꿔줄래?" "네"

순순히 아빠에게 수화기를 주는 아들이 너무 대견스러우면서도 일의 추이가 너무 궁금해 질문이 달린다.

"뭔일 이예요?" "사우나 다녀 와신디 찜질방만 가켕 햄네"

"아이 때리거나 하는 건 절대 안돼요!" "응 안 때린다. 걱정말라 집으로 감쪄"

남편의 목소리에 부아가 안 실려 있어서 안심하며 전화를 끊고 은지에게 전화해서 아이에게 전화하여 추이를 살펴 보라 했다.

그런데 너무 경황이 없어 생각을 못했는데 우리는 명탁이하고 통화를 하고 있었다.

와우!!!!!!!어메이징!!!!!!!!!

명탁이가 이제는 통화가 가능하게 되었던 거다.그리고 통화만으로 행동의 절제가 가능했던 것이다.

언빌리버블!!!!!!!!

나중에 남편의 무용담을 들으니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오줌을 눈다든지 막 떼를 쓴다던지..

남편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보이나 난 아이가 성장ㅎㅆ다는 사실만으로 오늘 너무 행복한 날이다.

하루 하루 성장하는 내 아들 ^^ 사랑해^^^^

오늘은 사랑하는  내딸의 장장 13번째의 생일이다. 중학교 1학년 ...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도 겪어내는 우리 딸, 친구들에게 받은 쪽지같은 편지에 감동이 파노라마치는 엄청 착한 내 딸...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생일케잌을 안사가지고 왔다며 버럭 화내는 남편과 한바탕해서 결국 케잌도 나의 저녁식사도 날라 간

참 기분이 꿀꿀한 저녁이다.

사소한 것에도 화가 나며 아들까지 한대 퍽!

사람에게는 한계라는 게 있는지 나에게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에너지가 뚝 떨어져 무척 화가 났었다.

근데 아이들에게 많이 창피하고 미안하다.

오늘도 난 좀 더 참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내일 딸에게 맛있는 거 사주며 생일 망친 죄값 치뤄야 하겠다ㅠㅠ

42년을 살았다. 어릴적엔 객기도 부려봤고 일본,중국 유학도 가 봤고 가족 싸그리 미국으로 이민을 가 보기도 했다.

19살이후로 한국에 산 세월이 9년밖에 되지 않는다.학교에 다닐때는 한국사회에 대한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지만 고민했었던 나에게 일본유학은 학생이면서도 알바를 하지 않으면 한달후의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고 1년간의 중국유학은 치기어린 유랑이었다.하지만 옛어른들 말슴처럼 배우면 남을 주지는 않아서 짧게 배워 내 삶에 별 도움이 될 것같지 않았던 중국어가 미국에 있을 때는 꽤 유용히 써먹을 수 있었으니 독약만 아니면 먹어둬라는 것처럼 뭐든지 배워두면 좋다는 경험을 얻었다.

어른이라는 세계에 입문하고 2/3를 외국에서 살았으니 2005년도부터 시작된 한국생활은 말이 귀국이었지 나에게는 낯선 이국과 다름이 없는 한국생활이었다.옆집일에 간섭하는 이웃분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사돈의 팔촌의 경조사까지 쫓아다녀야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장례식에는 보낸이를 너무나 그리워하며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혼식에는 정말 잘살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참석하고 싶었다.하지만 한국은 아니었다.생전 만나보지도 못해봤던 이의 장례식에 가서 (물론 친한분의 부모님이나 형제지간이라면 친한 사람을 위로하기위해 간다지만) 애도를 보내야 했고 안면식도 없는 사람의 결혼식에 가서 마음에도 없는 축하를 해야했다.축의금이나 부조금도 주위의 사람과 맞춰가며 해야하고 그런 곳에 잘 다니지 않으면 인색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다.

지금은 익숙해졌다.아마 내 남편이 외국사람이었으면  지금도 겉돌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내년이면 한국생활10년을 맞이하며 이제야 한국식 사고에 많이 익숙해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 난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한국화가 된다'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일까? 부정적인 의미일까?하고....

또한 자폐아의 엄마로 산다고 의식하고 사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일까? 부정적인 의미일까하고...

오늘 명탁이학교의 특수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엄마가 너무 아이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다보면 결국은 아이가 너무 함들어져 포기하더라구요.그래서 결국은 특수학교를 거쳐 시설로 보내는 걸 봤습니다"고...

몇주전 괴도한 스트레스때문에 아팠었는데 그러면 안된단다.

그런데 난 의식적으로 아이를 걱정안하려고 하는게 더 어렵다.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도와주세요라고 sos를 치고 싶은데 명탁이 엄마는 너무 나대는 사람이란다.

이 사회가 우리와 같은 아이를 보는 시각을 바꾸기위해 고민을 해보자고 하면 뭔가 하면서 얘기하란다. 그런데 혼자서 뭔가를 하기엔 너무나 힘든 한국사회인데....

뭔가 시도를 해도 말들이 많고 그 말들이 자꾸 나자신을 늪으로 빠뜨린다. 그래서 에전엔 뭔가 해 보려고 했는데 하려고 하는 의지 자체가 꺾인다.

분명 한국사회는 복지부분에 관해서 더 나아질 것이다. 작은 학교를 외치고 아름다운 가게를 꾸리며 소외되고 손이 안가던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박원순씨가 서울 시장이 된 걸 보면 내년에는 손톱만큼씩 좋아질 것 같은 희망도 보인다.

우리 자폐부모들끼리 앉아서 이런 얘기를 나눈적이 있다. 우리들을 화장하면 사리가 나올거라고...

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는 있지만 자폐아동의 엄마이기에 치료사의 역할도 사회운동가의 역할도 심지어는 보조원의 역할까지 은근히 강요받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할 말을 다 못한 채 늘 소외감에 가슴이 시리며 죽는 날까지 아이를 위해 살 날을 너무나 두려워하며 살아가기에 우리는 가슴에 돌덩어리 몇톤씩을 메달고 사는 것이다.

인내라는 아름다운 포장아래 자폐아동의 부모는 삶의 힘든 여정을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이 되어서야 정말 80%정도 몸상태가 돌아온것 같다.

 추석 이틀전부터 아픈것이 오늘까지 끌다니,그것도 정말 지긋지긋하게 아팠다.

하지만 이번일을 계기로 느낀 바 있었으니 그 첫번째가 'Simple is the best'다.

명탁이와 공원을 가도 나는 늘 목적이 있었다. 아이에게 인내심을 키워줘야 한다등등...

하지만 오늘은 그냥 누나와 명탁이를 데리고 삼무공원에 갔고 그냥 꽤 재미있게 놀았다.

놀고 있는데 노랫소리가 나 발길을 옮긴 장소에서 낯선이가 하는 공연도 봤다.

명탁이가 그 공연을 보는데 약간 감격까지 했다.

다른이들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그룹이라 뭔가 건성으로 듣는데 명탁군은 "좋아요"하며, 다른 아저씨가 자신의 시야를 가리자 일어서면서까지 무대를 보고 싶어 했다.

엄마와 자리를 바꾸자 시야가 확보되어 그런지 박수까지 치며 공연을 본다.

롯데월드에서 삼바공연을 볼때 집중하고 보고 있고 즐기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던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행복해 하는 아들을 위해 무료건 유료건 많은 콘서트나 공연을 찾아 다녀 봐야겠다.

그냥 이렇게 놀란다. 전공서적이니 뭐니 이제는 책따위보다는 아이와 함께 놀고 생활하려 한다.

명탁이를 키우며 내 자신의 성격이 많이 변했었다.

매사에 긍정적이었던 내가 의심많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갔고 아이를 둘러싼 사회에 대한 불만이 자꾸 화를 마음속에 키웠다.

그래서 드디어 아팠나 보다.

이러고 살지 말아야 겠다. 한국으로 돌아와 6년 이제는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이들은 곤히 잠들었다. 행복한 꿈만 꾸기를 ...

특별한 엄마가 되기를 꿈꾸던 나는 이제야 특별함은 평범속에 있다는 너무 쉬운 진리를 알았다.

그리고 평범한 엄마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너무나 평범한 꿈을 야무지게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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