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1일 -등교길에서 생긴 일-
내 차에는 매일 아침 5명의 아이들이 타고 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에 함께 간다. 다니엘은 자기 반의 친구들과 아침마다 반 강제로 차안에서 만나야 된다. 차안에서 녀석은 친구들과 부딪히는 것이 힘든가 보다. 내가 다니엘아, 친구에게 인사해야지. 하면 녀석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창밖의 전봇대나 헤아린다. 아니면 한국어도 아니고 필리핀말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낸다. 처음에는 반 친구들이 다니엘과 대화를 꺼려 하고 자기들 끼리만 떠든다. 그러면 나는 속상하다. 친구들과 한 공간에 있는 이 짧은 시간을 놓치기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다니엘에게 말을 걸도록 유도한다. 그동안의 노력이 성과가 있었는지 오늘은 다니엘이 전봇대를 헤아리기 전에 바울이가 아! 저기 전봇대다. 하고 먼저 시작했다. 다니엘의 관심사를 친구가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그러자 모두들 전봇대를 찾느라고 난리다. 또 녀석이 오늘도 이상한 말을 하니까 친구들이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녀석은 신이 난 듯 더 이상한 말들을 지어냈다. 친구들이 깔깔 웃으며 따라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간판의 글씨를 읽기 시작했다. 자기가 지어낼 수 있는 이상한 말들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애아들은 자기의 욕구가 다 채워지면 스스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아 오는 법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전봇대만 헤아리는 아이는 조금 이상한 아이지만 간판을 읽는 것은 일반아동들도 다 하는 것이다. 다니엘이 스스로 일반아동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상황으로 돌아 온 것이다. 다니엘이 차안에서 친구들에게 관심갖고 그들에게 다가 가기가 어렵지만 친구들이 자기의 이상한 행동을 따라 해 주었을 때 친구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일반아들이 장애아를 모방해 주면 장애아도 일반아동을 모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통합환경에서 일반아동의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자기 자식이 장애아를 모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염려할 것이 못된다. 일반아동이 장애아를 모방한다고 절대로 장애아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려서부터 장애아와 함께 하는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인성교육이 되어 도움이 필요한 친구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따뜻한 인간미를 갖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입시위주의 열악한 교육환경에서는 도무지 배울래야 배울 수 없는 것이 인성교육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주장한다. 장애아와 일반아동이 통합된 환경에 있으면 장애아동보다 더 유익을 얻는 쪽은 일반아동이다. 장애아는 누구나 어디를 가든 일반아동과 함께 살아야 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일반아동은 장애아들과 함께 할 기회를 다 갖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 차를 타고 다니는 바울이,예은이,하영이가 모두 복되다고 생각한다. 감히 자폐성향을 가진 우리 아들을 만나고 그의 사고세계에 동참하는 특혜를 누릴 수 있다니... 어릴 때부터 자신의 지성과 감성으로 다 깨달을 수 없는 대상들을 자주 접하는 것이 그 아동의 IQ,EQ계발에 좋다고 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자기가 갖고 있던 지각의 틀을 깨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단히 자신이 갖고 있는 지각의 틀을 깨는 과정을 통해서 사고력,상상력이 풍부해 지는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영재교육에 관심이 많다. 우리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영아에게 영어방송을 과다하게 청취하게 해서 정서장애를 만드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IQ,EQ가 모자라MQ(도덕지수)까지 들먹이며 좋은 교재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IQ,EQ,MQ를 한꺼번에 교육하는 방법은 장애아와 통합된 교육기관에서 교육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니엘이 졸업한 어린이 집에서 장애아와 일반아동이 2:8의 비율로 통합되어 교육을 받는데 그런 환경에서 자란 일반아동이 얼마나 똑똑하고 인성교육이 잘 되어 있는가를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어린이집은 KBS에서 방송이 되기도 했다. 이 중요한 사실을 일반아동의 부모들이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나 애통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바울이와 하영이의 부모들에게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다. 특히 바울이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장애가 있는 내 아들과 한 반에 짝꿍이 되게 허락해 주었다. 바울이는 교실 밖으로 나갈 때는 항상 다니엘을 챙긴다. 자기도 적응하려면 힘들텐데 더 못 따라 하는 다니엘까지 챙겨 주려면 힘이 들게다. 우리 속담에 검은 자의 곁에 있으면 나도 검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수동적으로 회피적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내가 희면 검은 자가 내 곁으로 와서 그도 희게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살아야 한다. 바울이 부모가 그런 철학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 나는 바울이가 다니엘로 인해서 더욱 총명하고 좋은 인성을 갖춘 아이로 자라날 것을 믿는다. 내일 아침이 기다려 진다. 다니엘이 내일은 차안에서 무엇을 쳐다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