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로, 스페라’ - 나는 희망한다, 당신도 희망하라 -
사랑하는 아이가 점점 어른이 되어 갑니다. 코밑에는 검게 수염이 자라고 양복을 입으면 장가라도 가도 좋을 만큼 참 잘 컸습니다.
이 아들이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27개월에 아이의 장애를 알았고 이 아이와 함께 14년동안 장애를 극복한다고 많은 노력을 했지요.
방학이 되면 서울로 치료를 하러도 다녔고 3년여 살았던 서귀포에서는 치료를 받기 위해 제주시로 매일 출퇴근, 심지어 4개월 정도는 제주시에 있는 통합어린이집에 보낸다고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매일아침마다 아이를 실어 날랐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아이가 보이는 폭력성을 잡아 보겠다고 지인이 운영하는 민박을 통째로 빌려 한달반 동안 아이하고 둘만 살아 보기도 했고 아이의 청각 과민성을 익숙함으로 고쳐보겠다고 관광지에 있는 공연장에서 우는 아이를 데리고 공연장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공연이 끝날 때까지 아이를 견디게 하는 모진 엄마이기도 했습니다.
헬렌켈러의 기적이 우리 아이에게도 일어나기를 기도하기도 했고, 템플그렌딘처럼 우리 아이가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데 혹시나 내가 놓치는 게 아닐까하며 이것저것 교육을 하러 쫓아 다니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결과인지 지금 우리아이는 중증자폐성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긴 합니다. 혼자 버스를 타고 놀러갈 수 있으며 혼자 돈이나 카드를 가지고 쇼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인터넷쇼핑도 할 정도니 교육이라는 것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올해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아이가 사회로 나가기위하여서는 너무 큰 장벽들이 보이기 시작했지요.
사회인이 되기 위하여 취업을 하려고만 해도 갈 곳이 없었고 또 간다 해도 아이를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곳은 정말 극소수임에 현실을 개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방이 막혀 숨을 쉴 수도 없는 공간에 아이와 둘이 툭 떨어진 것 같은 고립감....
혼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장애를 극복한다는 것은 무척 힘이 드는 일이며 또한 어느 정도 기능적으로 좋아진다고 해도 사회가 손을 내밀어 주지 않으면 아이는 사회에 나가 자기의 위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엄마인 저를 너무나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개최한 통합학급에 있는 아이들의 부모모임 1주년에 불청객으로 참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치부부터 고등부까지 총망라하여 통합학급에 있으면서 자기의 귄리를 찾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이 힘을 합쳐 아이의 서포터가 되어주기로 한 모임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저는 제주에 가면 통합학급에 있는 고등부 발달장애친구들의 자조모임과 그 어머니들의 모임을 만들어 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주에 와서 서울에서 들었던 얘기들과 내가 아이를 키우며 또 주위를 돌아보며 느꼈던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크게 3가지 테마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직업 재활 관련, 일상생활자립 관련, 슬기롭게 여가를 활용하는 방법.
모임의 방향성을 잡고 주위에 멘토가 되어 주실 분들께 일일이 전화를 드리며 어떻게 이 부분을 구체화할지를 고민했습니다.
2020년 4월 18일, 뜻을 같이 하기로 한 어머니들을 모시고 첫번째 회의를 가졌습니다. 일곱가정 정확히는 고등부 여섯가정과 내년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한가정의 어머니들이 모여 모임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이 길이 오솔길이어도 끝이 보이는 길이 아닐까라며 뜻을 모으기로 하였습니다.
각자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이 달라서 뜻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이 쉬울까라는 생각은 기우였다는 것을 회를 거듭할수록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말을 곧잘 하고 대중교통을 원할히 이용하는 것 같아도 사회의 장벽은 내가 느끼는 높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서로가 서로를 알아갈수록 더욱 느끼게 되었습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에 아이들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며 아이가 사회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아가기를 돕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선 아이들의 자조모임을 두달에 한번 갖고 그 모임에서 의결권은 아이들이 갖게 하며 또 부모는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식사 하나를 정하는 데도 쉽지가 않아 간섭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아이들의 의견을 기다려야 했고 또 자신들이 먹고 싶지 않아도 의견에 순응하며 기쁘게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회원인 어머님의 블루베리 농장 체험에는 각자의 엄마들이 만원씩을 농장주 어머니께 보내고 아이들에게는 농장주가 주는 알바비를 받기위해 두시간씩 알바를 하게 했고 자기가 딴 블루베리는 선물로 갖고 오게 하는 체험이지만 그것 또한 직업과도 연결이 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여름에는 엄마와 자녀와 함께 하는 캠프를 가져 회원들이 더욱더 돈독하게 맺어질 수 있는 장을 만들기도 하였고 캠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발달장애자조모임의 회장이 회의를 진행하며 아이들 자신이 자기소개를 하고 또 부모들도 소개하게 하는 체험을 통해 각자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캠프가 끝나고 자기가 느낀 캠프의 소감을 적어 만원의 상품권을 부상으로 받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동계캠프는 무산되었으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단톡방을 운영하며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서로의 의견을 묻고 답하는 장이 되기도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플리마켓에 자기들이 만들거나 쓰지 않는 용품들을 내놓고 팔아 그 수익금으로 독거노인분들을 돕기로 하였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꼭 수혜만 받는 것이 아니다를 보여주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또 오름이나 올레길에서 휴지 등을 주우며 클린한 제주를 만드는 모임에도 참여하여 우리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자고 목소리를 높여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결코 넓고 평평한 길이 아닐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오늘도 단톡방에선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우리가 있었고 또 미래를 향해 서로 도닥이며 가는 우리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의 주장을 조율하는 것을 끊임없이 배울 것이고 우리 엄마들은 그들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꿀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첫 월급을 받으면 저에게 맛있는 피자를 사주기로 했습니다. 그 피자는 자기의 선호 식품이므로 내 입엔 몇조각 들어오지도 않겠지요.
하지만 그 아들이 사준 피자는 눈물의 피자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혼자 가지 않기에 더 든든하고 같이 가기에 더 단단합니다.
우리는 모임의 이름을 ‘스페로 스페라 ’라고 정했습니다. 라틴어로 ‘ 나는 희망한다. 당신도 희망하라’ 라는 뜻입니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입니다. 또한 ‘스페로 스페라’를 줄여 ‘스스로 모임’ 이라고도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 나갈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임의 이름처럼 씩씩하게 한발자국씩 사회로 나아갈 것입니다. 때론 넘어져 무릎이 까이기도 하겠지만 동료들이 있어 일어날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 스페로 스페라’‘나는 희망한다. 당신도 희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