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두뇌 발달이 영유아기에 많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 근거와 구체적인 경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막연히 조기 자극의 중요성에 동조하기보다는 제대로 알고 바람직한 교육적 환경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 육아도 조기 교육도 열매 맺기가 가능해진다.

*아기의 두뇌를 '백지'에 비유하는 이유*

태아는 임신 5개월이면 성인의 뇌세포 수와 맞먹는 1천억 개 정도의 세포가 완성된다고 한다. 일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뇌세포를 이미 뱃속에서 갖추고 태어나는 셈이다.
그리고 난자와 정자가 결합하여 생긴 수정란은 수정된 그 순간부터 1분에 25만 개라는 엄청난 속도로 배수 분열을 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신경관에서 만들어진 뉴런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뇌의 각 부분으로 이동한다. 5개월 뒤엔 머리의 모양이 대충 만들어지고 눈, 귀, 심지어 손톱과 발톱에 이르는 신체의 각 부분이 기본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런데 아기가 일생 동안 필요한 거의 모든 신경세포를 가지고 태어남에도 불구하고, 태어날 때부터 어른처럼 읽거나 쓰거나 말을 하는 아기는 없다. 그 이유에 대해 강남성모병원 신경외과 강준기 교수는 "뇌세포가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뇌세포끼리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갓 태어난 아기는 자극이나 경험이 부족하여 뇌세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시냅스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갓 태어난 아기의 두뇌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백지에 비유하는 것도 앞으로 아기의 두뇌 안에 담길 내용물이 그만큼 많은 까닭이다.

한편, 뇌세포는 다른 세포와 다르게 한 번 죽으면 그를 대신할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뇌에 염증이 생기거나 외부로부터 상처를 입어 뇌세포의 일부가 훼손되면 다시 재생이 안 돼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결정적 시기와 민감한 시기가 있다*

두뇌가 주위 환경에 잘 반응하고 받아들이는 시기를 흔히 '결정적 시기' 또는 '민감한 시기'라고 한다. 따라서 한창 두뇌 계발이 활발한 시기에 적절한 자극을 받지 못하면 그 기회는 영원히 닫혀버릴 수 있다. 민감한 시기는 두뇌 발달이 일어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며, 결정적 시기는 그보다 더 중요한 시기이다. 유아기는 대부분의 발달에 있어서 '결정적인' 시기로 작용한다. 따라서 자극을 받아들이는 정도도 두뇌가 발달하는 시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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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언어학자들은 언어 학습의 최적기(민감한 시기)를 출생부터 10세까지로 꼽는다. 10세 이전의 아이들은 두뇌의 언어 영역이 상당히 높은 적응력을 보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외국어를 익히고, 모국어의 특이한 발음이나 억양에 구애받지 않고 외국어를 말할 수 있다. 반면, 언어 능력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는 생후 3년까지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남의 말을 많이 듣는 것만으로도 어휘력이 증가하며, 어떤 종류의 말을 들었느냐에 따라 언어 수행 능력이 달라진다.
 
실제로 시카고대학 재닐런 허텐로처에 따르면, 20개월 된 아기가 말이 많은 엄마와 생활한 경우에 말수가 적은 엄마 밑에서 자란 아기보다 어휘 수가 평균 1백31개나 많았고, 두 돌인 경우 그 차이가 2백95개나 됐다. 게다가 이러한 어휘력과 문장력의 향상은 아기가 엄마의 목소리를 '육성'으로 들을 때에만 발생했다. TV나 비디오처럼 일방적인 시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이 밖에 시각 발달을 위한 결정적인 시기는 생후 6개월까지이며, 대인 관계(사회적 친밀감)는 생후 18개월, 운동 능력은 4세, 수리·논리력은 1~4세, 음악 교육은 3~12세라고 한다.

*부모 역할 따라 발달 정도가 달라진다*

지난해 말, 국제아동기금(UNICEF)은 세계 아동 현황 보고서를 통해 "국가가 나서서 영유아기 교육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력과 감정 조절, 습관적인 행동, 언어, 인지 등과 같은 뇌의 주요 부분이 생후 3년 동안 거의 모두 발달하고, 그것이 일생 동안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제 국가 차원에서 영유아기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선 1997년 4월 미국 백악관에서도 '갓난아기의 두뇌 발달과 학습'을 테마로 회의가 열렸다. 국경 없는 국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절대적이며, 교육은 유아기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첫돌 전의 아기 때부터 가능한 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주 안건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고가(高價)의 수업료를 부담하고서라도 아기를 조기 교육 기관에 맡기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대목동병원 신경내과 김용재 교수는 "아기의 두뇌 발달을 위한 행동들이 오히려 아기들에게는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아기 때 최초로 받은 스트레스에 대한 '경험'은 이후 두뇌 발달에 영향을 끼쳐서 그 피해가 생각보다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아기의 두뇌 자극에 부모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아기들에겐 주변의 모든 환경이 두뇌를 자극할 수 있는 요소가 되며, 월령이 낮을수록 엄마·아빠는 살아 있는 놀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슈퍼 베이비'를 기대하기보다는 아기의 발달 정도에 맞는 환경과 부모의 정성어린 보살핌이 더욱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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