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를 해 주고 계신 선생님이 운동을 좋아하신다.

코로나때문에 실내에서 하는 건 못하다가 마스크를 끼고 하기로 하고 했다는데

포켓볼이 아니라 4구다

난 룰을 몰라서 봐도 모르겠지만 아이한테는 아직 모든 룰을 적용하지는 않았다고 하신다.

동영상을 보내주셔서 보는 내내 입꼬리가 내려오질 않았다

KakaoTalk_20210121_171053596.mp4
5.46MB

10월 끝자락과 11월 초입 우리 가족은 올3월에 겪었던 삶과 죽음의 공포를 다시금 느꼈다

2019 3월,4월 엄마와 내가 따르던 언니의 죽음

2019년 10월,11월 시아주버님과 사촌 시아주버님윽 죽음

한 죽음을 제외하곤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80에서 90%의 진행이 되기전까지는 모르는게 암이란다

그런데 아프기시작하면 화마가 집을 삼켜버리듯 우리생을 삼켜버린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어떻게 삶을 살아야하는지 또한 고민되는 일이다...

 

* 명탁이의 거짓말*

 

요즘 명탁이가 거짓말을 한다. 언제 하냐면 엄마가 돈이 없다며 간식비를 안줄 때 일어난다

어느날 저녁에 아들과 나눈 대화

"엄마, 만원주세요"

"왜?"

"배고파서 한솥 도시락 사먹고 싶어요"

"집에서 밥 먹자. 요즘 엄마 돈 없어서 만원 주기 힘든데"

조금 생각하더니

"그래도 만원주세요. 오늘 아침에 집에서 밥 먹었으니까 저녁은 한솥에서 먹고 싶어요"

나름 논리있게 얘기하는데 재미있어서 이렇게 얘기했다

"그럼 5000원 줄테니 사서 와라"

아들 또 잠시 생각하더니

"카드 주세요"

"왜? 현금으로 5000원 준다니까"

"아니예요. 한솥은 주문할때 기계로 해요.

카드로 사야해요"

거짓말,,, 난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웃겨서 한마디 덧붙이며 카드를 건넸다

"그럼 카드를 주긴 하는데 5000원 이하의 것으로 사야한다. 명탁아 카드도 실은 돈이야. 돈을 통장에 저금해놔야 카드를 쓸 수 있어. 돈을 저금하려면 아껴써야하고...."

아이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눈은 내 손에 있는 카드에 꽂혔다

"네 알겠습니다 "

호기롭게 대답한 후 아들은 무려 15900원을 쓰시고 오셨다

"엄마 약속지켰어요. 여기 카드하고 영수증이예요"

난 순간 이걸 어떻하면 좋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걸 참을 수가 없었다

자폐인이 거짓말을 하는건 좋은 징후라고 웃으며 지나갈 일이 아닌것 같다

이건은 또 어떻게 가르쳐야하나 ㅜㅜ

 

*도움을 돌려줄 수 있는 아이*

 

예전부터 자원봉사하는것을 늘 얘기했었다.

그런데 뭔가 시작하는게 어려웠다.

그즘에 한 치료사선생님께서 하시고 계신 자원봉사단체에서 우리 아이들도 같이 해도 되겠다고 하셔서 시범적으로 '집수리 자원봉사'를 가게 되었다

명탁이와 자원봉사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명탁아 자원봉사가 뭔지 알아"

"남 도와주는거예요"

기특하다.남을 도와주는 것이라는건 안다

"그럼 명탁이는 이제까지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니?"

곰곰히 생각하더니 없어요라고 한다

내심 무상으로 엄마를 도왔던 일들을 얘기하면 옳다구나 하고 설명하려고 했는데 ㅎㅎㅎ

"내일 명탁이 선생님하고 집수리 자원봉사하러 가기로 했는데 그게 뭐하는지 알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그래서 아들과 난 인터넷에서 집수리 자원봉사 이미지들을 검색하며 톱으로 판자를 자르는구나

벽지를 발라주는구나 그걸 도배라고 한단다

또 어쩌면 제일 중요한건 이렇게 기자재들을 안으로 밖으로 날라주는거 같다 그치...

아들과 나는 또 이런 얘기도 나눴다

명탁아 너는 내년에 어느학교에 가게 되지?

고등학생이 된다는건 어린이인거야? 어른이 되가고 있는거야?

그럼 예전에 네가 어렸을 때는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받았지? 그런데 지금은 명탁이가 마음도 몸도 커졌는데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얘기를 나누면서 왜 남을 도와야하는지까지 얘기를 나눴다

아마 우리 아들은 오늘의 대화가 얼마나 깊은 대화였는지를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자꾸나

내가 도움을 받았다면 도움을 갚을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이지

나를 도와준 그 사람에게 갚을 수는 없어도 내가 또 다른 누군가를 돕는게 갚는거라고...

오드리햅번이 자녀들에게 남긴 유언이 가슴을 울린다♡♡♡

 

<오드리 햅번의 마지막 유언>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의 한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자신이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해서 걸어라

 

사람들은 상처로 부터 복구되어져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 져야하고

 

병으로 부터 회복되어야하고

무지함으로 부터 교화 되어야 하며

 

고통으로 부터 구원 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된다.

 

기억하라 만약 내가 도움을 주는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내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한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사람을 돕는 손이다.

집수리 봉사를 다녀왔어요

? 주사위는 던져졌다

10월 마지막 주부터 방과후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어요

재작년과 작년 다른 기관에서 실시한 방과후 수업 시범사업에 참여했었지요

우리 아이에게 가장 모자란 사회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올해는 시범사업을 끝으로 다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너무나 안타까웠지요

그 수업이 기관은 바뀌었지만 다시 시작되었으니 저의 기대는 참 큽니다

2020년 내년에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우리 아들

초등학교와 달라서 조금 힘들었던 중학생 시절을 이제 얼마 남기지 않고 있습니다

일학년 때는 집에서 먼 학교에서 가까운 학교로 옮기는 과정에서 아이가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잠 잘 적응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학년이 되자 학교 폭력에 시달리게 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또 하나의 배움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를 힘들게 했던 아이는 자기 자신도 많이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아이와 나쁜 인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제가 있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라고 하지요

우리 아이는 폭력을 당하면서 어쩌면 피해자의 마음을 알았기를 바랍니다

자폐성 장애는 폭력성을 배제하고 얘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답답함과 그리고 쌓여 있는 울분 또한 억울함

저는 그래서 우리 아들이 폭력을 당해서 억울한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배웠느냐를 생각해 봅니다

한 달 전 진학할 고등학교 에도 상담을 갔다 왔습니다

우리 아이가 사회성이 약해서 자기가 가진 능력보다 늘 평가절하를 받으므로 그나마 상을 두 차례나 받았던 일본어 학과에 진학하여 일본 영사관에서 진행하는 일본어 말하기 대회 출전시켜볼까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아이의 위상을 높혀서 주의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게 하겠다라는 생각이지만 이 또한 바른 생각인지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봅니다

1이 나오면 어떻고 6이 나오면 어떨까요

그냥 기도하면서 나아갑니다

 

 

? 진흙탕 속에서도 연꽃은 아름답다

 

올해는 저에게는 아니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나 힘든 한 해입니다

3월에 정말 나의 전부인 엄마가 돌아가셨고 그 후 3주 후에는 내 신앙의 어머니인 권사님이 젊은 나이로 암과의 싸움 끝에 천국에 가셨습니다

이제 좀 마음이 회복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아니 억지로 생각하려는 시기

지난달 시댁에서 저를 가장 이해해주시고 독려해주시던 큰아주버님이 병마와 싸우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이틀 뒤 사촌 아주버님이 또 별세하셨다는 소식에 우리는 등 한번 따스이 지져보지도 못하고 장례식장과 고인의 집, 그리고 시부모님과 큰 어머님을 위로해 드리려 고군분투를 하였습니다

큰 아주버님의 장례식에선 우리 아들도 상제역할을 했습니다

실수하면 어쩌나

엄숙한 순간에 이상한 혼잣말을 하면 어쩌나

상제옷을 입고 펄쩍펄쩍 뛰면 어쩌나

이 모든건 기우였습니다

아들은 너무나 분위기를 잘 파악했고 한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옆에 없을 때도 알아서 형들과 동생의 보폭을 맞췄습니다

너무나 슬픈데 너무나 애통한데 아이의 모습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힘든 마음이지만 아들로 인해 또 딸로 인해 그리고 남편으로 인해 힘이 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가정에 임하시고 우리의 형편을 늘 살피시는 주님의 은혜를 새기며 다시 또 내일을 기약해 봅니다

사랑하는 엄마, 사랑하는 권사님 천국에서 다시 만날때까지 재밌게 잘 지내시고 계세요

사랑하는 아주버님 그리고 사촌 아주버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랑하는 엄마















































5학년 여름

은지이모네 공부방 친구들이 마술을 보러갔어요





6년전 명탁이가 학교에서 소리를 지르고 폭력성이 나와서 1학년 1학기까지만 다니고 학교를 관두고 세화리에 있는 시골집 하나를 빌어서 한달반을 둘만 산 적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트가서 하루 먹을거 시장 보고
도시락을 싼 후 비자림에 가서 신발을 벗고 두바퀴를 돌았다.
성산일출봉에 가서 도시락을 먹고 정상까지 올라갔다 오면 하루 일과가 끝..
빌린 집으로 가며 저녁장을 보고 세화리에 있는 피아노학원을 가던지 세화초등학교에서 놀고는 집으로 돌아가 저녁식사..
빌린 집엔 컴퓨터도 TV도 전화도 심지어 내 핸드폰까지도 일절 사용을 못하거나 아예 없었다.
나한테도 지옥 같은 한달 반이었지만
명탁이에게도 지옥 같은 나날이었음에 분명하다.
아침에 가출을 시도할 정도였으니...
그 잊고 싶은 추억을 오늘 또 할 수밖에 없었다.
담임쌤으로부터의 전화..
명탁이 좀 데려가셔야 겠는데요.
일찍이 중학교에 가서의 교실생활교육을 위해 부적응행동이 계속 이어지면 전화로 집으로 데려가라 하기로 했었기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1교시부터 3교시 내내 연필로 의자를 탁탁 두드리고
옆의 친구꺼 수학 베끼고
풀을 엄지와 검지로 문지르며 놀았다한다.
선생님이 계속 주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마주칠 때는 안하고 뒤로만 돌면 똑같은 행동을 했다한다.
그래서 6년만에 명탁이와 난 비자림을 돌고
성산일출봉을 올라갔다가 오고
애향운동장을 열바퀴 돈다.
내일부터는 잘하겠다고 선생님에게 전화로 얘기한다.
끝 없는 이 교육
나이가 먹을수록 힘들어지니 걱정이 말이 아니다ㅠㅠ





'슈퍼 자폐인 다니엘♥♥♥ > 명탁이의 육아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년도 9월 사회성평가  (0) 2019.10.17
2016년 7월 28일  (0) 2019.10.17
2016년 7월 6일  (0) 2019.10.17
2016년 7월 4일  (0) 2019.10.17
2016년7월 2일  (0) 2019.10.1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