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제주도에 사는 평범하게 아니 약간은 타의에 의해 비범하게 사는 두 아이의 엄마 신 혜수라고 합니다.

‘이경규가 간다’‘양심 냉장고’‘느낌표’‘칭찬합시다’‘단비’‘나는 가수다’등등 2011년 한국사람의 정서적 발달에 그리고 사회적인 양심에 호소해 주신 여러프로그램에 경의를 먼저 표합니다.

저는 자폐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너무 뜬금없지요?

실은 이전 모 방송국에서 신동엽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에 자폐청년 김진호군이 나와서 자폐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어 주어 우리 아이들에 대한 사회의 이해도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해주어 우리 아들을 키우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터라 TV매체의 힘에 대해 늘 생각해 오던 차에 아이돌이 모든 채널을 석권하며 정말 노래다운 노래를 접할 기회를 상실했던 우리들에게 또한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 비쥬얼과 인기라는 큰 벽에 막혀 실력을 드러내지 못 하셨던 많은 훌륭한 가수들에게 희망이라는 큰 선물을 또 한번 안겨주시는 쌀집아저씨 김 영희 피디님께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계셔서 어쩌면 정말 우리 나라에 지금 돌아보지 않으면 안될 큰 과제를 혹여 잊으실까봐 정말 조심히 편지를 올립니다.

위에서 저의 아들에 대해 언급했습니다만 지금 제가 피력하고자 하는 얘기는 단지 장애를 가진 아이들만의 얘기가 아니고 우리 사회에 어쩌면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들까지도 아우르는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몇자 적어볼까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우리 둘째 아이는 두 달여 쯤 한 초등학교에서 같은 반 아이가 발로 차며 “장애인 새끼 저리 꺼져”라는 폭언을 듣고 다시 이틀 뒤 그 아이가 선생님이 있는 상황하에서 우리 아이를 몰래 발로 걷어차는 모습을 보며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만 했던 경험을 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부자유로 인해 많은 차별적인 언어와 처우를 받아 왔던터라 이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엔 우리 아이를 발로 찼던 아이의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너무나 윤택한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도벽으로 부모를 힘들게 하고 자기보다 못한 이들을 힘으로 누르려고 했던 이 아이의 모습은 과연 이 아이에게만 국한된 것일까를 생각하니 몸서리쳐질 정도로 이 한국사회가 가진 우리 어린 아이들의 문제가 골이 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교육의 부재, 사교육의 폐혜, 부모와 학부모의 차이, 교권의 붕괴, ...골칫덩어리...

지금 우리는 이런 학교에 우리의 귀한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1학년부터 100점을 받아야 하는 사회, 특목고도 아니고 특목중을 가기 위해 흙밭을 밟아야 할 아이들의 발이 차가운 콘크리트 학원 바닥에서 공허히 맴돌아야 하는 사회, 손에 잡히면 손에 잡히는 대로 읽던 책들이 이제는 철저한 권장도서라는 틀 안에서 독서 인증제라는 평가도구 속에서 읽고 싶어서 읽는 책이 아니라 읽어야 대학을 가므로 읽어야 하는 책이 되어 버린 작금의 상황이

자꾸 정상이었던 우리 순수한 아이들의 영혼을 자꾸 썩게 만드는 것 같아 이런 아이들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미래에 이 땅에 살게 될 우리 두 아이를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자유를 추구하는 드라마에선 아이들과 같이 볼 수 없는 낯 뜨거운 장면들이 여과없이 나오고 예능이라는 곳에서는 욕설이나 선정적인 것이 흥행수표인 마냥 활개를 치는 지금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할 뿐입니다.

우리와 같이 장애를 가진 부모들은 이야기 합니다. 장애인식개선을 해야한다고...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비타민을 먼저 주어야 합니다.

‘특목중=사회적인 성공’이 아니라고 ‘돈이 많은 것=행복’이 아니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무거운 문제들이 자꾸 ‘000스페셜’ 내지 ‘ebs방송’에서만 다뤄질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많이 접하는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 나와줘야 하며 ‘문제제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김영희 피디님에 의해 한동안 사람들이 선할 수 밖에 없었던 ‘칭찬합시다’ 라든지 ‘차선을 지키고 신호를 지키는 것이 양심입니다’ 라든지 이런 메시지를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의 부재? 일본의 아키타현의 공교육만 받아도 전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된 이야기라든지 , 사교육의 폐혜? 선행학습으로 인한 공교육에서 보여지는 아이들의 부적합한 행동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던지, 부모와 학부모의 차이? 3개월이상의 관찰 영상을 통해 과연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부모의 상에 대해 고민을 하게끔 유도해 본다던지, 교권의 붕괴? 자신조차도 교권에 대한 확신이 없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휘둘리는 것은 자명한 사실, 한 교실 두명의 선생님( 담임 선생님 과 보조 선생님) 체제를 두어 어떠한 사건에 대해서도 주관적인 오류를 범하기 이전에 서로 상의를 하여 현명한 방법으로 모색을 해 본다던지, 학습에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보조 선생님들이 반을 순회하며 가르쳐 준다던지, 젊은 선생님이 담임이신 곳이면 연세가 있으신 보조교사를 투입해 선생님조차도 알지 못했던 삶의 지혜로 문제를 해결해 본다던지, 이것도 저것도 문제야라는 시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방향 모색에 예능도 한 몫을 한다면 분명 아이들은 자기와 같은 시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질감에서부터 다른 딱딱한 교양프로그램에서 공감대를 형성 못했던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을 자기가 접한 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장애인식’이라는 낯선 단어로 조금 다른 아이들을 설명하지 않아도 자기와 동 시대를 살아가는 동무로 생각해 줄거라고 믿으며 그리고 처지가 다른 아이들에게도 동정심으로 다가가기 보다는 애정으로 다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지금도 모 동사무소에는 이달의 칭찬사원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습니다.

김영희피디님 당신은 이 사회를 분명 조금씩 양심을 알고 따뜻해 지도록 노력하셨고 최소한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안 와도 빨간 불이면 양심에 찔리며 지나가게 만드신 장본인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다음 한국을 짊어지고 갈 이 아이들의 마음에 동료애와 가족애와 존경과 배려라는 크나큰 마음을 다시금 불러 일으켜 주세요.

유태인이 가능하다면 독일이나 핀란드가 가능했다면 한국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김 영희피디님 더 크시고 중요한 일로 바쁘신 줄은 알지만 정말 우리 아이들의 곪은 가슴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고 이제까지 예능피디임에도 불구 사회의 여러조각에서 작은 별들을 밝혀 주신 그 능력으로 이번에는 우리 어린아이들과 장애의 끝이라고 하는 자폐아동들을 위해서 고심을 해 주시면 너무나 고맙겠습니다.

이 편지가 피디님 손에 가게 될지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대한민국에서 아픈 아이와 아플 것 같아 가슴이 아픈 두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두서 없는 글이었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2012.09.02. 신 혜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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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만 해도 육아일기를 내가 꼭 쓰고 싶은 날 썼다.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업데이트 하는 차원에서 쓰는 횟수가 많아졌다. 고정적으로 육아일기를 보시는 부모님이 많아지면서 무언의 압박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교회에서 내가 사랑하는 한 후배가 나의 육아일기가 조금씩 보는 사람을 의식하는 듯 하다고 충고한다. 의식이 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내는 깔끔하던 육아일기가 질질 끌고 불필요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고 핀잔을 준다. 그래서 최근에는 내가 일기를 쓰고 나면 아내에게 검사를 맡아야 한다. 그래서 그나마 많이 줄었다.

 그런데 자신을 살펴 보면 육아일기를 훔쳐 보는 사람들을 크게 의식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것이 의식이 되면 어떻게 자신의 일기를 전부 공개할 수 있겠는가? 다니엘을 데리고 다니면서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자유하는 믿음을 많이 배웠다. 그나마 내가 의식이 되는 것은 나는 일기를 가끔 쓰고 싶은데 초기화면의 카운터가 자꾸 올라가는 것이다. 오늘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들어오셨다가 아무것도 업데이트 되지 않은 것을 보고 실망하며 사이트를 닫을 부모님들이 의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반강제로 쓰게 된다. 

그러면 나는 부모님들에게 보여 드리기 위해 일기를 쓰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내가 육아일기를 쓰는 이유는 첫째는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나는 아이의 교육보다 더 우선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아빠인 나의 인생이다. 아빠가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듯이 아이도 아빠의 인생을 대신 해 줄 수 없다. 

그만큼 아빠와 아들은 개별의 관계성을 가지면서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본다. 

육아일기의 내용을 보면 아빠가 아들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비추어 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인생을 살 뿐이다. 나는 한번 뿐인 내 인생이 내 아들로 인해 일그러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들 때문에 내 인생이 비참해 졌다고 하소연하는 한심한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 아들로 인해 행복해 질 수는 있어도 아들 때문에 불행해 질 수는 없다. 

불행하게 살기에는 이 한번의 삶은 너무 길지만 행복하게 살기에는 또 이 삶이 너무 짧지 않는가? 나는 사는 날까지 내 삶을 사랑하고 또 내 삶에 손님으로 찾아오는 모든 인간조건이나 환경들을 환영하며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만일 내가 다니엘이 내 자식이라는 이유로 또 그 자식이 불쌍하다는 이유로 내가 내 인생을 뒤로 하고 아들을 돕는 삶을 산다면 나는 금새 지쳤을 것이다. 

아무리 피로 맺은 자식이라도 어느 순간에 이르면 그의 인생을 책임져 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바닥을 보일 날이 온다. 또 자식을 아무리 불쌍히 여긴다 하더라도 하는 짓이 항상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면 어느 시점에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소멸하게 된다. 

인간의 착하고 선한 마음은 항상 이렇게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휴머니즘의 딜렘마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박애주의자는 아니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지극히 충실하는 이기주의자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면서 까지 아들을 돕게 된 것은 꼭 아들 다니엘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차라리 나는 아들을 돕는 과정에서 내 인생을 충실히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내가 육아일기를 쓰는 이유도 내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다. 가령, 다니엘이 세월이 흐른 후에 장애의 그늘을 벗고 자기 인생을 치료한다고 애쓴 아빠를 인식한다고 하자. 

그 녀석이 내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아빠,고마워요" 이 말밖에 내가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그러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내가 인생의 황금기인 30-40대를 아들의 교육에 매달려 살았는데 지나간 나의 인생은 누가 무엇으로 보상해 줄 것인가? 그러므로 지금 현재 아들 다니엘과 함께 하는 가운데 누리는 희로애락이 바로 나의 인생인 것이다. 이것이 인생인 것이다. 나는 이 인생을 즐기고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에도 뒤를 돌아 보아 후회하지 않기 위해 현재 이 순간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무의미한 시간들이 되지 않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며 살고 있을 뿐인 것이다.

 육아일기를 쓰는 둘째 이유는 아들을 위해서이다. 내가 육아일기를 쓰게 되면서 더욱 아들의 교육에 전념하게 되었다.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사건 속에서도 그 사건에 어찌하든지 의미를 부치는 과정에서 아들을 알아 가게 되었고 아들에게 맞는 교육을 서비스하게 되었음을 확신한다. 셋째는 홍익인간을 위해서다. 세 번째 목적을 위해서 한번 쓴 육아일기를 다시 수정하고 좀 더 좋은 참고재료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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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휴일을 맞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마산의 친척 병문안을 갔다. 차로 갈까? 기차로 갈까?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기차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장애아카드가 있어서 할인이 되었다. 나는 장애아 카드를 VIP카드라고 부른다. 어디를 가든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은 있다. 그것도 목적지 건물의 바로 코앞에. 회사의 사장님의 전용주차공간 보다 더 편리하다. 

마산에 도착하자 녀석의 눈에 신기한 것이 보이는 가 보다. 주차된 차의 번호판을 보고 피식피식 웃었다. 대구 번호판만 보다가 경남 번호판을 처음 본 것이다. 우리는 사소하게 지나치는 것들이 녀석의 눈에는 크게 띄이는 모양이다. 

아마도 녀석이 항상 숫자에 집착하기 때문에 평소에 번호판에 관심이 많았나 보다. 하긴 안양에 있을 때 주차된 차 번호판의 마지막 숫자를 다 읽어야 그 거리를 지나칠 수 있었다. 아내는 비오는 날 다혜를 업고 우산을 받쳐 들고 다니엘을 데리고 오는 데 녀석이 번호판을 다 읽어야만 집으로 돌아와야 했을 때 너무 힘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내는 그나마 번호판의 번호를 다 읽지 않고 마지막 숫자만 읽는 것으로 고맙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녀석이 또 불만을 나타냈다. 병원에 4층이 없다는 것이다. 2시간 가까이 이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6층에서 1층의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면서 왜 4층이 없냐고 계속 캐물었다. 나는 한자의 '죽을 사'자에서부터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설명해 주었다. 나의 설명을 다 들은 녀석이 하는 말 "왜 4층이 없지?" 다혜는 이해를 하고 '5층이 진짜로는 4층이다' 하며 나를 도와 주었다.

 그래도 영 기분이 내키지 않은 모양이다. "4층이 없으면 위험하다. 규칙에 딱 맞아야 돼" 하며 목소리를 높혔다. 이런 문장을 자유자재로 쓰는 녀석이 5층이 4층이 될 수 있는 응용력이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다니엘의 완벽주의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병실로 돌아 온 녀석이 계속 이 문제로 엄마에게 시비를 걸었다. 담석증으로 입원 중인 녀석의 이모가 4층이 없으면 위험하다는 녀석의 볼멘 소리를 듣더니 배를 잡고 웃었다. 혼자 병원을 지키며 웃을 일이 없던 이모가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원래 담석증은 예민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생길 수 있는 병이라고 한다. 다니엘이 일주일만 이 병원에 있으면 이모의 병도 치료할 것 같았다.

 녀석이 병실을 두리번 거리더니 달력의 4일자를 가리켰다. "1,2,3 다음에는 4가 있어야 돼" 했다. 또 시계를 보더니 4가 있음을 확인하고 조금 마음이 가라 앉았다. 

오늘 아침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쥬스를 달라고 했는데 없었다. 그래서 1000원을 주고 혼자 사 오라고 했다. 혼자 가게에 보내기는 처음이다. 자기가 가겠다고 해서 보냈다. 조금 후 500원 짜리 쥬스를 사고 500원을 거슬러 왔다. 우리는 흐뭇했다. 모든 것이 술술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마산에서 돌아 온 후 같은 교회에 다니는 드보라 엄마를 만났다. 드보라 엄마가 아침에 다니엘을 가게에서 만났단다. 그런데 다니엘이 1000원짜리 음료수를 들고 비싸다고 500원을 깎아 달라고 실랑이를 벌였단다. 가게 아줌마는 말이 안통해서 답답해 하고 다니엘은 울고 있었다. 결국 아줌마는 500원짜리 쥬스로 바꾸어 주고 500원을 거슬러 주었단다. 

최근에 다니엘은 1000원은 무엇이든 비싸다고 생각한다. 2주전에 내가 다니엘,다혜를 데리고 목욕을 다녀오면서 과자를 고르도록 했다. 다니엘은 500원짜리 과자를 골랐는데 다혜는 1000원짜리를 골랐다. 그래서 내가 다혜에게 1000원은 비싸다고 했다. 그 이후로 다니엘은 1000원은 무조건 비싸다는 생각이 각인이 된 것 같다. 

공책을 보면 1000이라고 적혀 있는데 녀석이 비싼 공책이 아까와서 쓰지도 못한다. 공책뿐만 아니라 연필도 아까와서 못쓴다.

 학교에서 알림장을 쓰는데 최근에 다니엘이 알림장을 가장 늦게 썼다. 선생님은 다니엘이 자기 것은 비싸다고 아까와서 쓰지 않는다고 하셨다. 옆짝인 바울이가 알림장을 다 쓸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울이의 연필을 빌려서 쓴단다. 또 알림장에 쓰지도 않고 연습장에 써왔다. 공책을 사면 1000이라고 쓰인 부분을 자기가 지워 버린다. 그리고는 겉장에 '아껴쓰세요'라고 적는다. 내가 녀석에게 외제 학용품이라도 사 주었으면 말도 안한다. 그동안 우리가 아이들에게 절약을 너무 많이 가르친 듯 하다. 

할인점에 가서 아이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대로 물건을 고르면 비싸다는 이유로 사 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비싸다는 개념은 곧 구입할 수 없다는 개념으로 정착된 듯 하다. 그런데 오늘 1000원을 주고 쥬스를 사오라고 했더니 비싼 1000원이 부담이 되었던 가 보다. 녀석의 마음속에 1000원=비쌈이라는 등식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어린이 날에 자기가 선택한 기차는 39000원 짜리였는데 그것은 비싸지 않고 1000원은 무조건 비싸다고 생각하니 이 이상한 각인을 어떻게 깨어야 할까?한번 각인된 것과 원리원칙주의를 깨뜨리고 융통성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신문을 보고 우리 다니엘이 다 나은 것처럼 생각할 까봐 걱정도 된다. 자폐성향은 뿌리가 깊기 때문에 완전히 고친다는 것은 더 많은 인내와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10년은 지금과 같은 아니 지금이상으로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니엘의 마음속에 각인된 1000원은 비싸다는 개념을 De프로그램(한번 입력된 프로그램을 지우고 다른 프로그램을 입력하는 정신과적 프로그램)하기 위해서는 1000원짜리 물건만 보면 "와! 싸다"하고 Over action을 해야겠다.

 또 대상에 따라 1000원이 비쌀 수도 있고 쌀 수도 있는 상대적인 개념을 가르쳐야겠다.

 이 훈련을 하다보면 원리원칙과 규칙의 연산인 수학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다니엘에게 상대성과 융통성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같다. 완벽주의와 규칙이라는 갇힌 방에 작은 창틀을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연구소의 사회성 프로그램중에 시장놀이 프로그램이 있다. 박선생님께 부탁해서 다니엘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주문해야겠다. 

아빠가 소장인 연구소니 이 정도 혜택은 있어도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다니엘도 수업료를 내고 교육을 받으니 아동의 부모로서 교사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다니엘은 4층이 없는 마산의 병원이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하나보다. 다음에 다른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다시 한번 병원에는 4층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어야겠다. 병실을 나오면서 우리 팀이 가장 확실한 담석증 환자의 위문공연단이 되었음을 확인한 하루였다. 녀석이 마산에 두고 온 병원이 걱정돼서 잠이나 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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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를 둔 가정은 365일이 어린이 날이다. 부모님들이 모두 아이를 생활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마다 어린이 날이 되면 우리 가정은 조금 다르게 보낸다. 평소에 자주 나오지 못하시는 일반아동의 부모들도 이 날만은 놀이공원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고역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 날은 조용히 쉰다. 아니 이 날은 오히려 어른의 날이다. 작년에는 어린이 날에 교회의 몇 가정과 어울려 볼링을 치러 갔다. 어린이들은 돌아 나오는 볼링 공을 닦아야 한다. 그것도 서로 닦으려고 싸우면서. 오늘은 하양에 있는 대구대학교에 갔다. 캠퍼스는 아주 한적했다. 함께 간 교회 식구들은 짐을 풀기가 무섭게 강의실의 의자를 한쪽으로 치우고 물풍선 배구경기를 시작했다. 풍선안에 물을 조금 넣으면 적당한 무게가 되어서 실내배구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나는 다니엘을 데리고 다니며 항상 어떻게 하면 아이와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까를 생각한다. 때문에 나의 머리속은 게임천국이다. 어른들이 처음 하는 물풍선 배구에 매료되어 낄낄 거리며 노는 사이 아내는 5명의 아기들을 데리고 다녔다. 아내는 평일에 환자를 돌보느라 항상 피곤한데 이런 날은 푹 쉬고 싶어한다. 그런데 우리가 아이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잘 놀 수 있게 다니엘을 포함한 5명의 아이들을 돌본다. 내가 아내를 존경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아내를 자랑하면 팔불출이라 했는데 나는 개의치 않는다. 열심히 놀다가 점심을 먹으러 전체적인 이동을 하는 사이 다니엘을 또 잃어 버렸다. 한참을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휴일이라 강의동의 현관문이 대개 잠겨 있어서 찾으러 다니는 나 자신도 빠져 나오지 못해 미로를 헤맸다. 얼마 후에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여학생이 다니엘을 데리고 있다고 했다. 녀석이 길을 잃자 여학생에게 "엄마, 아빠 찾아 주세요" 했단다. 여학생이 전화번호를 물으니 대답을 했다고 한다. 휴대폰 전화번호가 긴데도 녀석이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학의 사나이 석다니엘! 앞으로 미아가 될 염려는 없을 것 같다. 오늘은 녀석을 다 키웠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자랑스러웠다. 휴대전화를 016에서 011로 바꾸고자 했는데 영구번호로 간직해야겠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우리는 또다시 야외에서 물풍선 수류탄을 만들어 적진을 공격하는 게임을 했다. 이 풍선은 입심으로 부는 것이 아니고 수돗물의 힘에 밀려서 불리는 풍선인데 눈뭉치를 만들 듯 풍선안을 물로 빵빵하게 채운 수류탄이다. 우리는 물세례를 받으며 시원하게 노는 사이 아이들은 땡볕에 그을려 발갛게 되었다. 오늘은 어른들이 어린이가 된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니엘에게 물었다. "다니엘아! 오늘 재미있었니?" 녀석이 재미있었단다. 어른들이 유치하게 노는 모습이 재미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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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학교에서 체육회 연습이 있는 날이다. 학교에서는 여름용 체육복을 입고 오라고 하는데 아직도 내의를 입고 있는 아이에게 갑작스럽게 짧은 하의를 입히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안에 긴 상의를 입고 아래에는 타이즈를 입히고 그 위에 짧은 여름 체육복을 덧입혔다. 그랬더니 녀석이 타이즈는 여자들이 입는 옷이라고 입기를 거부했다. 얼레 껄레리 하겠단다. 그래도 억지로 입혀서 학교에 보냈다. 12시경에 다시 데리러 가는 길에 차 안에 녀석의 책가방이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종의 반항인가? 아니면 단순한 실수인가?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평소에도 자기 가방을 차에 내려놓고 몸만 홀랑 빠져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가방도 며칠 전에 새로 사 주었다. 그동안 녀석이 가방을 질질 끌고 다녀서 가방 밑이 벌써 헤어졌다. 또 지퍼도 부러졌다. 가방을 아무렇게나 내팽겨치기 때문이다. 때문에 며칠 전에는 운동장을 다니면서 책을 다 쏟았단다. 상급학생이 다 주워 줬는데 같은 날 두 번이나 그렇게 했다고 선생님이 알려 주셨다. 또 우유도 창문밑으로 집어 던졌다고 한다. 학교생활이 조금씩 스트레스가 되는 모양이다. 내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1학년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3반을 찾았다. 그런데 3반으로 가까이 가자 남학생들이 내게로 달려왔다. 이러면 순간적으로 느끼는 조짐(?)이 있다. 다니엘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난처한 표정이 되셨다. 아이들은 누가 다니엘을 울렸다고 일러 주는 아이가 있고 또 변명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과 흩어져서 녀석을 찾기 시작했다. 곧 태영이가 달려 오더니 '아저씨! 대열(학교이름)이를 찾았어요' 한다.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스탠드에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그 곳에는 벌써 3반 남자 아이들이 녀석을 둘러 싼 채 선생님께 가자고 부축이고 있었다. 훌쩍훌쩍 울던 녀석이 아빠를 보자 '안아주세요' 한다. 또 마음이 미어져 들어왔다. 녀석을 업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3반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면서 어깨가 저절로 아래로 쳐졌다. 고개를 떨구며 속으로 말했다. '녀석아!녀석아! 너 언제 인간될래?'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가 있는 한의원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연구소에서 저희들끼리 놀도록 했다. 1시간 후에 가보니 다니엘,다혜는 옆집 친구까지 끌어들여 연구소를 완전히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당장 정리해'하고 고함을 쳤다. 그런데 녀석이 내가 고함을 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울었다. 그리고 정리 못하겠다고 자기도 고함을 쳤다. 녀석의 머리에 손이 한 대 올라갔다. 머리에 손이 가는 것은 완전히 감정이 배여 있는 채찍이다. 순간적으로 감정을 절제하지 못했다. 녀석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순간이었다. 한동안 좋은 관계성을 유지했는데 오늘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완패하고 말았다. 누적된 스트레스가 터져 버렸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내가 과연 특수교사의 자질이 있는가? 한의원 침대 위에 쓰러져 누웠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녀석에게 갔다. 다니엘,다혜를 데리고 슈퍼마켓에 음료수를 사러갔다. 물량공세(?)를 편 후에 녀석의 마음을 다시 보담아 주었다. 다니엘아! 아빠 좋아? 싫어? 대답이 '좋아'였다. 잠시 숨을 고르고 '아빠 진짜사랑이야? 가짜사랑이야?'다시 물었다. 대답이 '진짜사랑'이었다. 내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한번은 내가 없을 때 아내가 녀석에게 물었다. 그때 녀석의 대답이 가짜사랑이었다. 아내는 농담 삼아 나중에 누가 성공사례로 우리를 인터뷰하러 왔을 때 '석다니엘은 아빠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렇게 물으면 녀석이 한마디로 '가짜사랑'이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내가 이 문제에 신경이 조금 쓰이는 이유는 녀석이 무의식중에 아빠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사실이다. 다니엘이 잠이 들면 아내는 싱겁게 아이를 테스트한다. '다니엘아! 아빠왔다' 하면 녀석이 잠결에도 '아빠 싫어!'한다. 그럴 때는 솔직히 마음에 상처가 된다. 이 녀석이 아빠가 그렇게 노력하고 자기에게 헌신적(아빠 기준)인 사랑을 베푸는데 무의식중에 아빠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아빠의 한계가 아닌가 한다. 엄마는 아이를 아무런 조건없이 바다같은 사랑으로 품어 주는데 특수교육을 전공한 아빠는 아무래도 생활속에서 교육과 연계시켜서 고쳐 주고자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쨋든 나는 의식중에 아이의 마음에 사랑을 새기고자 반강제적인 '사랑고백'을 하게 한다. 그 후에는 키스씬이 벌어진다. 아내는 사랑고백도 인색하고 결혼 8년동안 꽃 한송이 선물하지 않는 탈무드(무드에서 벗어난)남편을 향해 가끔 '당신,나를 정말로 사랑해요?' 하고 묻는다. 나도 녀석의 아빠를 향한 사랑에 의심이 든다. '다니엘아! 너는 나를 정말로 사랑하니?' 나는 아내를 수평적인 사랑의 차원이 아닌 수직적인 존경의 차원에서 사랑한다. 녀석도 나를 그런 존경의 차원에서 사랑해 주어야 할텐데...

지난 주말에는 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시골에서는 돼지를 두 마리나 잡았다. 다니엘을 데리고 시골로 갔다. 도착하니 큰 돼지 한 마리는 이미 잡았고 한 마리는 묶여 있었다. 다니엘은 묶인 돼지가 불쌍하게 보이는 가 보다. 자형들(첫째는 식육점을 경영하고 셋째는 횟집경영)은 익숙한 칼솜씨로 돼지를 요리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돼지를 자르면 안된단다. 마당에 불을 피우고 돼지를 삶는데 녀석이 물을 한바가지 퍼서 아궁이의 불을 꺼 버렸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 것일까?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다니엘은 식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운다. 우선은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고 다음은 비디오 라이트가 신경이 거스리기 때문이다. 두 가지 문제를 극복하도록 돕기 위해 나는 결혼식이 있을 때 마다 놓치지 않고 다니엘을 참석시킨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녀석은 식장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번에는 자기가 잘 아는 삼촌의 결혼식이어서 그런지 녀석도 참석해 주었다. 비디오는 내가 직접 촬영했는데 별 거부감이 없었다. 다니엘에게 비디오를 들이 대며 '삼촌 축하합니다.' 하라고 하니 녀석이 시키는 대로 했다. 저녁에는 지난 소풍때부터 삼촌의 결혼식까지 촬영한 비디오를 TV에 연결해서 같이 보았다. 소풍가서 녀석이 어디론가 혼자 도망다니는 모습을 따라 가며 몰래 카메라처럼 촬영했다. 비디오에 나오는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며 저렇게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잘 하는 일이냐? 고 물으니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혼자 돌아 다닐 때는 자기 세계에 도취되어 자기 행동을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자기의 모습을 적나라 하게 보여 주니 녀석도 신기한 가 보다. 특수교육학과 대학원 논문을 보면 행동장애가 있는 아동에게 자기의 일탈행동을 촬영한 모습을 보여 주며 그 아동을 치료교육하는 내용이 더러 있다. 앞으로 비디오도 구입했으니 야외에 나갈 때 마다 녀석의 일탈행동을 빠짐없이 몰래카메라로 찍어서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인 위치에서 살펴 보도록 도와야겠다. 녀석이 엉뚱한 짓을 할 때마다 카메라 고발(?)을 준비해야지!

5월에 가는 줄로 알았던 봄 소풍이 4월행사인 것을 미처 몰랐다. 다니엘은 학기 초부터 5월이 되면 소풍을 간다고 노래를 했기 때문에 갑자기 바뀐 스케쥴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제는 오늘 소풍가지 않는다고 떼를 썼다. 5월에 가야 한단다. 그래서 아내가 5월에는 비가 오기 때문에 소풍을 가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비 오는 5월에 갈래? 비 안오는 4월에 갈래? 양자를 택일하라고 했더니 비 안오는 4월을 선택했다. 다니엘이 턱없이 고집을 부릴 때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작년 까지만 해도 양자택일법으로 재미를 많이 봤다. 특히 숫자만 나오면 흥분하는 녀석의 약점(?)을 이용해서 1번 무엇, 2번 무엇하면 금새 말려든다. 올해 부터는 녀석도 꾀를 내서 선택 안할래? 하면서 말려들지 않는다. 어제는 오랜만에 양자 택일법을 사용했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오늘은 비오는 4월이 되어 버렸다. 어제는 다니엘, 다혜를 데리고 할인점에 갔다. 간식거리를 사고 선생님 대접할 과일을 샀다. 그리고 나도 봄T를 하나 샀다. 거기에다 무비카메라를 하나 장만했다. 내가 준비하는 논문은 연구대상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비디오 촬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내는 계속 빌려서 사용하라고 했다. 1년동안 계속 찍어야 되는데 어떻게 빌리냐고 하니까 그래도 빌려서 사용하라고 했다. 짠순이 아줌마! 하긴 손 큰 남편과 함께 살려니 아내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왕 사는 것 우리 연구소의 수업장면을 인터넷에 동영상 서비스를 할려면 최신 디지털 무비 카메라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내는 무비의 '무'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가장 싼 무비카메라를 사는 선에서 합의를 봤다. 무비카메라를 이 시점에서 사고 싶었던 것은 다니엘의 소풍때 사용하고 싶어서였다. 소풍때 아이들의 행동을 카메라에 담으면 아이들이 다니엘 주위로 몰려 들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스타'가 되는 것과 '왕따'를 당하는 것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든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공통분모가 형성되면 그 위에 '스타'가 되느냐? '왕따'를 당하느냐는 노력여하에 달려 있다고 본다. 나는 우리 아들의 '스타 만들기'에 매니저가 되기로 작정했다. Star가 뭐 특별한 건가? 카메라가 따라 다니며 취재하면 그는 스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 출발부터 우리 아들을 스타로 만들었다. 무비카메라로 다니엘의 행동 하나 하나를 담으니까 자연히 아이들이 다니엘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다니엘을 찍고 있으니까 비켜 주자고 했다. 나는 모여서 같이 찍어도 된다고 하니까 다니엘을 둘러싸서 V자를 그리느라 난리법석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스타는 아이들이 몰려들자 귀찮은 듯 도망을 쳤다. 전형적인 스타의 기질(?)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팬(?)들이 스타를 잡으러 우르르 몰려갔다.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버스가 도착하자 아이들이 탔다. 부모들은 앉을 자리도 없었다. 아이들도 비좁게 겨우 타야 했다. 나도 버스에 오르지 못했다. 학교측에서 부모님들이 동반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바람 난 아빠의 바지가랑이를 누가 붙잡을쏘냐? 나는 내 차로 뒤쫓아 갔다. 견학장소는 희귀동물 초대전이 열리고 있는 '냉천 자연 랜드'였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각급 학교에서 견학 나온 학생들로도 북새통을 이루었다. 주최측에서 학생들의 가방을 한 쪽에 풀어 놓고 다시 모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 가방을 누가 지킬 것인가? 뚱뚱하고 무섭게 생긴 여 선생님이 내게로 다가왔다. "오늘 참 잘 오셨습니다. 가방을 좀 지켜주세요." 뜨아-악! 나는 오늘 소풍 온다고 혼자 들떠서 새 옷도 샀는데...나도 이런 곳에 오면 잘 놀 수 있는데... 나는 속마음을 숨긴 채 "그럼요! 제가 해야죠. 오늘 참 잘 왔네요." 그렇게 아이들은 그 많은 가방을 내게 다 맡기고 가 버렸다. 그것도 한 자리에 모아 놓지도 않고 여기 저기 반별로 옹기종기. 넓은 영역을 지켜야 하는데 주위에는 중학생 남녀 학생들이 많이 몰려 있어서 여간 신경 쓰이지가 않았다. 모든 가방들이 내 시야에 다 들어오도록 높은 바위에 올라갔다. 나는 바위에 올라앉은 한 마리 쉐파트 개가 되어 버렸다. 오늘은 비마저 얄궂게 내려서 나의 소풍을 스산하게 했다. 아! 멀고도 험한 바지바람의 길이여!

요즘 다니엘이 제일 좋아하는 게임이 숫자 찾기 게임이다. 좋아하는 아니 좋은 정도를 넘어 집착하는 숫자의 포만이 이루어지도록 게임을 한다. 1-50까지의 숫자를 무작위로 써서 먼저 찾는 사람이 숫자의 테두리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게임이다. 이 게임을 할 때 마다 녀석은 흥분이 되서 감정을 컨트롤 하지 못할 지경이 된다. 다른 사람은 못 찾게 한 쪽 손으로 가리기도 하고 남이 먼저 동그라미를 해도 자기가 그 위에 덧칠을 한다. 또 숫자를 순서대로 찾아야 하는데 뛰어 넘어서 미리 동그라미를 그리는가 하면 그 다음 번호에 미리 색연필을 갖다 대고 기다리는 지능적인 play도 한다. 바울이는 대개 다니엘에게는 양보하는 편인데 이런 게임을 하게 하면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 같다. 어쨋든 다니엘이 승부근성을 갖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곧 두 녀석이 게임을 하다가 열받아서 멱살을 잡고 싸우는 구경을 하고 싶다. 다니엘이 또 좋아하는 게임 중 하나가 '피사의 사탑'게임이다. 기울어진 탑에 인형을 쌓아 올리는 게임인데 주사위를 던지면 숫자가 아니라 색깔이 나타난다. 탑은 여러층인데 각 층마다 주사위의 색깔과 일치한 색깔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 그 층에 인형을 세워야 한다. 탑의 아래 부분이 원판모양이기 때문에 한쪽에서 인형을 얹으면 그 쪽으로 탑이 기울어진다. 그러면 다음 사람이 그 반대편에 인형을 놓아야 한다. 이처럼 1:1 게임은 다니엘이 거부감이 없이 잘 어울린다. 1:1연습을 많이 하고 익숙해 지면 한 명씩 아이들을 덧붙이면 될 것 같다. 바울이는 총에 매료 되어 틈만 나면 우리 집에 온다. 바울이는 마음이 순하고 착하다. 한가지 흠이라면 약간 산만한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데 바울이가 렌즈를 응시하고 표적을 노려보는 모습을 보면서 총쏘기 게임이 바울이에게도 집중력을 기르는데 도움을 줄 것 같았다. 오늘은 표적 맞추기 게임을 했다. 바울이가 월등히 나았다. 당연한 결과지만 자기 집 안방에서 완패하는 녀석에게 요구하는 마음이 생긴다. 오늘 부터는 특공대 훈련을 시켜야겠다. 명사수가 될 때까지 맹훈련을 시켜야지. 교관이 KGB요원 출신이라서 미덥지 못한 점이 없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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