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아이가 맞고 들어왔을 때, 또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렸을 때 엄마는 얼마나 개입해야 할까요? 다른 아이 엄마가 참견하면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도 막막해요. 남의 아이를 이렇게 키워라 저렇게 키워라 하는 훈수도 무섭고요.

살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아이쿠, 또 문제구나!’ 하면 정말 고되다. 사람이 숨을 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일이 닥치고 매 순간 결정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삶이 이어진다. 문제들은 그 가운데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더구나 자라는 아이 곁에는 언제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문제가 생겼구나. 그러고 보니 그간은 문제가 없어 평온했구나. 이제 문제를 풀어봐야지.’ 그러면서 열심히 풀었다.

내 주인은 나다
미완성인 아이들, 문제를 달고 산다. 가뜩이나 자신 없는 육아에 이웃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내 육아관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육아관으로 나를 이래라저래라 하는 엄마들이 있다. 일 저지른 아이 앞에서 “그때그때 호되게 혼내야지. 아이를 그렇게 나약하게 다루어서 어떡해?”라며 아이 야단치지 않는다고 다른 엄마를 다그치는 엄마들도 있다. 뿐이랴. 유치원 가지 않는 우리 아이를 보고 범법자 대하듯 “얘 왜 유치원 안 갔어요?” 하며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떠는 엄마도 많았다. 내 삶은 그들이 대신 살아주지 않으며 그들의 것이 아니다. 아이 삶도 마찬가지다. 결국 내 삶을 살아야 하고 내가 내 아이를 길러야 한다. 나는 늘 모두 다르다고 생각했다. 다 다르게 생겼고 인생도 다르며 생각도 다르다. 그러니 다른 엄마들이 벌이는 일을 다르게 받아들이면 ‘그러려니’가 된다. ‘나 같으면 이렇게 할 텐데 저 사람이 왜 저러지?’ 하는 마음부터 놓았다. 다른 엄마들이 날 어떻게 볼까 연연하다 보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울리게 되고 내 아이를 다른 엄마가 원하는 방식대로 기르게 된다. 남을 해코지하지 않는 한 나는 내식대로 살았다. 내가 기르고 싶은 대로 아이를 돌봤다. 다른 엄마들이 보고 있다고 내가 나답지 않아서는 안 된다.

폭력은 절대 안 된다고 가르친다
우선 나부터 내 아이를 남이 보기에도 좋게 키운다. 여러 사람 가운데 날뛰는 아이, 예의를 가르쳐라. 다른 아이를 저만 좋다고 스킨십을 하며 귀찮게 따라다니는 아이, 떼어놔라. 아이 수준에 맞게 이해시키면 된다.
“엄마. 나는 그 아이가 좋은데. 손잡는 게 좋고 머리카락 만지는 게 좋고 껴안는 것도 좋아.” “그런데 걔는 싫대. 그게, 네가 뜨거운 물에 목욕하기 싫은데 엄마가 좋으니까 자꾸 욕조에 집어넣고, 채소가 싫은데 엄마가 좋아하니 채소만 먹으라고 하면 좋아?” 한마디의 말로 바로 알아듣고 행하는 아이는 없다. 아이가 진정으로 이해할 때까지 자주 부드러운 말로 주지시켜야 한다. 그러는 사이 남이 싫어하는 일을 차츰 줄이게 되며 분쟁도 준다. 뜻이 맞지 않으면 손으로 해결하려는 아이들이 있다. 그건 어려서부터 잡아줘야 한다. 누가 뭐라 했든 폭력은 절대 안 된다. 그런데 아이라서 주먹을 휘두르게 되고 손을 살짝 댔는데 손톱 자국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 아이 팔을 꽉 움켜잡고 눈을 똑바로 보며 “폭력은 나빠, 절대 안 돼” 하며 바로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너무 다그치지는 말자. 차차 줄이겠다는 각오를 갖고 부드럽게 타일러야 한다.

상처 받은 아이, 엄마 품에서 치유 받는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무색하게 요사이는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진다. 내게 우리 아이 혼냈다고 뻐기는 엄마, 전화로 우리 아이를 눈물 빼도록 혼내는 엄마도 있었다. 전화를 받고는 햇살처럼 밝던 아이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에 다가가 물으니 정훈이 엄마가 자기 애 괴롭히면 죽도록 혼내준다고 엄포를 놓더라는 거다. 아이를 품고 다독이고 “네가 정훈이 괴롭혔니?” 하고 물었다. 그 아이가 아주 작고 귀여워 날마다 곁에 두고 예뻐해줬단다. “그래. 우리 홍원이는 다른 아이 괴롭히지 않아. 그 엄마가 뭘 잘 모르고 전화했구나.” 품어주는 엄마 앞에서 아이는 힘을 얻고 다시 생기가 난다. 아이가 울고 있을 때, 마음 아파하고 있을 때 재판관처럼 따지고 들 게 아니라 먼저 아이를 품고 마음을 달래줘야 한다. 그다음에 상황 파악에 나서야 한다. 그게 엄마의 태도다. 그 오해는 오래지 않아 풀렸고 그 엄마는 두고두고 홍원이에게 미안해하고 내게 고마워했다. 아이들은 변함없이 사이좋게 지냈다. 남의 아이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어른의 태도가 어이가 없지만 모든 엄마가 나처럼 생각하고 행하지 않는다. 그걸 어쩌랴. 나마저 나서서 어른 싸움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언제나 평화를 생각한다
내게 전화로 그 집 아이 때렸다고 따지는 엄마 말을 들으면 우선 그 아이 상태를 물어 염려하는 내 마음을 전했다. 다 듣고는 우리 아이 말도 한번 들어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언제나 제 입장에서 말한다. 알고 보니 그 아이가 싫어하는 반찬을 우리 아이 식판에 놓았고 우리 아이가 그 아이 식판으로 던지니 그 아이는 거기다 침을 뱉었다. 이어서 서로 치고받은 것이었다. 손을 댄 아이가 잘못되었지만 밥에 침을 뱉으니 참을 수도 없었을 듯했다. 어차피 서로 치고받은 것이고, 다 억울했다. 그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정황을 알려 오해를 풀었다. 호호 불며 기른 귀한 아이가 맞고 들어오면 화가 나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그 아이를 나무랄 것인가.
너무 일방적으로 당하고 심하게 계속된다 싶으면 관여했다. 태경이 앞에 앉은 남자아이가 왜 나 보냐며 수시로 때려 걱정하고 있던 터에 놀이터에서 마주쳤다. 힘 있는 아이가 우리 아이 괴롭힌다고 엄마가 나서면 내가 아무 짓을 안 해도 어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아이에겐 큰 폭력이 된다. 조심스레 아이에게 다가가 “참 잘생겼구나. 너 때문에 우리 태경이 학교 다니는 게 죽을 맛이래” 하며 말을 거니 “걔도 저 약 올려요”라고 맞받아쳤다. 제 주장하는 그 아이가 밉지 않았다. 날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니 다행이었다.
우리 아이 때린 걸 내가 때려준다고 맞은 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순간부터 다시는 이 아이가 우리 아이 때리지 않게 하는 게 내 목표다. 이 아이 역시 나로부터 상처 받지 않게 하면서. 그 무렵 아이들이 좋아하는 배트맨이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악당을 혼내준다는 얘기를 예로 들며 “너도 배트맨처럼 훌륭해져라, 태경이 타이를 테니 너도 이제 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해서 보냈다. 그 후, 그 아이는 태경이를 때리지 않았으며 우리 두 아이의 보디가드가 되었다. 나는 언제나 평화를 생각했다. 내 평화뿐 아니라 내 아이의 평화, 다른 아이의 평화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