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24일 시흥 군자초등학교에서 학자모 모임에서 강의할 인성교육 초고를 미리 실러서 여러분의의견을 듣고자 하오니, 좋은 글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다녀와서 경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 재 욱 드림.
내 아이 제대로 알고 잘 키우기
강사 : 노재욱(한국인성교육학회 이사장/교육학)박사
Ⅰ. 인성교육에 대한 바른 인식
흔히 우리는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바른 인성교육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고 있다.
예절교육을 비롯하여 윤리 도덕에 이르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덕목을 포괄적으로 일컬어 인성교육이라 한다면, 그 범위가 너무 넓고 깊어서,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연함으로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이 어려운 인성교육을 아주 쉽게 풀어서 시작하여 보자.
01. 인성교육이란 사람이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자지고 나오는 사람으로서의 바탕이며, 이 바탕을 그대로 살려 사람답게 키우는 교육을 ‘인성교육’이라 한다.
02. 사람이 본래 타고난 바탕이란, 사랑(仁)과 올바름(義)과 겸손(禮), 그리고 슬기(智)이며, 이를 두고 우리 동양 문화권에서는 사람의 네 가지 실마리(四端=사단)이라 했으며, 여기에 믿음(信)을 더하여, 사람이면 마땅히 가져야 할 다섯 가지 비리(五倫=오륜)라 하였다.
03. 위의 사단(四端)과 오륜(五倫)은 누구나 타고난 바탕이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 없고, 이 사단에서 싹이 터 생기는 기쁨(喜=희), 노여움(怒=노), 슬픔(哀=애), 즐거움(樂), 좋아함(愛=애), 싫어함(惡=오), 욕심(慾=욕)의 일곱 가지 정(情)에서부터는, 올바르게 키워야 할 교육이 필요한데, 이를 싸잡아 인성교육이라 한다.
04. 물론 이 인성교육은 환경에 따라 방법을 달리해야 되겠지만, 여기서는 어린 유아와 초등학교 어린이를 가진 엄마들이 그 자녀에 대한 인성교육을 어떻게 함이 좋을까를 말하고자 한다.
Ⅱ. 어린이의 인성교육을 위한 엄마의 마음가짐.
엄마가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관심을 갖고,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먼서,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품성이 남보다 모자라는지 등을 알아야 인성 교육의 방향도 잡힌다.
게으름을 부리거나 남한테 양보할 줄 모르는 것, 거짓말 따위의 문제점을 찾아냈다면 이때부터는 일관성 있는 가르침을 펴 나가야 하는데. 가치관이 서기 시작하는 이맘때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부모의 가치관도 일관성 있게 바로 서야 한다.
01. 아이 듬뿍 사랑하기
아이들 인성은 '경험'으로 갈고 닦인다. 그 가운데 가장 좋은 경험은 '부모의 사랑'이다. 부모 사랑을 흠뻑 받으며 즐거움을 경험한 아이들은 자신도 부모를 즐겁게 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싶어 한다. 부모가 책을 읽어 주고 안아 주고 즐겁게 노는 모든 일들이 사랑을 아이 마음속에 전해 주는 인성 교육의 첫걸음이다.
02. 말과 행동은 똑같이
'어른한테는 공손하게 인사해야지.' '동생한테 양보할 줄 알아야 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돼!' 하는 말은 어떤 부모나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말만 하고 몸짓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절대 그 말에 따르지 않는다. 싫은 사람한테 전화 올 때 '엄마 없다고 해.' 하고 말하거나 아이 태우고 운전하면서 담배꽁초를 창 밖에 던져 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03. 부모 먼저 반듯하게
유치원 교사들은 아이들 행동이나 말투만 봐도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경질적인 부모 밑에 자란 아이는 친구들한테 신경질적이고, 부모가 거칠게 말하면 아이도 말이 거칠다. 부모는 설거지를 잔뜩 미뤄 두고 아이한테만 장난감 정리하라고 윽박질러야 아무 소용없다. 입만 열면 남 흉보기 바쁜 부모가 아이한테 고운 말을 써야 한다고 말해 본들 헛일이다.
04. 내 아이에 맞는 훈육 방법 찾기
이맘때 아이들 특성이 어떻고, 책에 어떤 말이 나와 있다고 해서 모든 아이한테 똑같이 잘못할 때 벌을 주고 야단을 쳐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가게에서 아이가 물건을 사 달라고 조를 때도 그 전까지 아이가 부모한테 사랑을 충분히 받았다고 느끼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반응을 달리해야 한다. 사랑 받았다고 충분히 느끼지 못한 아이한테는 무턱대고 안 된다고 하기보다 되도록 요구를 들어주고, 나중에 믿음을 더 쌓아 아이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가서 집안 형편이나 안 되는 까닭을 말해 주면서 스스로 욕구를 참을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05. 남의 처지 생각하는 능력 길러 주기
'이타심'이란 서로 처지를 바꿔 문제를 생각해 보는 과정을 많이 거치면서 길러지는 능력이다. 이타심이 많은 아이일수록 친구들한테 인기가 높고 사회 적응도 빠르다. 아이를 왕자나 공주처럼 제 좋은 것만 하게 키우는 것, 경쟁심을 부추겨 남을 딛고 올라서게만 가르치는 것도 아이한테 이타심 배울 기회를 잃게 만든다.
06 옳고 그름 분명히 알려 주기
뇌물을 주고받고 비리를 일삼으면서도 눈 하나 까딱 않는 어른들은 어릴 때 어떻게 집안 교육을 받았을까? 양심의 기초는 어릴 때부터 바탕을 닦아야 한다. 옳지 않은 충동은 스스로 참아 낼 수 있게도 가르쳐야 한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정확히 알려 주고, 그것을 어기면 아이 스스로 양심에 가책이 들게 해야 한다. 죄책감을 경험해 본 아이만 바깥에서 쏟아지는 여러 가지 유혹을 부모가 곁에 없어도 견뎌 낸다.
Ⅲ. 인성교육의 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엄마들의 교양
01. 어린이의 이해와 인간의 본성 탐구
유아의 이해란 '인간 이해'의 연장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 이해를 위한 모든 심리학적 방법은 궁극적으로 그대로 유아 이해의 바탕이 되며, 그 반대도 또한 진실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지탱하고 있는 두 가지 조건, 즉 행동하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조건과 행동이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환경이 갖는 조건,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상호관련성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개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조건의 총체를 심리학에서는 성격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성격과 환경의 두 가지는 전혀 별개의 독립된 것이 아니고 서로 복잡하게 얽히거나 일체화되어서 작용하는 것이다.
02. 레윈(Lewin)의 인간행동 결정공식
'어린이의 이해'라 하면 어린이의 성격적 조건을 밝히는 것을 중심으로 하면서, 거기에 작용하고 있는 환경적 조건의 관련성을 밝힘으로써, 유아의 행동이나 가능성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더욱이 '어린이의 이해'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 것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고 성장 도상에 있고 '발달해 가고 있는 존재'로서의 어린이, '가정에서나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계속 교육을 받고 있는 존재'로서의 어린이라는 점을 인식할 일이다. 따라서 어린이의 이해란, 당연히 그 발달적 이해이며 교육적 이해이며 나아가 가능성의 이해라야 한다. 이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해를 토대로 해야만 그 이후의 성장과 발달, 또 교육의 방향 지시와 기본적인 방법을 강구할 수 있는 것이다.
03 어린이를 이해하는 다양한 관점
(1) 어린이 이해의 심리적 관점
어린이를 이해한다고 할 때, 크게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어린이가 유아기에 있기 때문에 지니고 있을 심리적 구조나 기능의 발달적 특징과 그들이 보여주는 상태를 아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이 하나하나가 개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심리적 특징을 하는 일이다. 물론 후자의 이해에는 어떤 형태로든 전자의 이해가 배경이 되고 있으며, 또한 그 반대로 후자의 경우와 같은 개개인의 이해가 깊어질수록 같은 연령 단계에 있는 유아 전체에 대한 지식도 보다 충실해질 것이다. 유아심리학· 아동심리학· 발달심리학의 지식은 개개의 어린이의 개성의 이해나 지도에 불가결한 요소인 것처럼, 개개 어린이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짐으로써, 이들 심리학들은 그 실제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개개 어린이에 대한 심리학적 지식이나 발달적 이해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깊은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유아와 아동을 다루는 연구자들을 비롯해서 교사, 부모, 기타 전문가들은 이 두 측면에 모두 관심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
(2) 발달하는 존재로서의 어린이 이해
(가) 어린이를 보는 관점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특히, 이 입장은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동일성에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분명히 어른과 어린이 모두가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정신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복잡한 조건 속에 있는 이론에 관해서 연구하기보다는 비교적 단순한 조건하에 있는 어린이에 관해서 연구하는 편이 여러 가지 정신기능이나 기본적 성질을 보다 분명히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의미로는 어린이를 통해서 인간 이해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견해를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어린이를 「작은 어른」, 「어른의 축소」로 보기가 쉬우며, 이른바 어른중심주의 교사중심주의의 나쁜 폐단에 빠지기 쉽다. 어린이란 결코 어른의 축소가 아니고 오히려 어른 속에 어린이였던 때의 기본적인 성격구조, 정서의 역동, 인지구조 등이 침투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훨씬 타당한 것이다.
(나) 어린이를 보는 시각
어른과 유아 사이의 차이성에 특히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는 입장이다. 특히, 유아가 어른과 다른 점을 밝혀냄으로써 유아가 가지는 특성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종래의 유아, 아동 연구는 주로 이점에 있어 커다란 공적을 남겼다. 예컨대, 과거에는 오랫동안 유아의 사고방식이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며, 이와 같은 잘못된 사고는 또한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리하여 그와 같은 사고방식의 잘못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바른 사고방식을 주입해서 바로 잡아주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옳다'니 '그르다'니 하고 말하는 것은 대체 무엇을 근거로 해서 말하는 것일까? '옳다'고 하는 것은 이 경우 「어른의 사고와 같은 사고」를 하는 것, 즉 어른의 해답과 일치하는 해답을 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유아는 유아 나름대로의 하나의 질서와 필연성에 따라 사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 유아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질서를 아는 것이 유아 이해의 제 일보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이 일반적으로 빠져 왔던 수험적사고 방법 때문에 하나의 정답만이 전부의 정답인 것처럼 믿게 되었고, 테스트는 어느 것이나 정오라는 관점에서만 문제를 삼았지 그 해답을 끄집어내게 된 어린이의 사고 과정 자체에 대한 이해나 체험의 추적 같은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사실은 오답 속에 어린이의 「참모습」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밝혀 준 점에서 아동심리학의 공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 어린이를 보는 견해
발달적 입장이다. 앞의 두 입장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즉, 유아란 분명히 어른과 다른 존재이지만 어른과 다른 존재인 그 어린이가 언젠가는 어린이와 다른 어린이 되어 간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 관심을 두는 입장, 즉 어린이의 변화성이라는 현상에 주목하는 이장이 곧 발달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의 성장 발달에 관한 연구나 어린이를 발달하는 존재로서 이해하려는 시도는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접근방법과 함께 앞에서 언급한 어린이와 어른의 동일성과 차이성에 대하 관점은 오히려 발달에 있어서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의 문제로서 이 세 번째 입장에 통합되어질 수가 있게 된다.
* 심리학적 측면에서 본 인간 → ① 욕구를 지닌 존재 ② 가능성을 지닌 존재 ③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 ④ 개성(개인차)이 있는 존재 ⑤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
(3) 발달의 개념
발달이란 생명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다. 즉 개체 출생으로부터 성숙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변화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발달은 어린이가 제각기 타고난 소질과 항상 변화하는 생활환경을 상호 연결하면서 눈에 띠게 급속한 변화의 과정을 밟으며 점차로 개성을 뚜렷하게 나타내 가는 모습으로 개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요인들과 환경의 여러 요인들이 서로 작용해서 이루어진다. 이에 발달은 개체가 그 생명활동에 있어서 그 환경에 적응하여 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도 있다. 발달은 인생의 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이며 이 변화가 계획된 순서대로 체계적으로 일어나므로 예측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모두 그 종 특유의 발달의 형에 따라서 발달하는 발달의 원리가 있다. 즉 여러 발달 연구의 결과를 개관하여 인간발달의 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 발달에는 순서가 있으며, 그 순서는 일정하다
어린이들의 운동발달을 보면, 어린이는 앉을 수 있게 된 다음에 비로소 설 수 있게 되며, 설 수 있게 된 다음에 걸을 수 있으며, 목표를 향해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목표하는 물건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운동발달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 또한 발달이 진행되는 방향에도 일정한 경향이 있다. 첫째, 상부에서 하부로 즉, 머리에서 발 방향으로 발달한다. 둘째, 중심에서 말초방향으로 발달한다. 셋째, 전체활동에서부터 특수활동으로 발달한다. 즉, 어린이가 물건을 잡으려 할 때, 처음에는 무작정 마구 잡다가 차차 손목, 손가락을 사용하여 잡게 되며, 걸음걸이도 처음에는 부자연스러운 운동을 수반하지만, 점차적으로 보행에 필요한 근육과 팔다리만을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발달에 일정한 순서와 방향이 있다는 사실은, 발달의 전 단계는 다음 단계의 기초가 됨을 의미하며,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행한다는 것은 보다 높은 차원의 발달이 이루어짐을 뜻한다.
(나) 발달은 계속적인 과정이나, 발달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지 않다.
신체의 각 부위에 따라, 또 정신 기능에 따라 발달의 속도가 각각 다르다. 또 특정한 측면의 발달에 있어서도 발달 단계에 따라 그 속도가 항상 일정하지 않다. 예컨대. 신체의 발달은 유아기와 사춘기에 급격한 증가를 나타내나 다른 시기에는 발달속도가 느리다. 어휘 수는 유아기에 급격히 발달하며, 추리력은 서서히 발달하여 아동기를 지나 청년기에 완숙된다. 이와 같이, 특정한 시기에 어떤 기관이나 기능의 발달이 급격히 진행되는데, 이러한 시기를 결정적 시기라 한다. 이러한 시기에 정상적인 발달이 장애를 받으면 영구적인 결함을 지니게 되는 수가 많다.
(다) 발달은 성숙과 학습에 의존한다.
연령 증가에 따라서 나타나는 발달적 변화는 성숙과 학습의 소산이다.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에서 성숙요인(즉, 생물학적·유전적 요인)의 영향이 큰가? 또는 학습요인(즉 환경적, 경험적 요인)의 영향이 큰가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아직도 명확한 결론은 못 내리고 있다. 그러나 성숙과 학습이 서로 상승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라) 인간의 발달에는 개인차가 있다.
모든 사람이 보편적인 순서에 따라 성장·발달해간다. 그러나 개개인의 발달을 보면 개인차가 있음을 발달해 간다. 즉, 발달은 일정한 보편적 패턴을 밟으면서도 개인차를 나타낸다.
(마) 발달의 초기단계는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생의 초기단계인 유아기의 발달은 이후의 모든 단계의 성장, 발달을 좌우한다. Blackmore & Michell(1973)의 연구에 의하면, 고양이를 낳자마자 어두운 우리 속에 가두어 빛을 보지 못하게 길렀더니 그 후 정상적인 환경으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 시력장애를 보였다고 한다. 만일 사회적 접촉의 결여로 아기가 어릴 때 정상적인 언어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계속 언어장애를 갖게 되며 심할 때는 자폐적인 징후를 나타내게 된다.
(바) 발달의 각 측면은 서로 밀접히 상호 관련되어 있다.
과거에는 신체적 발달, 지적 발달, 성격발달이 서로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각 측면의 발달이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즉, 신체발달이 우수한 아동이 보다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을 발달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대인접촉의 결핍은 사회성의 발달을 저해함은 물론, 언어발달과 사고발달 등의 광범위한 인지적 발달장애를 수반한다는 보고들이 있다.
(사) 유아의 정서적 발달
어린이는 엄마나 엄마처럼 돌보는 사람에게 친근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런 '애착'은 '모성애'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 애착이란 한 인간이 대부분의 가까운 사람들과 맺고 있는 강하고 지속적인 정서적 유대이다. 애착된 사람들은 자주 상호작용 하려 하고 늘 가까이 있으려 하는 경향이 잇다. 엄마에게 애착한 8개 월 된 아기는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서 울거나 매달리거나 졸졸 따라 다닌다. 애착이란 성격상 선택적이어서 그 누구보다도 애착인물과 같이 있는 것이 어린이에게는 더욱 유쾌하거나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면 애착의 기본이 되는 정서적 발달을 살펴보기로 하자. 온종일 먹고 싸고 자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매우 어린 유아에게도 감정이 있을까? 이들도 어른처럼 행복, 기쁨, 슬픔, 공포 등의 구체화된 정서를 경험하며 나타낼 수 있을까? 한 연구에서 1개월 된 유아의 엄마 중 절반 이상은 자녀가 관심, 놀람, 분노, 기쁨, 공포를 나타내기 위해 서로 구분되는 정서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아) 안면표정과 음성을 통한 정서의 표현
어린 유아는 안면표정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정서를 타인에게 나타낼 수 있다. 여러 정서들은 생후 2년 동안 각각 다른 시기에 나타난다. 출생 시 신생아는 관심, 싫어함, 미소 등을 보이며 3∼4개월경에는 화난 표정을 짓고, 불쾌한 자극을 피하기 위해 손, 발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와 비슷한 시기에 슬픔을 나타내며, 5∼7개월 사이에 공포를, 뒤이어 수치심과 수줍음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죄책감과 경멸과 같은 복잡한 정서는 생후 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타낸다. 또한 유아는 음성으로도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 분명히 건강한 신생아는 적어도 세 가지 울음소리를 낼 수 있다. '배가 고픈 울음'은 훌쩍거리며 시작되고 점점 소리가 더 커지며 지속적이다. '화난 울음'은 율동적이거나 더욱 강렬하다. '고통스런 울음'은 악을 쓰며 시작하여 잠시 쉬었다가 더 힘차게 울어댄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소위 유아의 정서표현이 다만 좋거나 싫다는 감정(쾌, 불쾌 정서)을 나타내는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비판은 여러 성인이 유아의 특정한 감정을 어떻게 동일하게 알아챌 수 있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게다가 유아는 예측할 수 있는 방식으로 특정한 종류의 경험에 반응한다. 가령 생후 몇 주가 지나면 부드러운 소리나 신기한 시각적 자극에 대해 유아는 관심을 표시하고 미소를 띄운다. 예방접종 때 2개월 된 유아는 고통스런 안면표정을 보이는 반면에, 더 큰 유아는 분노를 나타낸다. 그리고 한 아동의 감정표현에는 일관성이 있다. 가령 괴로운 자극에 대해 강하게 반응하는 유아는 몇 달 후에 재검사에서도 격렬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 정서와 초기의 사회적 발달
어린이의 정서가 초기 사회적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분명히 그것은 의사전달의 기능을 하여 돌보는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가령 고통스런 울음은 가까운 사람을 불러들인다. 미소나 관심의 표현은 유아가 같이 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함께 있으려 한다는 것을 돌보는 이에게 알려준다. 공포나 슬픔의 표현은 어린이가 불편하다거나 우울하므로 돌봐줘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 분노는 어린이를 화나게 하는 것을 없애달라는 신호의 기능을 한다. 이처럼 정서는 사회적 접촉을 촉진시키고 부모가 유아의 욕구와 목표에 따라 행동을 조절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적응적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어린이의 정서표현은 어린이와 부모 및 가까운 사람들이 서로를 잘 알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이와 동시에 어린이가 다른 사람의 정서를 인식하여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성취로서, 이것을 통해 어린이는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느끼고 행동해야만 하는지 추론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사회적 추론을 통해 아동들은 여러 가지 사항을 재빨리 습득할 수 있다. 예컨대, 엄마의 고통스런 모습이나 염려하는 표정을 통해 아기는 즉각적으로 자기 손에 든 칼에 주의해야 할 도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서 표현적인 엄마가 어린이로 하여금 자주 환경의 중요한 측면에 주목하게 된다면 정서표현에 선천적으로 담겨있는 정보는 어린이가 세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4). 주요한 정서의 발달
(가) 어린이의 공격성
많은 연구를 통해서 유아 또는 아동의 공격행동에 대해 밝혀진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산발적인 분노발작은 학령 전 시기에 점차 감소하다가 4세 이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동기에 나타내는 공격의 정도는 학령 전 시기에 걸쳐 증가하다가 4세경에 그 정점에 이른다.
둘째, 공격이나 좌절에 대해 반응하기 위해 보복하는 경향은 3세 이후 극적으로 증가한다.
셋째, 공격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은 연령에 따라 다르다. 2∼3세된 아동은 대개 부모로부터 혼나거나 좌절당했을 때 가장 공격적이다. 그 이후의 아동은 형제자매나 또래아동과 갈등이 있을 때 훨씬 공격적이다.
넷째, 공격의 형태도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변한다. 2∼3세경의 아동은 상대방을 치거나 하기 쉽다. 이들의 말다툼은 대개 장난감과 기타 소유물에 대한 것이므로 주로 수단적 성격을 띠고 있다. 유치원아동(초등학교 저학년아동)은 신체적 공격을 점점 덜하는 한편 애먹이고, 비웃고, 고자질하며, 무례하게 욕한다. 좀더 큰 아동도 역시 물건 등을 가지려고 서로 다투지만 적대적 공격의 비율이 더 증가한다.
(나) 이타성을 비롯한 친사회성
이타성이란 타인의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려하는 내재적인 심리적 특성이다. 이타성은 아동기 또래 집단뿐 아니라 성인 된 후의 사회적 관계에서 개인이 얼마나 집단의 성원으로부터 존경받고 수용되는가를 결정하는 주요한 특성이다. 친사회적 행동이 일정수준의 인지 및 정의적 능력의 발달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면 영아기에 친사회적 행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2세 이전의 아기들도 다른 아기가 아파하면 함께 울고, 위로하며, 나누어 갖는 등 여러 형태의 친사회적 행동 특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어머니가 다쳤다든가 몹시 화가 났을 때 어머니에 대한 반응을 분석해보면 2세 이전의 어린 영아는 함께 우는 것 같은 공감적 반응을 보이며, 2세 전후에는 위로하고 도와주려는 행동이 나타난다. 이처럼 일찍부터 친사회적 행동이 나타나는 것은 친사회적 행동이 인간의 본성의 일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머니가 영아의 요구에 민감할수록 영아의 공감적 반응의 정도도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동이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친화적 행동도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2∼3세경의 유아도 곤경에 처한 또래에 대해 이타적 행동을 보인다. 그러나 자기만 먹기에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과자를 나누어 먹는 것과 같은 자발적인 자기희생적 친사회적 행동은 드물게 나타난다. 이타적 행동은 4∼6세경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9∼10세경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인다. 실험실에서 아동의 행동을 관찰한 연구들도 대체로 나이든 아동이 나이 어린 아동에 비해 나누거나 돕는 친사회적 행동의 빈도가 높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처럼 실험실에서나 일상의 관찰에서나 친사회적 행동이 명백히 연령과 함께 증가하는 것은 아동이 성장함에 따라 협조의 가치와 필요성 및 방법을 이해하는 인지적 능력이 발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 정서의 발달과 성격형성
정서의 발달은 그대로 성격형성과 직결되어 나타난다. 말하자면 아동의 정서발달이 바로 성격형성이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 성격형성의 요인에는 우선,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생물학적 소질에 대한 영향이다. 어린이는 백지상태에서 태어난다고 하는 말이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어린이의 개성에는 어떤 난자가 어떤 정자와 결합하는가 하는 순수하게 생물학적인 운명으로서 결정되는 부분이었다. 동일한 부모에서 태어난 형제라도 형은 차분한데, 동생을 활달한 것 같이 서로 다른 선천적인 소질에 의한 것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생물학적 소지에 추가하여 사회적 환경, 부모자녀관계 등이 상호작용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어린이가 양육에 따라 핵가족 속에서 자라는가? 조부모와 함께 사는가? 또는 시골에서 자라는가? 도시에서 크는가? 등 여러 가지 환경요인이 그 어린이의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컨대, 어머니를 유아기에 잃어버린 경우가 있을 것이며, 그것도 사별에 의한 것도 있을 수 있고, 이별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가 양육되는 사회적, 시대적 배경도 영향을 줄 것이다. 예컨대, 지금의 젊은 세대와는 달리 2,30년 전의 세대는 개인의 자유가 국가를 위해서 극히 제한된 삶을 산 세대이다. 그러므로 구세대의 사람들이 오늘날 자유스럽게 되어 거꾸로 자신의 욕망을 외적인 제약 없이 내적으로 자기억제 할 것이 요구되는 현대의 절은 세대의 사람들에 대하여 도덕관이나 인생에 대한 쌍방의 의견불일치를 극히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인에 관하여 지금까지 언급한 부분은 어디까지나 환경 나름의 운명에 관한 객관적 사실로서 보는 측면, 말을 바꾸면 하드웨어 부분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서 눈에는 잘 보이지 않고 객관적으로도 평가하기 힘든 소프트의 부분, 즉 어린이에 대한 기대, 걱정 등과 같은 감정적인 측면에 눈을 돌려보면 그것이 성격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가 없다. 말을 바꾸어서 한다면 외적 기준으로서 환경(하드웨어의 부분)에 대해 그 속에서 생활하는 어린이의 주위사람들이 각각 어떠한 기분을 품고, 어떠한 주관적인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린이에게 어떠한 기분으로 대하고 있는가하는 것 등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의 부분에 해당한다. 소프트웨어의 부분에 예로서 이 외에도 이 어린이를 임신했을 때 또는 출산 시 어머니(또는 아버지)는 어떠한 기분을 체험했는가, 부부사이에 어떠한 정서적 교류가 있었는가, 부모가 서로 배우자에 대해서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 어머니(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자기의 어머니(아버지)에게 어떠한 기분을 갖고 있었는가, 형제들은 어떠했는가? 등 모든 대인관계에서의 감정체험이 포함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머니는 그 어린이를 정말로 원해서 임신하고 진정 원해서 믿음직해서 키웠는가, 또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정말로 만족을 얻고 있는가, 자기는 자기의 어머니로부터 충분한 애정을 받으면서 자라왔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등이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 것과 관련해서 실제로 어린이의 교류 속에서 어머니(아버지)가 어린이가 나타내는 신호(사인)를 어느 정도 공감을 가지고 읽으며, 받아들이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가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머니(아버지)가 이러한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 “어머니의 애정은 가치 없다”라든가, '공감부전' 등과 같은 상태가 나타나고, 어린이의 성격형성 상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여기에 추가하여 어린이 측에도 어머니의 애정을 잘 받도록 하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또는 어머니로부터의 돌봄을 좋은 체험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지가 있는가 하는 어린이의 소질이나 체험의 통합능력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고려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어린이는 어머니(아버지)와의 상호교류를 통해서 자기 이외의 사람들의 마음을 공유하기도 하고, 함께 나누거나 하는 방법을 배운다. 마침내 그것이 부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대인교류에도 확대되어 그 속에서 여러 가지 감정체험의 공유를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체험을 계속하여 그것을 통합, 정착시켜감으로써 타자와의 사이에서 신뢰관계나 안정감을 갖게 되어 보다 풍부한 성격을 형성해가는 것이다.
(라). 영, 유아기의 심리적 특성
어린이는 여러 개의 다른 단계들을 거치면서 발달해 나간다. 그러므로 유아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특히 심리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자연적인 발달속성에 따라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1살부터 3-4살까지의 유아의 특성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자기과시(self-display)
어린이의 첫 일 년간의 욕구는 안전감과 사랑에 관한 것이다. 만 두 살이 되면 자연스럽고도 본능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자기과시의 욕구가 생긴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주의를 집중해 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목의 대상이 되기 원하는 어린이에게는 꾸짖기 위한 부정적 관심보다는 개인적이고도 긍정적인 관심을 늘 기울여 줄 필요가 있다.
2) 호기심과 탐색(curiosity and exploration)
두 살 난 어린이의 호기심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린이의 이러한 호기심이나 탐색의 욕구에 도움이 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집안은 가능하면 마음대로 움직이고 놀고 만져도 되는 자유가 허락되는 환경이어야 한다. 그러나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도 되는 것을 이때부터 일관성 있게 지도할 필요가 있다.
3) 모방(imitation)
어린이가 타인의 행동을 흉내 내는 일은 자연스럽고도 자발적인 일이어서 좋은 행동이든 나쁜 행동이든 그대로 반영하는 법이다. 모방은 일종의 잠재적인 과정이어서 언어로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다. 따라서 부모가 살아 있는 모델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일관성 있게 여러 모델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가정은 모방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4) 자기의지(self-will)
두 살 전후의 어린이는 자기고집 내지 억지가 강하다. 이 시기 어린이의 심리적 특성인 이러한 성향을 인간의 원죄와 연관지어 보려는 시각은 어린이를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바르게 해석한다고 볼 수 없다. 어린이의 자기고집을 강압적으로 억압하거나 부모의 의사에 따라 꺾으려고만 한다면 어린이에게 불안을 가중시키고 공격적이고 화를 잘 내는 품성을 낳게 된다. 나중에 성장하여 나타나는 영적인 문제, 심리적인 문제의 뿌리가 이때 벌써 생기는 것이다. 어린이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주변 인물들과 자신의 수준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대처(cope)하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어린이의 자기 고집을 보다 협동적인 방향으로 지도할 필요가 있다.
5) 자기중심(self-centeredness)
취학을 전후하여 나타나는 특성이다. 이 시기 어린이는 성인이 가진 모든 요소를 거의 다 갖추고 있다. 특히 상상력이 풍부하여 사실과 허구를 혼동하여 물활론적 사고를 하며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사고를 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논리의 순서에 대한 전환이 불가능하다.
(5). 유아관찰법의 성질
관찰법이란 가장 기본적인 어린이 연구 방법의 하나이다. 비단 어린이 연구뿐 아니라, 과학적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밖으로 나타나는 어린이의 행동을 직접적이며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해서, 어린이와 그 어린이가 놓인 장면과의 관련성을 분석함으로써 어린이의 행동의 법칙이나 행동 특징, 또는 성격 특징이나 심리적 특성 등의 내면 생활을 추리해 내고, 그것으로 어린이를 이해하려는 방법이다. 우리가 어린이에 과한 정보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 수준이 있다. 하나는 잘 훈련된 전문가들에 의해 신중하게 통제된 상태에서의 관찰에 기초한 '어린이 일반'에 관한 정보 수준이 있고, 다른 하나는 관찰자 자신의 어린이에 대한 관찰을 통한 개인적인 직관과 이해의 정보 수준이 있다. 이 두 가지 관찰은 서로 독립되어 있지 않고 서로 보완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원용할 필요가 잇다. 관찰법에는 연구 방법으로서의 장·단점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가) 장점
1) 어린이 자신에 의한 구두 보고가 아니고 어떤 사태와 어린이의 행동과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므로, 주관적 보고에서 오는 왜곡을 방지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2) 연구하려고 하는 행동의 발생을 직접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기록의 객관성이 보장된다.
3) 연구자에 의한 추측에서 오는 모호성이 적다.
4) 구두 보고가 어린이의 연령의 제한을 받지만 관찰에서는 그런 제한을 받지 않는다.
(나) 문제점
1) 자연발생적인 행동을 관찰하는 경우에는 원하는 행동의 관찰이 반드시 가능하다고 할 수 없다.
2) 어린이의 표현된 행동이 현상적으로 동일하다고 해도,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반드시 동일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3) 행동과 사태를 반드시 관련지어서 추적해야 한다.
4) 주관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관찰자에 따라 관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5) 결과 처리가 번거롭고 체계적으로 하기 어렵다.
6) 외면 행동으로 내면 생활을 미루어 알려면 장기간에 걸친 관찰이 필요하다.
7) 기록은 행동 발생과 동시에 하는 것이 어렵다
Ⅸ 엄마가 꼭 가르쳐야 하는 인성교육
'왕따' '학원폭력' 등 이제는 범죄로 취급될 정도로 무서워지고 있는 아이들 문제.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 속에서 어린이들을 모두 '피해자'로 보고 있다. 바로 공부 일등만을 손꼽는 우리 엄마들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성교육기반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박한 세상에 발을 내딛는 어린이를 위해 엄마가 꼭 가르쳐야 하는 교육에는 무엇이 있는지 짚어보자.
(가) 어린이의 낯설음을 극복 시킨다.
어린이들은 부모로부터 보호받고 싶어 하는 본능이 큰데, 바깥 세계로 나갈 때 이런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낯설음이 두려움이 되어 새로운 환경에 처했을 때 불안해하게 된다. 따라서 소극적이고 남들과의 관계에 나서지 못해서 스스로 왕따가 되거나 다른 어린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서 왕따를 당하게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낯을 잘 가리게 되면 어린이들은 내성적이다 못해 심하게는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특히 요즘은 외동아이가 늘고 있기 때문에 낯가림을 하는 어린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렇게 어린이가 낯을 가리거나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감이 클 때는 엄마가 어린이를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린이가 놀이방이나 학교에 가서 적응하지 못하고 매일 울고 집에 들어온다거나 가기 싫어한다고 해서 무조건 야단을 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싫다고 할 때는 어린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어린이가 원하는 대로 놀이방이나 학교를 보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어린이의 의견이 수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고개를 끄덕여주어야 한다. 단 하루를 보내지 않더라도 어린이로 하여금 부모가 자기편에서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 올바른 감정 전달법을 알게 한다.
어린이가 놀이방이나 학교에 가면 엄마들이 맨 처음 하는 걱정이 '친구들과 싸움이나 하지 않을까'이다. 물론 이겼다고 좋아하는 엄마들도 있지만, 친구들과의 사소하고 잦은 싸움은 어린이를 대인관계 및 자기표현에 익숙지 않은 사람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사회에 발돋움하는 어린이에게 가장 먼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감정을 모두 그대로 전달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누그러뜨려야 하는 감정은 절제하고, 표현해야 하는 사고는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좋을지 배워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의 일관된 육아 태도다. 다소 감정적으로 어린이에게 대하는 부모가 많은데 기분이 좋을 때는 모든 것이 용서되고 기분이 나쁠 때는 모든 것이 안 되는 경우가 가장 흔한 예다. 하지만 이렇게 부모의 감정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에게 일관된 태도로 규칙을 정해 그 범위 내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다. 또 부모가 어린이와 대화를 자주 나누는 것이 좋은데, 어린이는 부모와의 대화 속에서 기술을 배우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대화를 할 때 미소 짓기, 상대의 시선 응시하기, 남의 말을 먼저 끝까지 들어주기 등 사회적인 기술을 알 수 있게 하고 남의 의견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기보다 자신의 생각이 어떻다는 것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한다.
(다) 어린이의 개성을 인정한다.
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어린이의 인성은 이미 집안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따라서 어린이의 최초 인간관계가 되는 엄마 아빠가 어린이에게 하는 행동은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엄마 아빠들이 가장 실수를 많이 하는 부분이 어린이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천편일률적인 룰에 맞추어 어린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때문에 어린이는 그런 룰에 익숙해지게 되고 사회에 나가서도 친구들에게 똑같은 것을 강요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와 약간 다른 사고를 하거나 행동을 하게 되면 이상한 친구로 취급을 하거나 싸움이 일어나는 결과를 만든다. 따라서 엄마 아빠가 어린이의 개성을 인정해주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어린이가 어리다고 무조건 강요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어떤 생각을 갖는지, 그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 물론 나쁜 습관을 고쳐야 하지만 사고의 차이나 행동의 차이라면 엄마 아빠가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존중해주어야 어린이도 자신과 다른 사고와 행동을 가진 친구를 존중해줄 수 있게 된다.
(라)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어린이건 어른이건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하지 않으면 남과의 관계도 제대로 이뤄나가기 힘들다. 특히 학교라는 큰 사회 속에 갑작스레 맞닥뜨리는 어린이들의 경우 자신의 세계가 뚜렷하지 않을수록 발생하는 문제가 더 클 수 있다. 따라서 어린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한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좋은 방법은 일기 쓰기다. 어린이가 일기를 쓰면서 자기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엄마가 어린이의 생각과 행동을 미리 판단해서 일러주면 안 된다. 어린이는 엄마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일기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한다. 학원을 보내더라도 단순히 영어 학원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운동,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어린이가 관심을 보이는 것에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어린이가 잘하는 분야를 찾도록 한다.
(마)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어린이들에게 3세 이전에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친구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되고 왕따를 시키면서 남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마음은 친구들에게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똑같이 표현되어 부모에게 반항을 하거나 형제에게 화를 내고 싸움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요즘 왕따를 경험하고 또 왕따를 시키는 어린이들의 심리 상태를 보면 누군가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남을 왕따 시키는 '이기주의'적인 사고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어린이로 키운다면 친구와 친해지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것과 동시에 대인관계에 있어 성공적인 모습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한다.
(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어린이들이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상황에 대한 판단이다. 물론 아직 어리기 때문에 모르는 범위가 많고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분별력을 키우는 교육을 받지 못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요즘 외동아이로 키우거나 이기주의적인 성향으로 키워서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에 분별력 없이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아이가 객관적인 판단을 잘할 수 있도록 분별력을 키워주는 것이 좋은데, 우선 어린이가 부모와 떨어져 친구들이나 또래집단에서 지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부모가 없이 혼자 집단에 소속되었을 때 행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또 도덕적인 것을 알게 할 수 있도록 심부름을 자주 시켜서 스스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사) 독립성을 키워준다
전문가들은 요즘 엄마들의 엇나간 육아가 어린이들을 점점 소극적이거나 혹은 과격하게 키운다고 말한다. 무조건 어린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찾는 엄마들의 마음은 갸륵하지만, 결국 그런 행동들은 어린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를 위해서 하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아이의 나이가 어려도 최소한의 독립적인 성향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친구를 사귈 때도 엄마가 허락하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친구를 만들고 사귀어 나가는 것. 또 공부를 할 때도 엄마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엄마의 도움은 어린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선에서만 그쳐야 한다. 따라서 어린이가 스스로 깨닫기 시작하면 엄마는 어린이의 행동을 한 발자국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아이의 독립심은 작게는 혼자서 옷을 입거나 신발을 신거나 하는 일부터 크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엄마들은 어린이의 독립심을 자칫 고집을 부린다거나 엄마 말을 안 듣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어린이의 독립적인 성향이 무엇인지 잘 판단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1) 어린이의 낯설음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또래 친구들과 자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 무작정 적응시키려고 들기보다는 미리 엄마와 함께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취학 전 아동이라면 입학할 학교를 자주 둘러본다거나, 유치원을 옮긴다면 옮기기 전 며칠은 엄마와 함께 방문해서 친구들도 미리 만날 수 있게 해준다.
(2) 어린이가 기분에 따라 몹시 흥분해서 말하거나 자주 짜증을 부린다면 작은 쪽지를 이용하게 해본다. 종이에 글씨를 쓰면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자신이 표현할 말을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또 동화구연이나 책읽기도 말하기를 능숙하게 하는 연습방법이 될 수 있다.
(3) 어린이가 남을 배려할 줄 알게 하려면 우선 어린이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부부싸움을 하다보면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거나 상대방을 헐뜯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여주기 쉽다. 따라서 아이는 그런 성향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남을 배려하는 어린이로 키우려면 역할놀이나 인형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하는 것이 좋은데, 놀이를 통해 상대방의 기분이나 위치, 상황 등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Ⅴ 학교는 죽어가고 학원은 왜 잘되는가?
초, 중, 고등학교의 교육이 정부의 평준화정책에 휘말리기 시작하고, 이에 따른 대학입시마저 교육당국의 관리 하에 들어가자, 학교(공교육)와 학원(사교육)의 대립각은 더욱 날카롭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책도 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다면, 마침내는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정권이 바뀜에 따라 교육부처의 수장(首長)이 갈리면, 어김없이 잘나가던 시책도 180도로 방향을 틀고 마니, 이는 백년대계가 아니라 5년 대계에도 못 미치는 꼴이라 함이 마땅합니다.
이처럼 국가의 교육정책이 난맥상일 때는, 그 피해자인 국민 즉 학부모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녀교육에 정신을 쏟아야 합니다.
특수고등학교와 유명학원을 보내서 대입준비수업을 거쳐 일류 상위권대학을 졸업해야,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고, 이것이 곧 밝은 인생이 보장 된다는, 출세 방정식을 버리지 않는 한, 이러한 악순환은 우리의 사회를 건강하게 할 수 없음은 물론, 자라나는 후세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병폐를 불식(拂拭)하려면, 모든 교육의 밑바닥에 인성교육이 깔려야 됨은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면서, 막상 실천을 하자니 막연하여 손을 쓸 수 없다는 게 관심 있는 이들의 걱정입니다.
인성교육의 대개(大槪)를 말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교육’이라 말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 때부터, 잘살 수 있는 기능 교육에 앞서, 사람다운 심성교육에 더욱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요즘 언론에 따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기능교육을 시켜, 글로벌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된다는 주장이 대두됨을 보고, 뜻있는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나감에 있어, 물론 뛰어난 기능을 연마하여, 남보다 더 잘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은 특히 글로벌시대에 남을 뛰어넘어 제 혼자 잘살려면 그에 따른 사람됨이 성숙되어 있어야 진실로 잘사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면 일찍이 어린이들에게 인성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될까.
가장 쉬운 길은 가정에서의 부모들의 역할입니다.
첫째, 자녀들에게 자연(自然)을 가르쳐야 합니다. 들러서 알겠지만 어릴 때부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체험시켜야 합니다.
세계는 물론이지만 우리나라도, 도시화의 급격한 발달로, 농촌에도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아이들의 생활환경은 인공화(人工化)를 벗어나지 못하여 자연과는 점점 멀어만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걷는 길은 온통 아스발트로 덮여있고, 위를 올려다보면, 고충빌딩에 가려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으며, 길거리의 사방은 오색찬란한 퇴폐간판이 숲을 이루고 있으니, 순박한 어린 심영에 투영되는 이매지는 인성을 갉아먹는 해독(害毒) 뿐입니다.
가게에 늘어놓은 먹음직한 과일이나, 아침저녁으로 먹는 밥을 짓는 쌀이나 보리 등의 곡식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는 물론이고, 농촌에 가보지 못한 아이들은, 논밭의 형태도 모르고 자랍니다.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일상으로 쓰고 있는 가구나 책상은 물론 문방구에 이르기까지, 못이 빠지거나 사소한 고장이 나도, 고쳐 쓸 줄 모르고 버리고 마는 따위는 도심에 사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초등학교 교과목에, 도덕은 물론 공작, 서예, 제봉, 작업 등이 있어서, 요즘 많은 돈을 들여 밖으로만 나도는 체험교실의 과정을 교실에서도 체험시켰습니다.
현대의 편리한 라이프스타일의 추구는 아이들의 생활체험의 폭을 좁힘은 물론, 잡다한 신변처리를 모두 부모에게 맡기면서 어른으로 자라는 요즘 세태일수록 인성교육은 절실합니다.
단추 하나가 떨어져도 세탁소로, 양말 빠는 일도 엄마가, 학교 숙제마저도 문방구 아저씨가 대신해서야 어찌 인성교육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일부러 틈을 내서라도, 부모가 함께하는 생활체험의 현장을 찾아 인성교육을 시키십시오.
남아돈다고 돈쓰가면서, 저들끼리만 어울리는 예절교육이니, 무슨 교육이니 하는 상업적 놀음에 휘둘리지 말고, 참교육의 현장을 수소문하여 농촌으로, 어촌으로, 산으로 들로 부모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콧노래 부르면서 떠나시기를 권합니다.
사정이 허락되지 않거든, 날을 잡아 집에서 체험교육을 시키십시오.
가구고치는 날, 빨래하는 날, 바느질하는 날, 요리하는 날, 청소하는 날 등을 정하여, 가족이 함께하는 인성교육을 시도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키워서 장차 훌륭한 사람으로 세상에 내보내면,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제구실을 하는 사람다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Ⅵ 아버지의 매질은 결심과 각오가 담겨야 한다.
자녀들의 아버지란 악(惡)을 징벌하는 엄격한 존재입니다. 그것은 어머니나 자식 이상으로 세상을 더럽히는 악을 잘 알뿐 아니라, 그것을 더욱 미워하기 때문에 자녀들을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본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아도 위대한 사람들은 거의가 훌륭한 아버지였고, ‘악(惡)’을 징계하는데 앞장섰던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도 그러한 경지에 달하기 전까지는 얼마나 어려운 일들을 겪었는지는 야사(野史)에서도 전해오고 있지만, 특히 자식의 잘못을 징계하는데 있어서는, 여느 아버지나 다름없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위대한 아버지나 평범한 아버지를 막론하고, 자식을 징계하려는 매질의 목적을 과연 알고 있었을까는 알듯 모를 듯 할뿐입니다.
이를 보편적으로 따진다면, 아버지가 자식을 징계함은 그 목적이 ‘인륜(人倫)’일 뿐입니다. 즉 사람다움으로 키우려는 것이겠지요.
참 아이러니한 일은, 자기는 온갖 못된 짓을 다하는 아버지도, 제 자식에게만은 악의 구렁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 모질게 매질을 주저치 않음은 무슨 까닭일까?
사람의 도리, 즉 인륜이 무엇인가를 찾아들어 가보면, 별수 없이 종교나 철학이란 벽에 다다르게 되는데, 아버지들은 여기까지를 생각하고 교육차원에서 엄하게 매질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결국 아버지가 자식에게 꾸중하는 여러 가지 행위에는, 복잡한 요소가 들어있는데, 그 목적은 엄한 꾸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식의 마음 깊숙이 악을 징계하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한 가정에서 아버지란, 잘못을 추궁하는 엄격한 검찰관(檢察官)임과 동시에, 성스러운 교회의 사제(司祭)와 같아서, 그 목적은 매질(體罰)이 아니라, 애정을 담뿍 담은 설교나 타이름 같은 설득을 함께하여, 감동을 받아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자기 분신인 자식에게 매질을 하고 싶겠습니까?
매질만으로는 도저히 그들에게 감명(感銘)을 주기란 퍽 어려운 일이며, 15세 전후의 청소년들에게 아버지가 만약 매질을 하게 되면, ‘때려 봐요!! 더 때려보라니까요’하고 덤빈다면, 부자간의 관계는 악화되어 위기로 치닫게 될 것이니, 아버지가 매를 들고자 할 때는 심사숙고하여 모진 결심 끝에 단안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아버지 노릇 하기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할 것입니다.
Ⅶ 아이들이 바라는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자란 환경에 따라 아이들이 바라는 아버지는 각양각색입니다.
아빠라 부르는 아이들은 과연, 자상하고 유약한 아버지기를 바라며, 어릴 때부터 아버지라 부르며 자란 아이들은 과연 완고하고 엄격한 아버지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물론 자라는 자녀들은 나이에 따라 떠올리는 아버지상(像)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겠지만, 여기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관대하면서 엄격한 아버지’를 바라는 것이 긴 역사를 통하여 유교(儒敎)문화의 영향을 받은 우리 동양권에서 찾을 수 있는 특징입니다.
특히 우리 한민족은 별난 데가 없지 않습니다.
남유럽이나 남아시아 등 남방제국을 돌아보면, 긴 여름휴가를 제외하고라도, 상점이나 은행 심지어 관공서까지도, 늦은 출근시간에 한낮이면 창문에 커턴을 내리고 낮잠을 즐기는가하면, 집이 가까운 직장인? 은 아예 집으로 가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는가하면, 젊은 사람들은 심지어 대낮정사(情事)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시간에도 현지에 가있는 우리 한국교민들은 무더위를 무릅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생업에 열중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애타게 할 뿐 아니라, 일정에 쫓기는 관광객(여행)들마저 무엇에 쫓기듯이 빨리 빨리를 외치면서 돌아치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비단 나라 밖을 볼 것이 아니라 안으로 눈을 돌려보아도,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의 전철이나 버스를 타보면, 우리는 얼마나 부지런한 반면 성급한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비좁은 차속에서 취업시험 준비서적이나 경제신문 등을 펼쳐들고 열심히 읽는 모습에서, 6, 70 년대에 서독으로 파견되었던 간호사와 광부의 모습이 떠오름은 물론, 열사의 나라에서 외화획득을 위하여 땀 흘리는 당시의 청년들의 모습이 선함을 느낍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모습들을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서, 자상하고 유약한 아버지이기 보다는, 완고하고 관대한 모습의 아버지이기를 바라는 자녀로 커가도록 엄마가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Ⅷ. 자녀와의 대화기법(세대차를 극복하자)
부모와 자녀사이는 흔하게 말하기를 세대차이가 있어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대 차이를 좁히는 첩경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내야 하는데, 그 유일한 방법은 대화기법(對話技法)입니다.
* 모처럼의 기회를 만들어 자녀와 대화할 때, 부모가 말하는 시간보다 자녀의 말을 들어주는 시간이 길어야 합니다. 3대 7정도
* 대화중에 자녀의 말을 끊거나 부정하지 말고, 무조건 ‘응! 응!’하고 듣고 있다가, 나중에 짧은 시간을 이용하여 옳고 그름을 말해줘야 합니다.
* 아이가 슬픈 이야기를 하면 ‘응 정말 슬펐겠구나.’ ‘기분이 좋아 날뛰며 말하면 ’얘야 듣자니 엄마도 즐겁다‘는 등 장단을 맞춰주면 대화는 순조롭고 빈도는 자자집니다.
이렇게 되면 평소에 말수가 적던 아니도 말문을 트게 되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밖에서 친구들 특히 이성(異性)과의 사이에 일어났던 얘기도 털어 놓게 됩니다.
이렇듯 자녀들이 지껄이는 하찮은 말이라도 귀담아 들으면서, 설령 부모의 생각으로는 달갑지 않더라도, 그것이 올바른 내용이라면 깨끗이 인정한 뒤에, 자기 생각을 덧붙여 주는 것이 좋습니다.
* 아이들의 말을 받아들여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에 긍지를 가지고 자랄 수 있게 만듭니다..
우리의 주위에는 흔히 무엇을 물어도 대답하려 들지 않을 뿐 아니라, 남의 눈치나 살피면서 머뭇거리는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 이러한 아이는 평소에 분명히 자기의견을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옳은 것은 옳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든가, 아니면 오해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가르침을 전혀 받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우선 자기가 왜 미움을 받는가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또 그것이 싫은가도 알아야 합니다.
* 이러한 것들을 알게 함으로써 마음에 안심감(安心感)을 심어주어서, 어려운 고비를 넘어서는 힘을 길러줘야 되기 때문입니다.
* 완벽주의적인 아이들은 작은 일에 꾸중을 들어도 전부를 거부당하는 감정을 갖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 90점을 받아온 아이의 시험지를 본 엄마가, ‘100점에서 10점이나 틀렸구나.’하면 그 아이는 100점 모두가 거부당한 기분이 될 것이고, ‘100점짜리를 90점이나 받았냐. 우리 아이 대단하구나, 다음에는 나머지 10점만 하면 만점이겠다.’고 칭찬하면 본인에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 되겠지요.
어린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은 틈틈이 시간을 내어 ‘아동심리학?’에 심취해봄도 바람직함을 권해봅니다.
Ⅸ. 자녀에게는 벼락같은 아버지가 되라!!!!
벼락같은 화를 자주내면 아버지의 권위는 반으로 줍니다.
이 말을 뒷밭임하기 위하여 ‘지진. 벼락. 화재. 부친’의 사박자(四拍子)를 아버지에 비유합니다.
지진(地震)은 아예 없어야하고, 벼락(落雷)와 화재(火災) 또한 자주 일어나면 인간에게 해를 끼치듯이, 아버지도 자주 화를 낸다거나 고함을 지르면, 자녀에게 있어서는 결코 이로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진이나 벼락은 자연현상이기 때문에, 사람의 뜻대로는 될 수 없지만, 화재나 아버지의 화는 인간의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지혜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아무리 천재(天災=지진. 벼락)라도 과학이 발달된 오늘에는 이를 막아 최소화할 수 있음은 물론, 화재, 홍수, 가뭄, 질병 등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난데없이 떨어지는 벼락은 자녀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재앙? 이라, 아버지가 변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자자지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버지의 권위는 점점 잃게 마련입니다.
예컨대, 하늘이 연백년중(年百年中), 날이면 날마다 화를 내어 인간에게 재앙을 내린다면, 사람들은 겁을 먹기에 앞서, 하늘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존재로만 알고 그를 증오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도 이처럼, 날이면 날마다 자녀들에게 화만 벌꺽벌꺽 낸다면, 어느 자녀가 그 아버지의 권위를 두려워하고 따르겠습니까.
이에 아버지의 노여움(화)는 사람의 의지로 좌우되는 것이니, 신벌(神罰)과 천벌(天罰)처럼 조리에 맡도록 조절하여, 자녀로 하여금 아버지의 권위를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옛말에 ‘천재(天災)는 잊을 만할 때 찾아온다.’고 했는데, 이는 인간의 방심을 꾸짖는 하늘의 조절수단이라, 아버지의 벼락같은 꾸중 또한 버릇을 가르치는 수단으로 써야 할 것입니다.
이에 미루어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벼락꾸중은 그의 권리행사일 때에 한하여, 자녀는 아버지의 꾸중을 두려워해야, 태만과 탈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의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꾸중하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우리 아빠처럼 무서운 아버지는 드물다’고 말하면, 옆에 있는 엄마는 못마땅해 하지만, 오히려 아버지는 미소를 띠면서 나무라는 엄마를 그만두게 합니다.
어느 가정이나 꾸중 듣는 자녀를 감싸주는 쪽은 엄마이고, 꾸중은 아빠가 하기 마련인데, 아이들은 악(惡)에 대하여 예민하기 때문에, 꾸중을 듣지 않고 자라는 아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란 존재는 언제나 악을 싫어(憎惡=증오)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보다 나은 사회에 자기의 자녀를 살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겪어본 과오를 물려주지 않으려는 본능에서 나오는 꾸중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녀들이, 남의 잘못(惡)을 용서하고 방관하면서, 그에 동조하는 비겁한 인간이 되지 못하게, 때때로 벼락꾸중을 날리는 것입니다.
Ⅹ 가정교육의 주연은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조연이다.
옛날에는 엄격한 가정교육으로 자녀를 키웠는데,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뀜에 따라 점점 쇠퇴해졌다고 말하는 측은 아직도 지식계급의 사람들이지만, 나이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대에 맞지 않은 넋두리라고 비난하는 계층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책무(責務)는 어느 시대이건, 자녀를 키워서 자립(自立)시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은 그 누구도 이론(異論)을 달지는 못할 것입니다.
즉 이 자립의 긴요성(緊要性)에 관하여는, 내면과 형식이 본질적으로 다른데, 내면적(內面的) 자립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할 일은 결코 남에게 돌리지 않은 것이고, 형식적(形式的) 자립이란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나이를 먹어 어른(成人)이 되었는데도 내면적인 자립이 되지 못한 사람은 얼마든지 많은데, 그들은 다만 내면은 객관적인 지표(指標)와는 거리가 멀어, 형식적인 자립의 성사여부를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에 말할 것도 없이, 형식이란 대단히도 중요한 것으로, 민주주의 또한 형식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인데, 피선거권이 내면평가에 의하여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면, 민주주의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에게’가 아니라 ‘누구라도 같은 판정을 할 수 있는’
방법만이 민주주의의 본질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녀들의 자립문제에 있어서도, 부모가 그 가부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일은 서툰 일의 하나로서, 현대판 노예제도라 일컬을 수도 있는데, 즉 이를 두고 ‘노예적(奴隸的) 자녀교육법’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자녀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자립하는데 있지만, 이 일이야 말로 실현하기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녀교육의 목적이 홀로서기(자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실현하기 어려운가?
그것은 오늘의 부모들, 특히 어머니는 자녀의 자립을 저해(沮害)하는 주체일 수 있습니다.
자기 자녀를 학대(虐待)로 내모는 부모, 무조건 사랑에 빠지는 익애(溺愛)의 부모 등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자녀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보고, 자립시킬 생각에 앞서, 본질적으로 자녀는 자기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집착에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가치관에 빠져있는 부모는, 자녀의 장래를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용기를 발휘하는 본능적 능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을 믿고 언제나 치마폭에 자녀를 감싸고 있는 한, 그들은 자립할 엄두를 내지 않고, 부모의 그늘에 안주함으로 그 일생은 정신적 노예상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진정 자녀의 장래를 위해서는, 엄한 꾸중과 자상한 칭찬을 할 줄 아는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Ⅺ. 자녀를 위한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
언제나 그랬듯이 부모는 자식들을 위해서는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특히 요즘에 들어서는 젊은 부모들의 행태가 너무하다싶어서 눈여겨보았는데, 넓게 볼수록 가관입니다.
신혼부부가 잉태라도 하게 되면, 산부인과 병원엘 갈 때 마다 태아의 성장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장을 만드는가하면, 출산할 때는 물론, 성장과정과 백일잔치, 돌잔치 등을 빼지 않고 사진으로 남깁니다.
뿐입니까? 기회만 있으면 지나친 경비를 들여 해외로 체험교육이란 이름으로 호화여행을 다니는데, 그 목적은 한마디로 자녀들의 장래를 위한 ‘아름다운 추억 만들어주기’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그 아름다운 추억이 물론 약이 되기를 바라겠지만,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할 것입니다.
오히려 바꿔서 생각한다면, 자녀의 장래를 위하기보다는, 장차 부모의 기대에 어긋난 자식에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하면서 오금 박는 자료로 삼기 삽상입니다.
차라리 추억 만들기에 쓸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자녀와 어려운 그 친구들과 어울려,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 봉사활동의 체험을 경험시켜 추억으로 남김이 아름답지 않을까요?
맺는 말 : 교권의 확립과 사도의 신성성(神聖性)에 대하여
어린이(자녀)교육의 주체는 무론 어린이와 가정과 학교와 사회, 더 나아가서는 국가로 이어지겠지만, 그 핵심에는 부모와 선생님이 계십니다.
아무리 국가의 교육정책이 잘못되고, 교육환경이 열악하여도, 선생님과 학부모가 힘을 합하여 화음을 이루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 할 수 있다고 확신하면, 그렇게 되고 말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4월 24일
경기도 시흥시 군자초등학교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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