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을 살았다. 어릴적엔 객기도 부려봤고 일본,중국 유학도 가 봤고 가족 싸그리 미국으로 이민을 가 보기도 했다.

19살이후로 한국에 산 세월이 9년밖에 되지 않는다.학교에 다닐때는 한국사회에 대한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지만 고민했었던 나에게 일본유학은 학생이면서도 알바를 하지 않으면 한달후의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고 1년간의 중국유학은 치기어린 유랑이었다.하지만 옛어른들 말슴처럼 배우면 남을 주지는 않아서 짧게 배워 내 삶에 별 도움이 될 것같지 않았던 중국어가 미국에 있을 때는 꽤 유용히 써먹을 수 있었으니 독약만 아니면 먹어둬라는 것처럼 뭐든지 배워두면 좋다는 경험을 얻었다.

어른이라는 세계에 입문하고 2/3를 외국에서 살았으니 2005년도부터 시작된 한국생활은 말이 귀국이었지 나에게는 낯선 이국과 다름이 없는 한국생활이었다.옆집일에 간섭하는 이웃분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사돈의 팔촌의 경조사까지 쫓아다녀야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장례식에는 보낸이를 너무나 그리워하며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혼식에는 정말 잘살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참석하고 싶었다.하지만 한국은 아니었다.생전 만나보지도 못해봤던 이의 장례식에 가서 (물론 친한분의 부모님이나 형제지간이라면 친한 사람을 위로하기위해 간다지만) 애도를 보내야 했고 안면식도 없는 사람의 결혼식에 가서 마음에도 없는 축하를 해야했다.축의금이나 부조금도 주위의 사람과 맞춰가며 해야하고 그런 곳에 잘 다니지 않으면 인색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다.

지금은 익숙해졌다.아마 내 남편이 외국사람이었으면  지금도 겉돌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내년이면 한국생활10년을 맞이하며 이제야 한국식 사고에 많이 익숙해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 난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한국화가 된다'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일까? 부정적인 의미일까?하고....

또한 자폐아의 엄마로 산다고 의식하고 사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일까? 부정적인 의미일까하고...

오늘 명탁이학교의 특수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엄마가 너무 아이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다보면 결국은 아이가 너무 함들어져 포기하더라구요.그래서 결국은 특수학교를 거쳐 시설로 보내는 걸 봤습니다"고...

몇주전 괴도한 스트레스때문에 아팠었는데 그러면 안된단다.

그런데 난 의식적으로 아이를 걱정안하려고 하는게 더 어렵다.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도와주세요라고 sos를 치고 싶은데 명탁이 엄마는 너무 나대는 사람이란다.

이 사회가 우리와 같은 아이를 보는 시각을 바꾸기위해 고민을 해보자고 하면 뭔가 하면서 얘기하란다. 그런데 혼자서 뭔가를 하기엔 너무나 힘든 한국사회인데....

뭔가 시도를 해도 말들이 많고 그 말들이 자꾸 나자신을 늪으로 빠뜨린다. 그래서 에전엔 뭔가 해 보려고 했는데 하려고 하는 의지 자체가 꺾인다.

분명 한국사회는 복지부분에 관해서 더 나아질 것이다. 작은 학교를 외치고 아름다운 가게를 꾸리며 소외되고 손이 안가던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박원순씨가 서울 시장이 된 걸 보면 내년에는 손톱만큼씩 좋아질 것 같은 희망도 보인다.

우리 자폐부모들끼리 앉아서 이런 얘기를 나눈적이 있다. 우리들을 화장하면 사리가 나올거라고...

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는 있지만 자폐아동의 엄마이기에 치료사의 역할도 사회운동가의 역할도 심지어는 보조원의 역할까지 은근히 강요받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할 말을 다 못한 채 늘 소외감에 가슴이 시리며 죽는 날까지 아이를 위해 살 날을 너무나 두려워하며 살아가기에 우리는 가슴에 돌덩어리 몇톤씩을 메달고 사는 것이다.

인내라는 아름다운 포장아래 자폐아동의 부모는 삶의 힘든 여정을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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