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명탁군의 12월 이야기
2010년... 밖으로나 안으로나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한 해인것 같다. 내 생전에 일어날 일 없을 것 같았던 전쟁에 대한 불안감도 느껴 봤고, 아시안 게임을 보며 일본을 우습게 따돌리는 한국인이라는게 자랑스럽기도 했고, 또 G20의 개최로 한국도 이젠 선진국?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구제역을 초기에 진압못하는 한국, 아이돌을 아시아를 비롯 세계에 수출을 하고 있으나 전철에서조차 할머니에게 반말에 욕지거리를 하는 아이들이 있는 한국, 하루벌이를 하고 있는 지역상권마저 낼름 집어 삼키려는 대기업의 횡포를 오히려 조장하는 것 같은 정부, 예산안처리 때만 되면 아이들과 함께 뉴스를 보기가 민망할 뿐인 국회, 정부의 고위층까지 여성비하발언을 내뿜는데 성추행범이 사라지겠느냐는 우려에 밤잠을 설치게 하는 한국........ 가로등 비추는 골목길에 서서 그 불빛만이 내 삶의 구원인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곳을 벗어나면 칠흙같은 어둠속에 공포에 떨어야 될 것같은 이 불안감이, 내년 2011년에는 제발 없기를 기도하며 산 속을 맘껏 뛰어다닐 수 있는 토끼와 같은 한해가 되길 바랄 뿐이다....
*명탁이의 2010년*
1월에는...... 유예를 하느냐 진학을 하느냐로 많은 고민을 한 때이다. 결국은 꾸러기반으로 올라가기 위해 진학을 선택했지만 가고 싶었던 오라초등학교에 진학할 장애아동이 많아 차선의 학교를 물색하러 열심히 했던 시기였 다.
❤명탁이는 상징놀이가 시작되어 스카치테이프를 돌리며 “운전해요”등의 비슷한 사물과 자신이 아는 사물을 대비하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2월에는..... 초등학교 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일도초등학교를 보내려고 하다가 갑자기 삼양초등학교로 옮기는 해프닝을 벌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인데 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서보지 않은 이 시점에서는 작은 소문에까지도 민감해지는 시기였나 보다. 결국 입학 2일전에 반편성도 다 된 시점에서 등록을 했고 일도초등학교를 보내기위해 몇 개월전부터 학교를 방문하고 아이와 함께 그학교에서 놀았던 그 시간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 어린이집의 졸업식이 있었다.
❤명탁이는 그즘 “~꺼예요”라는 말을 남발했던 것 같다. 자기가 구사할 수있는 모든 동사의 어미활용을 “~꺼예요”로 통일을 시킨거다. 그때마다 고쳐주고는 있지만 따라하고는 끝이다. 다시 자기가 쓸 때는 “~꺼예요”란다. 언어발달 과정속에 있다지만 과히 답답했다.
3월에는...... 대망의 초등학교 입학식!!! 입학식 첫날부터 전화로 입학식시간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의 실수로 빨리 간다고 해서 간 것이 30분이나 지각해버린 그래서 그렇지 않아도 비상인 우리 아들이 초비상사태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생각하기도 싫은 입학식이다. 늦게 들어가 벌써 아이들은 대열을 하고 있었고 아이를 맨 뒤에 세우고 올라오는 엄마를 찾아 아이는 관중석으로 올라오고 엄마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대열의 맨 뒤에서 같이 입학식내내 불편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
창피도 했지만 우리 아이와 같은 반이 된 엄마들이 많이 걱정하겠구나 싶으니 입학식내내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나중에 어떤 엄마가 이런 얘기를 했다. “입학식날 보면서 명탁이 엄마는 명탁이만 아니었더라면 훨훨 날것같은 사람인데 불쌍하더라” 고 날 위해 얘기해 준 엄마의 말에 나는 다시금 각오했었다. ‘아니, 명탁이 때문에 행복한 엄마라는 걸 당신들에게 보여줄꺼야’라고....
❤명탁이는 같은 반 아이들의 사진을 외우고 짝이 누구며 앞, 뒤는 누가 앉았는지, 다음날 하는 수업은 이해가 되건 안되건 한번 예습을 하고 선생님의 성함과 자신의 반과 번호를 외우게 하고 알림장을 같이 읽고 내일의 시간표를 말하곤 아이에게 가방을 싸게 했다. 아이는 의외로 적응을 잘 했고 학교에 보내길 너무 잘 한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4월에는...... 엄마는 항상 불안한가 보다. 아이가 잘 하고 있어보여도 뭔가 부족해보여 아이의 주변에서 많이 좋아진 아이의 상태에 예민해진다. 그 중 한 아이가 약을 복용하고 있어 좋아진 거라는 말에 솔낏 약 복용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명탁이의 지옥의 시작임을 그 때는 정말로 몰랐다....
❤명탁이는 말이 많이 늘었었다.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바람이 불어서 구름이 달리기경주해요”라고 할 정도로, 하지만 아이가 조금씩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가끔이었지만 목청이 찢어질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 원인이 된 꾸러기반을 관둘까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5월에는..... 서울에서 선생님까지 불러가며 ‘소리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이전의 아이의 결과와는 너무나 상이하게 아이는 산만함이 극을 달렸고 폭력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그 결과 결국 ‘약 복용'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약을 복용해도 산만함은 가시질 않았고 더 심해지기만 했다.
❤명탁이는 말이 많이 늘었다.(~하면 ~해주세요.란느 조건절을 쓰고, 육하원칙의 질문에도 가끔 대답도 해주고 색칠하기가 늘었다.(이전엔 한색으로 특히 녹색, 모두 칠해버렸었는데 요즘은 색깔을 몇가지 쓰기도 하고 꼼꼼히 칠하려 한다) 그리기가 쫌 되기 시작한다(그림일기에서 사람을 그리는데 표정의 변화도 조금 다르게 그릴 줄도 안다) 아이답게 싸운다(정말 막장싸움까지 가지만 아이들이 치고 받고 싸우는 것처럼 싸운다) 목소리가 좀 커졌다
6월에는....... 아이의 상태가 극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면 우선 소리부터 지르고 그리고 하루에도 몇차례 다른아이들에게 상해를 입힌다. 선생님은 약복용이 오히려 나쁜 것같다는 의견을 주셔서 약도 안먹였다. 혹시 예,복습을 시켜 그러나하고 그것도 안시켰다. 하지만 아이는 모든 면에서 나빠지고 있는듯 심지어는 교실에서 오줌까지 쌌다고 했다. 내리는 비처럼 마음에 비만 오는 달이었다. 이때 꾸러기반을 관두었고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음에 불구 많은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아야만 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명탁이는 많은 짜증을 내었다. 집에 오면 누나를 때렸고 학교에서는 앞,옆 가리지 않고 아이를 할퀴었다. 학교에서는 특히 알림장검사시간에 더 난폭해졌다고 했다.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거슬렸었나 보다. 그래도 아이의 마음이 안정되었더라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7월에는...... 여전히 아이가 힘들었었다. 그래도 방학이 되어 한시름을 놨다. 해수욕장엘 데려가면 예전에 그리도 싫어했었는데 이제는 너무 깊은 물까지 들어가 오히려 겁이 날 정도였다. 그즘 특수교육도 많이 정리하고 아이에게 집에서도 많이 안 시켜 아이가 심리적으로 조금 안정이 되는 듯 폭력성이 조금은 누그러졌고 여전히 소리는 지르나 엄마와의 기싸움에서 진 이후로 많이 없어졌다.
❤명탁이는 말이 늘기도 하였고 생활습관면에서도 많이 할 수 있는 것이 늘었다. 못했었던 이발이나 수영, 가리기가 힘들었던 대변가리기등이 80%정도의 적응률을 보인다. 반면 엄마의 주위에서 멀리 떠나지 않게 되었었는데 이즘부터 자꾸 엄마로부터 멀리 도망치려는 아이처럼 아이의 행동바운드리가 커졌다.
8월에는..... 교육청에서 하는 ‘여름학교’에갔다. 그 놈의 폭력성으로 인해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히고 안간것만 못한 결과만 낳고 끝났다. 그래서 아이에게 정서적인 안정이 필요할 것같아 시골에 가기로 했다. 정말 너무나 답답해서 내린 결정인데 주위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말이 많았다. 특히 한달만에 올라온다만다하는 말을 들었을 땐 정말 내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 것인가하고 자기자신이 너무 비참해지는 순간이었다.
❤명탁이는 활화산같았다. 옆에서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하고 심지어 옆에서 노래만 불러도 짜증을 내고 할퀴려고 달려들었다. 특히 누나와의 관계에서 더욱 심했다. 집에서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바다로 산으로 놀러 다녀도 나아지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 절망이라는 두글자가 나를 짓눌렀다.
9월에는....... 시골에 내려가서 살며 금요일에 제주시에 왔다가 월요일에 내려가는 생활을 하였다. 가려던 날에 폭풍이 2차례나 와 시일이 미뤄져서 한 편으로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이러시는건가하며 망설이기도 했지만 내가 아이를 데리고 시골에 간다는 것으로 왈가왈부를 했던 몇몇사람들 때문에 오기가 생기며 꼭 가야겠다는 생각에 약간 무리다싶으면서도 갔다. 기름도 없고 가스도 없고 아이를 놔두고 짐정리를 해야해서 물놀이를 시킬양으로 옷을 벗겨놨다가 괜스리 아이가 감기만 걸렸다. 1주일간 고생하더니 그 후론 엄마가 감기로 고생, 그래도 아이를 데리고 성산일출봉이며 비자림이며 올레길이며 계속 다녔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감기가 끊이질 않았고 그 시골집에 손님이 2번씩이나 찾아오는 바람에 생각과는 다르게 빨리 돌아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명탁이는 드디어 엄마에게 순응적이 되가기 시작했다. 자기가 앙탈을 부려도 무시하고 해야하는 것은 해야하는 시골생활, 그리고 자연, 그리고 엄마와의 교감, 아이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10월에는...... 삼양초등학교를 그만두었다. 아이와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가 너무 많은 시간이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보내리라 마음먹고 교육청의 지시에 따라 학교를 유예시켰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장애인부모회에서 주최하는 여행에 아이와 둘이 다녀왔다. 참 좋았다. 초롱꽃아이들을 다시 시작했다.
❤명탁이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은 것같다. 아이가 화를 내는 것도 많이 줄었다. 1박2일의 여행중에 에버랜드에 갔는데 놀이기구도 곧잘 잘 타고 장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차에서도 별 말썽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심지어 그때 그때의 상황을 단단어로 표현해주기도 해서 참 기뻤다.
11월에는..... 예전에 다녔던 근로복지공단 어린이집을 다시 다니게 되었다. 참 깊은 인연임에 틀림이 없다. 자리가 없으면 들어 갈 수 없는 것을 마침 장애아이가 전학을 가 주었다. 반도 작년에 했던 반이다. 선생님중 한분은 명탁이가 6살 때 담임이셨던 분이다. 징조가 좋다. 처음 2일정도 안간다고 버티더니 이내 어린이집에 적응을 했다. 아이가 부적응으로 학교를 관두고 온터라 선생님들이 많이 긴장하신 듯하다. 아이의 적응이 빠르다 칭찬을 많이 해 주셨다. 그냥 학교 안가고 이 어린이집에 눌러 있고 싶을 뿐이다. 초롱꽃 아이들 수업을 1단계부터 집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명탁이는 많이 안정이 되었다. 집에서도 누나와 별로 다투지 않았다. 원에서 가끔 한 건씩 문제를 일으키지만 굉장히 심각한 건 아닌것 같아 안심이다. 엄마입꼬리를 올리며 “좋아요.해보세요”라고 한다. 화나요. 무서워요. 슬퍼요라고 예전에 얼굴표정과 상황을 연계시키며 공부했던 것을 다시금 말한다. 그리고 예전에 언어치료실에서 배웠던 “바람이 불어서 추워요”라든지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져요”라든지 여러말이 생각이 나는지 한다. 엄마와의 수업도 재미있게 진행되고 있다.
12월에는...... 활동보조선생님과 어린이집까지 버스로 가기 시작했다. 많이 힘들 줄 알았는데 꽤 재미있어 하는 모양이다. 아이도 엄마와 있을때도 버스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좋은 것같다. 버스정류장 애기도 하고 버스를 타며 많은 것을 배우는 것 같다. 피아노를 샀다. 누나의 솜씨를 듣고 싶기도 했지만 누나가 자꾸 침으로써 명탁이가 스스로 건반을 두드려 흥미가 생기면 학원으로 연결할까하는 생각에서 였다. 1학년교과서를 한번 훑어보기로 했다. 아이가 싫어하면 안하려고 하는데 배웠던 거여서 그런지 재미있어 한다.
❤명탁이는 소통이 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젠 차를 타고 가다가“여기 (저 아저씨) 뭐하고 있어요?”라고 묻는다. 설명해주면 납득이 간다는 듯한 표정이다. 누나가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지금은 누나 차례, 누나 끝나면 명탁이 할꺼”란다. 엄마가 “아니야 공부해야 할 수 있어”하면 “공부하면 컴퓨터 할 수 있어요”라며 나름 타협을 한다. 밤에 안방으로 들어가 “늦은 밤”“잠자리에 들 시간이예요” 라며 이불을 꺼낸다. 자기 전에 “명탁이 책 읽으까? 읽고 싶은거 있으면 2권 갖고오세요”하면 갖고 오고 같이 보며 장난감에코마이크에 대고 엄마가 지문을 읽으면 대화부분은 명탁이가 읽는다. 감이 살지 않으면 엄마가 먼저 읽고 따라 읽게 하면 감도 살릴 줄 안다. 치료실에 가서는 선생님에게 먼저 이것 갖고 놀고 싶다며 자기의 의사표현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말 신나게 웃을 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몸을 부르르 떨기는 하나 때리는 것은 거의 없어진 듯하다.
2010년을 끝내며 정리를 해보니 정말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좋아서 웃었고 막막해서 울었고 남 때문에 속상했고 또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이가 있어 위로가 되었다. 세상 삶이란 다 이런 건가부다 그래서 사람은 힘들다하면서 자알 살고 있는 것이다. 2011년, 우리 모두가 자알 살기를 빌며 2011.12.31
'슈퍼 자폐인 다니엘♥♥♥ > 이명탁군의 00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명탁의 2월 이야기 (0) | 2011.05.01 |
---|---|
이 명탁군의 1월 이야기 (0) | 2011.02.08 |
이 명탁군의 11월 이야기 (0) | 2011.01.01 |
이 명탁군의 10월 이야기 (0) | 2010.11.02 |
이 명탁군의 8월 이야기 (0) | 2010.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