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명탁군의 11월 이야기
2010년도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 새해의 계획은 잘 지켜졌는지 파란만장했던 2010년 돌아보기가 살짝 겁이 난다. 하지만 빛을 받는 사물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듯이 모든일에는 음지가 있을 법... 나를 비춰주었던 빛만을 생각하자 마음을 다져본다. 연평도관련기사를 보며 만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천안함사건때 멋도 모르며 이명탁대통령이 한 일이라며 자기조국에 손가락질 했던 사람들, 전쟁은 무슨이라며 안보불감증에 걸려있었던 군당국, 포성이 울리고 있는데 질의에 대한 답을 하고 가라며 국방장관을 붙잡는 개념없는 국회의원들, 전쟁이 나면 외국으로 튀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매국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미약한 힘으로라도 내 조국지키겠다며 해병대를 자원입대하는 젊은 친구들... 각기의 모습속에서 삶을 보고 나는 과연 어느 부류인가 생각해 보는 밤이다. 나이가 들수록 정의보다는 타협을 생각하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밤이다.
*너는 사자다*
사라오름에 다녀왔다. 명탁이와 미현이, 엄마 그리고 교회분들. 아침부터 분주히 아이들을 내몰아 간 사라오름은 말이 오름이지 한라산 영실코스정도를 올라가는 대행보였다. 얼마못가서 미현이는 앞의 대열에 합류 시야밖으로 사라지고 남겨진 나와 명탁 뒤에서 치고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옆으로 피해주며 자꾸자꾸 속도가 늦춰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울 아들 “똥 쌀꺼예요”라고 크게 외친다. 설마하며 구석으로가 조릿대가 우거진 곳으로 아이를 데려가 바지의 앞부분을 내리니 “똥 쌀꺼예요”라고 재차 외친다. 정망 염소똥같은 게 한방울 , 또 한참을 올라가다가 “똥 쌀꺼예요”라고 한다. 염소 똥 세 방울, 그러다보니 우리는 미처 정상에 가지도 못했는데 선발주자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물론 미현이도 내려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 그냥가리오하고 미현이 손붙들고 우리 모자는 사라오름 정상에 올랐다. 약간 안개가 끼어 있었으나 정말 억 소리나는 장관이 눈 앞에 펼쳐있었다. 그 장관을 카메라셔터아래 두어방 찍어두고 아래서 기다릴 분 생각에 김밥이 어디로 내려갔는지 모르게 먹고는 다시 밑으로 향했다. 다행히 한 집사님과 장로님이 다른 분들은 보내놓고 기다려주셔서 같이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런데 울 아들, 내려오는 길에도 또 “똥 쌀꺼예요”라고 한다. 곤란하다. 자꾸 화장실도 없는데, 옆에 집사님도 계시는데, 이젠 휴지도 없는데 이젠 명탁이의 똥이 원망스럽기까지 한다. 하지만 생리적 현상을 어쩔 수 없어 다시금 풀숲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는 영차 그랬더니 요번엔 양도 많다. 그래도 주섬주섬 봉지에 쑤셔 놓고는 밀봉한다. 그 사이 바지를 올렸어야 될 아들이 오줌을 싸다가 바지를 많이 버렸다. 그랬더니 “팬티 바지 여기있어”하며 가방을 가르킨다. 항상 가지고 다니던 것을 오늘은 생각도 못했으므로 가져오질 않았다. 낭패다. 어쩔 수 없이 팬티와 바지를 벗겨 팬티는 벗기고 다시 바지는 입혔다. 더럽다고 입기를 거부해도 무작정 입히자 심기가 불편한 명탁 풀 숲을 나가자 위로 올라가려 한다. 발 빠른 집사님이 제지 아이는 다시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똥 쌀꺼예요”라고 한다. 이젠 지겹기만 하다. 등줄기까지 땀이 흘러내리고 아이는 “똥 다 쌌어요. 시원해요”란다. 시원하다고! 아이가 이런 표현을 이렇게 써 먹다니 이제가지의 원망이 순간 녹아내린다. 그리곤 기다리던 집사님께 미안하지만 한마디했다. “우리 아이는 사자인가봐요. 오늘 한라산에 자기 영역표시 확실하게 하고 가네요.” 어이없으셨는지 집사님 너털웃음 지으신다. 그리곤 울 아들 씩씩하게 하산했다.
산도 힘들게 했고 아이도 힘들게 했지만 산도 아이도 모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산행길이었다.
*다시 받아줘서 고맙습니다*
근로복지공단어린이집에 다시 들어갔다. 처음에 생각으로는 학교에 1~2교시정도는 디닐 수 있을거라 생각해 전혀 생각지도 않았었는데 내년에 재입학을 위해서는 유예시청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리고 그 유예신청을 하려면 출석률이 2/3를 넘으며 안된다고 하여 급히 삼양초를 관두게 되었다. 집에 데리고 있어보려고 했으나 너무 힘이 들어 심사숙고 끝에 다시 이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 전화를 들였다. 때마침 한 장애아동이 전학을 가려 한다는 것이다. 기다렸다는듯 풀리는 일에 하나님게 감사를 들이며 아이를 다시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다. 이전 보다 훌쩍 커버린 아이는 이젠 정말 형이요 오빠같았다.
처음 이틀여 느슨해졌던 생활이 쪼여오는 느낌이 싫었던지 어린이집에 안가려고 했다. “그래 그러면 네가 가고 싶을 때 가자”고 아이를 기다려 줬더니 11시정도가 되어 이제 가잔다. 안간다는 것보다 너무 좋아 늦음에도 불구 데리고 갔다. 그리곤 지금까지 늘 지각하며 다니고 있다. 그 이후 아이는 폭력성도 거의 소거되었고 많이 편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과 상담하고 있는 와중에 아이가 사라졌다. 같은 시간대에 아이를 데리러 왔던 친구엄마까지 가세해 찾아봐도 아이가 보이질 않는다. 이럴 때를 대비해 아이와 같은 잠바를 입고 다녀서 길에서 만나는 배달원들에게 이런 잠바입은 아이 못 보셨냐고 물으니 못봤단다. 그러던 중 어떤 배달원아저씨가 와서 주공입구에 있더라고 가르쳐 주셨다. 차를 타고 가보니 횡단보도위에서 달려오던 겔로퍼의 앞부분 현대로고를 만지고 있었다. 차 안에서 “명탁이 이리와”라고 외치자 다행으로 차로 달려와 주었다. 겔로퍼를 운전하신분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얼마나 놀라셨을까? 한참을 야단을 치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었으므로 전화를 걸어 찾았다 알려 드렸다. 참 오래간만에 찾아온 이명탁실종사건으로 느슨해졌던 엄마의 마음에 긴장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모저모 아이는 작은 사회속에서 크고 있나보다. 놀이터에 가도 서투르기는 하나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어린이집에 보내길 천만 다행이다라고 생각이 드는 때다. 집에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하는 때다. 정말 어린이집에 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리고 들어갈 수 있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진짜 근로복지공단 어린이집은 잊지 못할 곳이 되어가는 것 같다.
교회에서 송구영신예배 때 (12월31일 밤) 명탁이를 생각하며 받은 하나님의 2010년 내게 주신 말씀이 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마가복음 9:37) ’인데 2010년이 지어가는 이달, 남은 한달동안 더 많이 이 말씀을 곱 씹으며 우리 아이들을 예수님보듯 존경하며 사랑하며 경외하며 살아야 하겠다 다짐해 본다. 201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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