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권 목사. 한국 특수요육연구소 소장인 그는 방송 및 언론, 저서를 통해 세간에 알려진 발달장애 전문가다. 발달장애란, 발달시기에 각종 감각의 발달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해 사회성이 결핍되는 장애를 일컫는 것. 통상 언어장애와 함께 과잉행동장애등의 증상을 보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폐증은 발달장애의 일부분이라고 한다.
내 아이를 내 손으로 치료하겠다는 일념으로 연구 시작
본업인 목회 일조차 젖혀두고 장애아 치료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김일권 목사가 ‘발달장애’와 첫 인연을 맺은 건 27년 전, 첫딸 승이가 황달로 인한 뇌성마비 증세를 보이면서부터.
“1981년, 딸 승이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어요. 하지만 모든 병원에서 제 딸의 치료를 거부했죠. 의사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질병을 다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이를 내 손으로 치료하겠다는 일념으로 뇌성마비와 발달장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직접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김 목사. 특수치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던 당시, 국내에서는 자료를 구하기 어려워 외국의 정보를 수집하는 데 온 신경을 쏟았다. 관련 서적을 사다 나르고 원서를 밤새워 읽으며 물리치료, 심리치료, 언어치료 등 수많은 이론을 독학, 직접 치료 프로그램을 짰다. 심지어 전국을 발로 뛰며 교수들이 발표하는 학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그의 노력이 알려지면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장애아의 부모들은 김 목사의 곁에 모여들었고 치료에 대한 자문을 구해왔다. 그때부터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알려주고 학부모들과 정보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러 ‘한국 특수요육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발전하고 있는 것. 이곳에서는 모두 14명의 교사가 교사 1명당 2명의 발달장애아동을 맡아 교육치료하고 있다. 둘째 딸인 승언씨도 아동복지학과를 졸업하고 김 목사와 함께 장애아동을 위해 일하고 있단다.
“승이가 또래 친구들의 놀림과 구박을 받을 때마다 연년생 동생 승언이가 언니의 대변인이자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어요. 논문을 읽어보니 장애아의 형제자매는 부모의 3배 이상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던데, 씩씩한 승언이는 고맙게도 언니와 우애 있게 잘 커주었어요.”
승이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시를 쓰고 고1때 시집을 냈으며 고3때는 문단에 등단하며 문학 쪽에 강한 소질을 나타냈다. 김 목사가 발달장애 연구를 시작한 것이 딸의 뇌성마비 치료를 위해서였다면,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에 등록을 하고, 아동문학가로 등단하게 된 것은 시 짓는 딸과 교감하기 위함이었다고.
아버지의 그칠 줄 모르는 애정 덕분이었을까. 승이씨는 발음이 부정확하고 손 떨림이 있지만 비교적 건강하게 성장했다.
“대학에 입학한 승이가 우울증에 걸리면서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어요. 처음에는 그저 ‘뒤늦게 사춘기가 왔나’ 했는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좋아하던 책도 안 읽으려 하고 자꾸만 사람을 피하려고만 하더군요.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승이를 약물치료하면서 저는 상담학 박사 과정에 등록했습니다 .”
다행스럽게도 상담학 박사 과정을 통해 김 목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 혼자 연구했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승이씨는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고 현재 드라마 작가를 준비 중이다.
어머니와 아이의 정서적 상호작용이 가장 중요해
뇌성마비인 승이씨를 포함해 발달장애아동을 대하면서 김일권 목사가 가장 많이 내려온 처방은 ‘껴안기 요법(Holding Theraphy)’이다. 김 목사가 영화를 보고 힌트를 얻어 응용한 것으로 발달장애아를 5분가량 꼭 껴안아주면 정서적인 안정과 행동 수정에 큰 도움이 된다는 치료 요법.
“몸과 몸이 접촉하는 것은 체감의 원리입니다. 괴성을 지르고 온갖 난폭한 행동을 하던 아이도 같이 뒹굴고 속삭여주고 안아주면 스르르 긴장이 풀리게 돼요. 어머니가 두려워하면 그 불안과 공포가 전해져 아이는 더욱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게 되죠.”
그간 수백 명의 발달장애아동을 대하면서 이제는 아이의 표정만 봐도 자신을 ‘꼬집을지, 물지, 할퀼지 ’예상할 수 있다는 김 목사는 껴안기 요법을 통해 발달장애아 치료에 긍정적인 효과를 많이 볼 수 있었다고.
발달장애의 예방과 치료에 있어 무엇보다 어머니와 아이의 정서적 상호작용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는 가족이 함께할 시간이 부족한 요즘 세태가 안타깝다. 아이는 출생 후 첫 대인관계 대상을 어머니로 생각하는데 고작해야 출산 휴가 2개월 후면 직장으로 돌아가는 어머니와는 아이가 충분한 감정교류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발달과정에 있어 생후 30개월 이전은 몹시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발달장애 예방을 위해서라도 산후휴가는 법적으로 대폭 늘어나야 할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이의 감정적 상호작용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학습되니까요.”
김 목사는 맞벌이 부부와 모성 부재의 가정이 늘어나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의 발달과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따라서 발달장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부모와 아이가 몸으로 접촉하는 생활을 해야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아이들이 흙냄새를 접촉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TV와 컴퓨터 등을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머니는 가급적 아이들과 장시간 놀아주면서 상호작용을 하고, TV를 안 보는 대신 자녀와 함께 사물을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취학 전 아동은 과열된 조기교육이 아니라 건강한 자아를 만드는 데 교육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타인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회적 자아도 함께 형성될 수 있단다.
이런 그의 신념에서 출발한 ‘자연요육원’은 1993년, 한국 특수요육원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5천 평의 큰 규모로 형성됐다. 아파트 환경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유해 물질과 유해 환경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동물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해놓은 곳이란다.
발달장애아는 신체적 감각이 발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요육원 안에는 효과적이고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한 프로그램이 4명의 교사와 함께 준비되어 있다.
“정서적인 욕구 충족 없이 공부만 시킨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부모와 자녀, 부부간에 사랑과 스킨십을 더 많이 행해야 합니다. 아이는 가족을 통해 인간관계를 시작하고 기본 행동양식을 설정하게 되니까요. 사랑을 통해 부모와 가정의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아이의 긍정적 자아를 형성하는 지름길 아닐까요.”
팔방미인인 김 목사의 다음 프로젝트는 어린이를 위한 뮤지컬의 대본을 쓰는 것. 아들이 자폐아인 이충영 감독의 애니메이션 ‘트리팡 파이터’의 제작자였던 그는 작품의 내용을 보강해 뮤지컬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승언이가 언니와 함께 안양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에요. 하루는 승언이가 몸이 아파 학교를 못 가게 됐는데 승이가 수업이 끝난 지 한참 만에 집에 왔어요 . 알고 보니 친구들의 놀림을 피하려고 담벼락과 전봇대 뒤에 숨어 가까운 길을 하염없이 돌아온 거였어요. 극중에서 승언이는 그런 언니에 대한 울분 때문에 파이터가 되는 설정이에요.”
뇌성마비 딸의 치료를 위해 발달장애 연구를 하고, 상담학 박사 학위를 따고, 아동문학가가 된 김일권 목사. 가족에 대한 사랑을 원동력으로 하는 그의 노력과 정성이 이제 더 많은 장애아동들과 함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