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은 고집불통이다. 한번 고집을 부리면 좀처럼 꺾기가 힘들다. 그래서 참았다가 하루 날을 잡아서 고집을 꺾곤 한다.  오늘은 밤에 다니엘을 데리고 경대에 갔다. 경대에 가면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쫒아 다니는 것은 무척 고단한 일이다. 무엇보다 나의 통제와 지시를 거부한다는 것이 문제다. 또 반항적인 기질이 있어서 오른쪽으로 가자고 하면 왼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라고 하면 오른쪽으로 간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청개구리'이다. 오늘도 오른쪽으로 가자고 하니 왼쪽으로 간다고 했다. 내가 오른쪽으로 가자 아들은 왼쪽으로 가 버렸다. 그래서 30M가량 여유를 두고 미행을 했다. 내가 따라가지 않자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불안해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다. 나도 30M 떨어진 위치에서 쪼그리고 앉아 동태를 살핀다. 9시부터 시작한 신경전이 11시30이 되었다. 이 정도면 굉장한 충격을 받았으리라. 내가 먼저 일어나서 아이의 주위를 맴돌며 '다니엘이 어디 갔지, 아빠는 집에 가야겠다'. 독백을 한다. 그러자 녀석이 벌떡 일어나 내게로 뛰어왔다. 이날 이후로 자기 멋대로 하는 습성이 많이 교정이 되었다.  이를 통해 한가지 배운 점은 고집은 꺾는다고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고집을 피우면 아예 적극적으로 피우게 해서 자기 고집에 걸려 넘어져서 생고생을 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을 배운 하루였다. 우리아이들은 몸으로 체험한 고생에 대해서는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다시 똑같은 고생을 반복하기 원치 않는다. 본능적으로 쾌락추구원리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자폐 성향의 아이들에게 사회성과 체력을 길러준다는 이유로 부모들이 가장 흔히 보내는 장소가 수영장과 태권도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수영은 아이들이 곧 적응을 하고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태권도는 마지못해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도 다니엘에게 수영과 태권도를 시켜 주고 싶었다. 그러나 여건상 기회가 잘 맞지 않았다. 또 다니엘은 계집아이처럼 온순해서 태권도 같은 과격한 운동을 싫어한다. 나는 아이가 싫은 것에 대해서는 억지로 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피아노다. 피아노를 가르치고자 생각한 지는 오래 되었다. 다니엘이 소리에 민감하고 특히 찢어지는 듯한 기계음 소리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내심 다니엘이 악보를 알고 음을 알면 미세하게 분화된 청각이 피아노 연주에 큰 도움을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악성 베토벤이 자신의 청각장애를 딛고 '운명'을 작곡한 것 처럼 같은 장애출신(?)으로서 공통분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레임이었다. 대개 자폐 성향의 아이들이 예술성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해서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다.  다니엘과 다혜를 2주 전부터 
동네의 가정집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곳에 보내고 있다. 다혜는 피아노를 좋아하지만 다니엘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하다.  피아노 학원에 데려가려면 녀석의 고집과 싸워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녀석이 나를 이렇게 또 실망시키는구나.  다니엘아! 너는 도대체 잘 하는 것이 뭐니? 너의 숨겨진 천재성을 언제나 나타내 보일거니? 피아노도 아니라면 또 다른 무언가가 있겠지. 아빠는 결국 찾아내고 말거야. 아빠가 오늘 조금 실망하고 섭섭했지만 이 밤이 지나면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겠지. 

35세를 지나면서 체력적으로 달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평소에 운동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처음에는 아내와 나 자신을 위해서 운동기구를 샀는데 오히려 아이들이 좋아한다. 바깥놀이는 흥미가 없는 듯 하다. 또 날씨가 추워서 운동을 시키기가 쉽지 않았는데 집안에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로.지 운동을 하면서 다니엘이 횟수를 헤아리면서 자연스럽게 백 단위의 숫자를 틀리지 않고 연속적으로 말하게 되었다.  다니엘은 요즘 학습에 흥미를 붙여 책 한 권을 잡으면 끝을 볼 때까지 손을 놓지 않는다. 다니엘은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이 있다. 일종의 집착증세도 보인다. 특히 숫자에 대한 집착이 강한데 거리에 주차한 차의 차번호를 다 읽어야 한다. 아내와 나는 이 문제로 의견교환을 많이 하는데 우리는 이 집착을 꺾기보다 양성화시키고자 한다. 숫자에 대한 집착을 통해 수학공부에서 두각을 나타내도록 돕고자 한다. 수학을 아예 정복하면 자신감도 생기고 또 좋아하는 숫자에 대한 포만이 형성되면 더 이상 집착하지 않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결과는 6개월 후에 중간점검을 해보리라. 

다니엘이 토끼에게 당근을 주었다. 그런데 토끼 한 마리가 당근을 독차지하고 먹기 시작했다. 다니엘이 그 토끼에게 '토끼야, 사이좋게 먹어야지. 혼자 먹으면 못된 어린이야'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우리가 자주 다니엘에게 쓰던 표현인데 녀석이 이 문장을 기억하고 토끼에게 말했다.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놀랐지만 너무 감동 스러워 눈물이 날 뻔했다. 토끼는 다니엘에게 정서순환뿐 아니라 자연스런 대화의 상대가 되는가 보다. 또 토끼구경을 하러 동네 아이들이 오면서 다니엘 친구가 많아지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다니엘이 어린아이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한번은 캠퍼스에서 이제 갓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자기에게 다가오자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간 기억이 있다. 아직까지 왜 갓난아기를 그렇게 무서워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마도 어른이나 큰 아동은 자기를 배려해 주지만 어린아이들은 저마다 자기중심적이고 불도저식 이어서 자기가 감당하는 것이 벅차지 않았나 추측해 볼뿐이다. 이사와서도 옆방의 2살 난 임마누엘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가정에서 통합교육을 한 지 며칠만에 다니엘이 임마누엘에 대한 두려움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통합교육의 첫 번째 열매를 땄다. 

올해가 토끼해이고 또 오래 전부터 토끼를 사주고 싶었는데 오늘은 마음먹고 토끼를 샀다.  애완용토끼는 너무 작아서 다니엘이 주물럭거리면 곧 죽을 것 같아 큰 토끼를 샀다. 다니엘은 토끼를 만지기도 하고 먹이도 주곤 한다. 또 마루에 토끼를 풀어놓으면 다니엘이 무척 좋아한다. 토끼가 온순하고 배설물이 깨끗해서 애완동물로 괜찮은 듯 하다. 미국 정신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정서순환을 위해서 동물과 어울려 친구가 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다니엘이 다른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온순한 토끼를 통하여 살아있는 생물체와 상호작용 하는 중간자역할을 기대해 본다. 


오늘 다니엘이 줄자를 가지고 놀았다. 줄자를 길게 잡아 당겼다가 놓으면 자동으로 되감기는 동작이 재미가 있었나 보다. 감길 때 빠르게 감기기 때문에 조금은 위험해 보였지만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 좋아 보여서 그냥 두고 지켜보았다. 그런데 녀석이 줄자로 TV크기도 재어 보고 집안에 있는 모든 사물의 크기를 쟀다. 그리고 그것이 정확히 몇cm인지 알아 맞추었다. 처음에는 짧은 길이만 재어 보더니 조금씩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아주 길게 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놓으니 순식간에 줄이 자동으로 감겼다. 그 순간 다니엘이 터트린 말이 "깜짝 놀랐다"였다. 녀석의 외마디 비명에 이런 문장도 익혔구나 생각하니 나 자신이 '깜짝 놀랐다'. 녀석이 겁이 많아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좀처럼 노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줄자는 겁이 나면서도 신기한가 보다. 한 참을 놀다가 아니나 다를까 결국은 줄자에 손이 베었다.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녀석은 피나는 손가락을 들고 나에게 달려와 '피난다'라고 외쳤다. 후시딘을 발라 주었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흡족하지 않았나 보다. 테이프를 붙여 달란다. 며칠 전 동생이 다리를 다쳤을 때 엄마가 1회 밴드를 부쳐 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밴드를 부쳐 주었다. 자기 손에 흐르는 피를 보며 '피난다'소리를 할 수 있는 아들이 자랑스럽다.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피를 좀 흘리는 것은 대수롭지 않다. 피 흘리는 안타까움보다 '피난다' 이 소리를 할 수 있는 아들이 고맙기 때문이다. 내일은 줄자로 이 녀석의 키를 재어 보아야겠다.  

줄자로 물건을 재다

 친척중에 미술교습소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 미대졸업반이었는데 우리가정의 형편을 이야기하고 가정교사로 초청했다. 다니엘에게 하루를 지도해 보더니 자신이 없다고 했다. 다니엘이 가르친대로 따라하지 않고 수업내내 자기 고집대로 했기 때문이다. 예상한 결과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그래서 다니엘에게 초점을 두지 말고 동생인 다혜중심으로 가르치라고 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성공이었다. 그동안 특수교사가 우리집으로 와서 다니엘을 개별지도할 때 다혜가 오빠를 많이 부러워했다. 그런데 미술선생님은 자기선생님으로 생각하고 찰싹 달라붙어서 애교를 떠는 것이었다. 갑자기 선생님을 빼앗긴 다니엘은 시기심이 생겨서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때때로 고집을 피울 때마다 무시하고 선생님이 다혜와 공부했기 때문에 다니엘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이 원리는 필리핀에 있을 때부터 터득한 정상아동 우선원칙의 원리이다. 덕분에 요사이 다니엘과 다혜는 미술선생님께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고 열심히 색칠공부를 한다.
 

정상아동 우선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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