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투표를 하고 교회내의 4가정이 어울려 볼링을 치러갔다.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갔다. 되돌아 나오는 볼링 공을 닦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다. 그나마 서로 닦아 줄려고 싸운다. 다른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공닦기를 하는 동안 다니엘은 숫자에 집착해서 점수판의 숫자만 쳐다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닦은 공으로 어른들은 신나게(?) 즐긴다. 오늘은 다혜가 친구 예지와 서로 공을 닦으려고 하다가 돌아나오는 공 사이에 눌려서 다쳤다.  아내가 공닦던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 그러자 ball girl(?)들이 한쪽 구석으로 퇴장했다. 그러자 다니엘이 슬그머니 공을 닦기 시작했다. 여자 아이들이 서로 재미있게 공을 닦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닦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틈바구니에 끼이지 못했던 것이다. 사회성이 아직은 부족한 게다. 집에 돌아오니 4시가 되었다. 공휴일인데 아이들을 위해 배려해 주지 않고 어른들만 놀다 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할인점에 갔다. 할인점에서 다니엘을 위해 장난감 총을 샀다. 총은 평소에 사 주고 싶던 것이었다. 다니엘이 자기 나이 또래 아이들이 관심있어 하는 것들에 동일한 흥미를 갖도록 도와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아이들 사이에 물총놀이를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래서 다니엘에게 물총을 사 주었더니 또래 아이들과 조금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피카츄열풍이 불 때 다혜는 신발,옷,학용품 모든 것에 피카츄그림이 있는 것을 골랐지만 다니엘은 그 열풍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다니엘에게 피카츄열풍 따라하기를 가르쳤다. 그래서 요즘은 포켓몬에 대해서 제법 알고 있다. 오늘은 사내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 총에 관심을 갖도록 돕고 싶었다. 장난감 총 중에서 렌즈가 부착된 총을 골랐다. 다니엘이 사람이나 물체에 focus를 두고 응시하는 부분이 약하다. 자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에서는 종종 가자미 눈을 한다. 그래서 렌즈를 통해서 사물을 정확히 조준하고 총을 쏘는 훈련을 하다 보면 물체에 대한 인식력과 대상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 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또 심리적으로 위축이 많은 다니엘이 물체를 쓰러뜨리는 연습을 통하여 도전적인 성향을 갖도록 돕고 싶었다. 녀석이 내 마음을 아는지 제법 폼을 잡고 쏘더니 기어코 표적을 한번 쓰러 뜨렸다. 나는 크게 칭찬을 해 주면서 다니엘아! 총 쏘는 것 재미있지? 하고 물었다. 녀석의 대답은 간단했다. "재미없어" 내일 부터는 다혜와 표적맞추기 게임을 해야겠다. 그리고 과녁을 맞추면 과자를 상품으로 주어야겠다. 내가 굳이 다니엘에게 이런 놀이를 의도적으로 시키고자 한 것은 최근에 다니엘이 학교에서 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반친구와 다툼을 하다가 스스로 위축이 되어 우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 가면 반애들이 누가 다니엘을 울렸는지 정보를 준다. 그래서 그 아이를 부르면 그 아이는 바짝 긴장을 한다. 그러면 나는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 덤어 준다. 그리고 "다니엘이 하고 같이 놀기가 힘들지? 네가 많이 도와줘야 한다." 하면 그 아이는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앞으로 도와 주겠습니다." 한다. 그렇게 나는 또래 교사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다니엘이 다른 아이를 때려서 울려주는 날이 오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지만 나는 감히 그런 꿈을 꾼다. 올해 내로 남자 아이는 못 때려도 여자 아이라도 한 명 울렸으면 좋겠는데...

연구소의 앞뜰에 오이,고추,토마토,가지,수세미와 장미꽃을 심었다. 연구소에 오는 장애아동들이 직접 심게 하였고 이름표까지 달아 주었다. 앞으로 자기 이름이 적힌 모종에 각자 물을 주고 가꾸도록 했다. 외국에는 치료실에 들어오는 긴 정원에 온갖 꽃을 심어 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시설에 온다는 느낌을 갖지 않고 예쁜 꽃밭으로 온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고 한다. 우리 연구소에는 작년부터 꽃을 심었는데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꺾어 가는 바람에 화단이 흉물처럼 되었다. 새 봄과 함께 울타리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꽃과 모종을 심었다. 다니엘, 다혜가 너무 좋아했다. 다혜는 나팔꽃씨를 직접 심었다. 7월경에 나팔꽃이 필 예정이다. 다니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주고 싶어 안달이다. 아내는 집에도 심자고 제의했다. 그래서 오후에는 꽃시장에 갔다. 오색만발한 꽃내음이 너무 좋았다. 아이들은 각양각색의 꽃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연구소에 심은 종류와 비슷하게 꽃과 모종을 샀다. 집에는 좀 더 많은 종류의 꽃을 심었다. 울타리도 만들었다. 나는 심고 다니엘은 물을 주었다. 그동안은 다니엘의 교육과 바쁜 생활로 집을 제대로 가꿀 여가가 없었다. 낡은 한옥건물이라 청소를 해도 표도 잘 나지 않는 집이다. 그래서 그냥 대충대충 살아왔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꽃도 심고 대청소도 하니까 집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나는 오늘 아들과 함께 부자간에 나란히 꽃도 심고 물도 주면서 사람사는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다니엘이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이다. 나는 항상 내 힘에 버거운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까지 쉴새없이 달려가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삶의 멋과 여유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다. 나는 내 인생에서 끊임없는 물음표(?)를 던지고 느낌표(!)를 찾느라 골몰하였지만 다니엘은 나에게 쉼표와 때로는 마침표의 의미를 가르쳐 주고 있다. 흙삽을 떠면서 내가 아들 다니엘 때문에 많이 변했구나! 느끼며 또다른 느낌표(!)를 찾은 하루였다. 다니엘아! 아빠는 계속 아빠가 너를 가르친다고 생각하는데 잠시 멈추고 돌아서 보면 언제나 그렇듯이 네가 나를 가르치고 있구나!

오늘은 교회에서 체육대회를 갖는 날이다. 우리 교회는 대학생선교회(캠퍼스 미션)다. 학생회,학사회가 따로 모여서 체육대회를 가졌다. 2세들이 많이 자라나서 2세 달리기 순서도 있었다. 다니엘에게 달리기 1등해서 상을 타오라고 했다. 녀석은 달리기 안한단다. 4월5일은 식목일이니까 식목을 해야 한단다. 녀석의 고집에 대처하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어제 시장에서 고추,가지와 토마토모종을 사왔다. 식목일이니까 식목을 하고 달리기 하러 가자고 약속했다. 더 이상 회피할 명분이 없어진 녀석은 집앞 화단에 나와 함께 고추,가지,토마토를 식목(?)하고 물을 주었다. 2세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딸은 아빠와 손을 잡고 달리고 아들은 엄마와 손을 잡고 달리는 게임이었다. 딸은 아빠의 손을 잡고 쏜살같이 달려서 여유를 부리며 1등을 했다. 이제 다니엘 차례다. 우리는 저 멀리서 상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게임이 중단되고 있었다. 녀석의 고집이 시작된 것이다. 9조에 편성이 되었는데 조의 번호가 마음이 안든다는 것이다. 1조로 바꾸어 달란다. 몇 주전에 학교에서 8번이 마음에 안든다고 9번으로 바꾼 경험이 있어 상황이 마음에 안들면 숫자를 트집잡아 고집을 부린다. 그래서 1조로 정정해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오늘은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바람이 잠잠하니까 이제는 먼지가 없어야 한단다. 교회식구들은 이미 다니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느긋하게 기다려준다. 그런데 뒷 조에도 아이들이 달리기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냥 지체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실격처리했다. 체육대회에서 달리기를 해야 한다고 그렇게 사전교육을 했건만 결국은 녀석의 고집에 질 수밖에 없었다. 또 속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축구공을 가지고 가서 혼자서 뻥뻥찼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돌아오니 훌라후프 돌리기 시합이 준비되어 있었다. 자원해서 나갔다. 교회식구들은 지원자 중에 제일 연로(?)한 나에게 격려의 고함을 질러 주었다. 응원이었는지 야유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앞조에서 2세들 중에 가장 잘 돌리는 아이의 폼을 모방해서 열심히 돌렸다. 대표로 출전한 선수들이 대개 20대이고 자매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참가해서 눈요기감의 show차원이었다. 그러나 호각소리와 동시에 나의 훌라후프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예상을 뒤엎고 1등을 해 버렸다. 선배,후배들이 언제 훌라후프를 연습했냐고 물었다. 연습은 무슨 연습! 그동안 다니엘을 데리고 등산하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면서 자연히 건강관리가 되었고 DDR을 추면서 몸이 유연해 졌을 뿐이다. 다니엘은 30대 후반인 나에게 20대의 열정과 정력속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특혜를 베풀어 준 것이다. 이제 마지막 경기인 1000m계주 차례가 되었다. 아내에게 출전을 강요했다. 사모들이 1번 주자로 나가야 하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나는 다니엘, 다혜를 데리고 아내를 응원하러 갔다. 응원도 응원이지만 다니엘에게 달리기가 재미있는 것이고 신나는 게임인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엄마가 달리기 선수로 뛰니까 녀석도 신기한 듯이 쳐다 보았다. 그리고 엄마 파이팅도 외쳤다. 아내는 응원의 힘을 얻어 1등으로 바통을 터치 해 주었다. 후발 주자들이 그 1등을 끝까지 잘 지켜 계주에서 1등을 했다. 계주 이전에 우리 조가 꼴찌였는데 점수 배점이 가장 높은 계주에서의 점수 덕분에 종합 2위를 했다. 아내는 그 공로로 여자 최우수 선수에 뽑혔다. 상품으로 사물정리함을 받았다. 녀석에게 엄마가 달리기 1등을 해서 상을 탔다고 자랑했다. 사물 정리함은 다니엘 용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앞으로 사물 정리함이 어디서 나왔느냐고 묻고 달리기를 잘 하면 상품을 탈 수 있다고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학교에서의 가을 운동회까지 꾸준히 달리기 시합을 연습시켜야겠다. 

다니엘이 말을 시작하게 되면서 부딪히는 문제중의 하나가 존댓말 사용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에게는 반말을 쓰다가 다른 어른에게는 경어를 사용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온말이든 반말이든 말을 한다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고 또 고마웠기 때문에 경어사용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말로써 자기의사 표현을 하게 되면서 아무에게나 반말을 사용하는 것이 입술에 익숙한 언어가 된 것이다. 유치원에 있을 때의 일이다. 유치원이 마칠 즈음에 중년의 할아버지와 내가 나란히 아이를 데리러 오게 되었다. 그런데 녀석이 하는 말이 가관이다. 중년의 할아버지를 보더니 "요것은 누구를 데리러 왔지?" 나는 화들짝 놀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 버렸다. 할아버지의 얼굴에 붉은 단풍잎이 들었다. 나는 녀석에게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라고 시켰지만 녀석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 속으로 젊은 놈이 자식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있구만 하고 욕을 하셨을 게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예절교육에 문제의식을 갖고 교육하고 있는 중이다. 존댓말을 가르치기 시작하게 되면서는 자기 또래나 그 아래의 아이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엄마,아빠에게도 경어를 사용하도록 교육해야겠다. 또 동생 다혜에게 '네'하고 대답할 때 마다 그때 그때 바로 잡아 주어야겠다. 

요즘의 아이들은 다 왕자,공주처럼 자라나기 때문에 일반아이들도 버릇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장애아이들이 행동이 못 따라오고 통제가 잘 되지 않아도 언어사용에서 예의가 있으면 어른이든 아이든 인내하고 기다려 줄 수 있다. 우리 연구소에 오는 아이중에 말은 유창하지 않지만 말끝에 꼭 존칭을 붙이는 아이가 있다. 아동을 치료하는 교사의 입장에서도 이런 아이가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또 다른 아동은 말을 아주 잘한다. 그런데 존칭을 적절히 사용하지 못한다. 초등학교에 들어 가서도 선생님의 이름을 부를 때 이름 세자만 부르고 뒤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자주 생략한다. 한번은 이 아동이 걸어가시는 선생님의 뒤통수를 향해 '누구야'하고 선생님의 이름만 달랑 불렀다. 그 선생님은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넘어지셨다고 한다. 그 후로 이 아동은 선생님께 매를 맺는 횟수가 많아졌다. 장애아이들은 무엇이든 처음 배울 때 제대로 배워야 한다. 우리아이들은 무엇이든 새기는 대로 각인이 되기 때문에 다시 바로 잡는 다는 것이 그만큼 힘이 드는 것이다. 다니엘과 나는 이제 눈앞에 놓인 또 하나의 등산을 시작해야 한다. 예절교육! 

내 차에는 매일 아침 5명의 아이들이 타고 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에 함께 간다. 다니엘은 자기 반의 친구들과 아침마다 반 강제로 차안에서 만나야 된다. 차안에서 녀석은 친구들과 부딪히는 것이 힘든가 보다. 내가 다니엘아, 친구에게 인사해야지. 하면 녀석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창밖의 전봇대나 헤아린다. 아니면 한국어도 아니고 필리핀말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낸다. 처음에는 반 친구들이 다니엘과 대화를 꺼려 하고 자기들 끼리만 떠든다. 그러면 나는 속상하다. 친구들과 한 공간에 있는 이 짧은 시간을 놓치기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다니엘에게 말을 걸도록 유도한다. 그동안의 노력이 성과가 있었는지 오늘은 다니엘이 전봇대를 헤아리기 전에 바울이가 아! 저기 전봇대다. 하고 먼저 시작했다. 다니엘의 관심사를 친구가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그러자 모두들 전봇대를 찾느라고 난리다. 또 녀석이 오늘도 이상한 말을 하니까 친구들이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녀석은 신이 난 듯 더 이상한 말들을 지어냈다. 친구들이 깔깔 웃으며 따라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간판의 글씨를 읽기 시작했다. 자기가 지어낼 수 있는 이상한 말들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애아들은 자기의 욕구가 다 채워지면 스스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상황으로 되돌아 오는 법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전봇대만 헤아리는 아이는 조금 이상한 아이지만 간판을 읽는 것은 일반아동들도 다 하는 것이다. 다니엘이 스스로 일반아동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상황으로 돌아 온 것이다. 다니엘이 차안에서 친구들에게 관심갖고 그들에게 다가 가기가 어렵지만 친구들이 자기의 이상한 행동을 따라 해 주었을 때 친구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일반아들이 장애아를 모방해 주면 장애아도 일반아동을 모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통합환경에서 일반아동의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자기 자식이 장애아를 모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염려할 것이 못된다. 일반아동이 장애아를 모방한다고 절대로 장애아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려서부터 장애아와 함께 하는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인성교육이 되어 도움이 필요한 친구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따뜻한 인간미를 갖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입시위주의 열악한 교육환경에서는 도무지 배울래야 배울 수 없는 것이 인성교육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주장한다. 장애아와 일반아동이 통합된 환경에 있으면 장애아동보다 더 유익을 얻는 쪽은 일반아동이다. 장애아는 누구나 어디를 가든 일반아동과 함께 살아야 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일반아동은 장애아들과 함께 할 기회를 다 갖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 차를 타고 다니는 바울이,예은이,하영이가 모두 복되다고 생각한다. 감히 자폐성향을 가진 우리 아들을 만나고 그의 사고세계에 동참하는 특혜를 누릴 수 있다니... 어릴 때부터 자신의 지성과 감성으로 다 깨달을 수 없는 대상들을 자주 접하는 것이 그 아동의 IQ,EQ계발에 좋다고 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자기가 갖고 있던 지각의 틀을 깨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단히 자신이 갖고 있는 지각의 틀을 깨는 과정을 통해서 사고력,상상력이 풍부해 지는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영재교육에 관심이 많다. 우리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영아에게 영어방송을 과다하게 청취하게 해서 정서장애를 만드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IQ,EQ가 모자라MQ(도덕지수)까지 들먹이며 좋은 교재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IQ,EQ,MQ를 한꺼번에 교육하는 방법은 장애아와 통합된 교육기관에서 교육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니엘이 졸업한 어린이 집에서 장애아와 일반아동이 2:8의 비율로 통합되어 교육을 받는데 그런 환경에서 자란 일반아동이 얼마나 똑똑하고 인성교육이 잘 되어 있는가를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어린이집은 KBS에서 방송이 되기도 했다. 이 중요한 사실을 일반아동의 부모들이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나 애통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바울이와 하영이의 부모들에게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다. 특히 바울이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장애가 있는 내 아들과 한 반에 짝꿍이 되게 허락해 주었다. 바울이는 교실 밖으로 나갈 때는 항상 다니엘을 챙긴다. 자기도 적응하려면 힘들텐데 더 못 따라 하는 다니엘까지 챙겨 주려면 힘이 들게다. 우리 속담에 검은 자의 곁에 있으면 나도 검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수동적으로 회피적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내가 희면 검은 자가 내 곁으로 와서 그도 희게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살아야 한다. 바울이 부모가 그런 철학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 나는 바울이가 다니엘로 인해서 더욱 총명하고 좋은 인성을 갖춘 아이로 자라날 것을 믿는다. 내일 아침이 기다려 진다. 다니엘이 내일은 차안에서 무엇을 쳐다 볼까?

오늘은 초등학교에 입학 한 후 두 번 째 맞는 토요일이다. 오늘은 다니엘,다혜,바울이,예은이를 데리고 동물원에 갔다. 공작이 날개를 활짝 펴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금계는 7가지 찬란한 빛깔을 뽐내었다. 즉석에서 아이들에게 퀴즈대항을 벌였다. 금계가 입고 있는 색깔은? 4명의 아이들이 경쟁적으로 색깔을 말했다. 그러면 나는 딩동댕!하고 화답을 해서 아이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준다. 표범의 눈은 무슨색? 하니 다혜가 검정색이라고 하였다. 다니엘은 갈색이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갈색바탕에 검은 눈동자다. 동물의 눈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독수리는 발톱을 어떻게 하고 있지? 물으니 모두 손가락을 날카롭게 곧추 세우고 흉내를 내었다. 다니엘도 따라했다. 원숭이 똥구멍이 튀어 나왔는데 어떤 모양이야? 물으니 다니엘이 두 손을 모으고 가장 모범적으로 흉내를 내었다. 다른 3명은 한가지 동물에 30초이상 머물러 있지 않는데 다니엘은 가자고 할 때까지 끝까지 쳐다 보았다. 이게 웬 감사제목인가? 동물원에 그렇게 자주 데려 왔지만 애써 외면하던 녀석이 아니었던가? 오늘은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한가지 흠이라면 첫 번째 동물인 조랑말부터 1번,2번 번호를 매기면서 보는 수학의 집착뿐이었다. 또 3시는 자기 기준으로 쉬는 시간인데 코끼리에게 간다고 하니 고집을 부리며 울었다. 유치원에서 3시는 휴식시간이었나 보다. 그래서 1시30분이 지나면서 10분 단위로 지금 몇시냐고 물었다. 3시에 꼭 쉬어야 하기 때문이었나보다. 사자를 보러 갔는데 사자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실망한 아이들에게 사자가 자는 모습을 흉내내어 보라고 시켰더니 모두들 그 자리에서 훌러덩 누워서 자는 모습을 흉내내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에 우스움과 함께 배움이 찾아왔다. 그래! 나이가 먹더라도 아이들의 저 해맑은 웃음과 천진난만함을 내 속에 모셔두어야지. 2시30분에 내가 개별치료하고 있고 논문대상인 아동을 만났다. 12시30약속이었는데 서로가 아이들에게 끌려 다니느라 늦게 만났다. 우리는 비누방울 불기를 했다. 먼저 선생님인 내가 불면 의자에 앉아있던 아동들이 일어나서 방울을 터뜨린다. 먼저 비누방울을 터뜨린 아동이 다음 비누방울을 불 수 있게 했다. 또 비누방울을 불어서 가장 멀리 날리기 대회, 가장 많은 방울을 불기대회등을 했다. 아이들이 흥분이 되어서 게임에 몰입했다. 주위에서 놀던 아기도 허락없이(?) 대회에 동참했다. 다음에는 조를 짜서 귤을 바통으로 삼고 이어 달리기를 했다. 일반아동 2명과 장애아동1명이 각각 조를 이루었다. 일반아동들은 자기 팀이 이기기 위해 장애아동의 손을 붙잡고 함께 달려갔다. 아이들은 그렇게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물찾기를 했는데 보물은 귤이었다. 내가 귤을 숨기면 아이들이 찾도록 했다. 다음에는 교대로 귤을 숨기게 했다. 중간에 장애아이들에게(다니엘포함) 귤을 숨기게 했다. 논문대상아동은 중증자폐아동이기 때문에 엄마와 함께 했고 다니엘은 혼자 숨겨보도록 시켰다. 그런데 녀석이 무엇을 숨긴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자에 귤 3개를 나란히 놓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자기가 숨긴 귤을 자기가 찾고자 하였다. 실웃음이 저절로 났다. 자폐아이들은 마음의 장님이라고도 표현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다니엘이 다른 아이들이 자기가 숨긴 것을 찾지 못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이런 훈련을 집에서 자주 하다보면 다른 아이들의 마음에 접촉할 수 있는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까 기대해 본다. 어쨋든 다니엘도 경기 도중에 일반아동들과 경쟁해서 자기 힘으로 몇 번 귤을 찾아내었다. 자기 힘으로 귤을 찾아들고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아빠에게 돌아오는 아들의 의기양양한 모습! 일반아동의 부모들이 어찌 이 쾌감과 쓰릴을 알 수 있으랴! 마라톤의 금메달을 딴 황영조선수의 아버지가 귤 하나 찾아서 돌아오는 아들을 맞이하는 나만큼의 기쁨과 희열을 맛보았을까? 

다니엘이 이제 오목을 두면 5판 중에 1-2판은 아빠를 이긴다. 다니엘이 항상 한 수를 먼저 두게 하지만 나도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도 꼼짝없이 지는 경우가 흔하다. 고등학생인 사촌 형에게는 5:5로 백중세다. 그래서 이제는 장기를 가르칠 때가 된 듯하다. 그런데 동양장기는 한자로 적혀 있어서 식별이 어렵다. 반면 서양장기는 모양이 재미있고 또 쉽게 식별이 되기 때문에 서양장기를 먼저 가르치기로 했다. 아들 때문에 나도 서양장기를 배우게 되었다. 다혜는 어린이 집에서 또래 아이로부터 서양장기를 두는 법을 배운 모양이다. 다혜는 수개념이 약해서 오목은 배우지 못하는데 서양장기는 흥미를 가지고 배우려고 했다. 그래서 같이 함께 가르치고 있다. 오목의 원리를 터득한 다니엘은 다혜보다 더 쉽게 체스를 이해했다. 체스에 푹 빠져 이제는 오목은 두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아침에 바울이가 학교에 가기위해 우리집으로 오더니 다니엘과 체스한판을 붙었다. 바울이는 아직 체스를 두지 못했다. 자폐성 아이들의 가장 약한 부분이 사회성이고 특히 또래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이 가장 힘들다. 어른들은 자폐성향의 아이들에게 환경을 적절하게 구조화시키는데 반해 또래아이들은 양보가 없고 도발적이고 예측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아이들은 또래 아이들과의 놀이상황에서 쉽게 위축된다. 오늘 아침에 다니엘,바울이 함께 체스를 두는 것을 보며 다니엘,바울이를 함께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니엘은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체스에서 다니엘이 더 많이 이길 것이다. 다니엘이 자기 또래와의 놀이나 게임에서 이겨 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경쟁하지 않으려 한다. 또 또래아이들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다니엘이가 잘 하는 게임을 통해서 또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워 주어야겠다. 바울이가 이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 주어야 한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이번 한 주 학교생활에 적응해 준 아들에게 감사한다. 다니엘은 입학식날부터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몸이 좋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텐데 감기까지 걸렸으니 오죽 힘이 들었겠는가? 그동안 지켜보는 아빠는 애간장이 다 녹았다. 학교생활의 스트레스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지금 몇시야? 하고 묻는 아들이 여간 안스럽지가 않았다. 자기 몸이 힘들다고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아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서 열이 펄펄 나도 아침이면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그것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신기한 것은 다니엘이 작년에 유치원에서 적응하는 것보다 학교에 훨씬 더 잘 적응한다는 사실이다. 작년에 유치원에 갈 때는 문앞에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해서 여간 수고스럽지가 않았다. 또 수시로 유치원 안갈래! 하고 데모를 해서 설득하느라 힘들었다. 그래서 초등학교라는 산이 내게는 너무나 큰 태산으로 보였었다. 그런데 현재까지 물론 아직 1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니엘이 초등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유치원 환경이 자폐성 아동에게는 더 감당하기 힘든 환경인 것 같다. 다니엘이 다닌 계명 유치원은 학교 교실크기의 최소한 1.5배는 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활동을 한다. 그런데 초등학교는 자기 자리가 고정이 되어 있어서 교실에 들어가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없다. 사람과 부대끼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환경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물론 case by case겠지만. 다니엘이 넓은 유치원과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연단이 되어서 비교적 아담하고 차분한 아이들이 있는 학교 환경이 더 견디기 쉬운 모양이다. 어쨋든 수고한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풀어준다는 차원에서 어린이회관에 데려갔다. 옆짝인 바울이와 바울이 동생 예은이, 다니엘,다혜 4명이 함께 갔다. 바울이 어머니는 나 혼자서 아이 4명을 데리고 간다고 하니 놀라신다. 4명이 아니라 내 차에 탈 수 있는 인원까지는 혼자 감당이 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없어져도 나는 찾으러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목자가 수백마리의 양떼를 키울 때는 양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양이 없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으면 절대로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도 아이들이 몇 번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 나는 개의치 않고 열심히 김밥을 먹었다. 내가 김밥을 다 먹을 즈음에 아이들이 돌아왔다. 오늘 하루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나도 신나는 하루였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신났다. 솔직히 지난 한 주 녀석들보다 더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나다. 나는 사격장에서 아이들이 요구하는 표적을 맞추었다. 줄을 타고 올라가는 인디언을 명중시켜서 떨어뜨렸다. 아가씨를 쏘니 치마가 뒤집혔다. 아이들에게 교육상 좋지 않았다. 그러나 어른인 나에게는 색다름이 있었다(웬 밝힘!). 나는 군시절 KGB(?)요원이었다. 사격을 하면 어쩌면 그렇게 용하게 과녁을 피해갔다. 심지어 표적지 종이조차 꿰뚫지 못하는 실력이었다. 그런데 이 날은 15발중 13발을 명중시켰다. 꼬마기차를 타면서 작은 터널을 지날 때 나 혼자 흥분해서 야!하고 외쳤다. 약간의 해방감이 밀려왔다. 집에 돌아오자 바울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많이 고무되어 있었다. 자기 자식을 야외로 자주 데려 나가지 못했는데 내가 대신 데려 나가주니 고마울 수 밖에.. 아무튼 우리 아이들까지 4명을 평일에 돌보느라 애쓰는 바울이 어머니의 수고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매주 토요일은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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