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바로 D-day다. 다니엘도 입학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지 새벽6시부터 일어나서 지금 몇시야?를 묻는다. 평소같으면 아침9시나 되서야 일어날 녀석인데.

 아침을 먹으면서 다니엘아, 오늘 입학식하지? 하고 물으니 입학식안해! 했다. 순간 긴장이 감돌았다. 그러자 곧 5월에는 소풍가지! 하고 독백을 한다. 5월1일도 소풍가고 5월 2일도 소풍간단다. 자기 스스로 입학식에 대한 부담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하는 중임을 아빠는 알고 있다. 

5월에는 계속 소풍만 간다고 우기면서 눈앞에 닥친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고 있는 아들의 마음씀씀이를 아빠는 알고 있다.

 그런 아들이 너무 대견했다. 입학식하는 운동장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벌써 줄을 서고 있었다. 

다니엘은 교회의 친구자녀들인 바울이, 하영이와 같은 반인 3반이 되었다. 교감선생님 이하 선생님들의 배려가 있었다. 

이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선생님은 이름을 확인하고 명찰을 주었다. 다니엘은 자기 이름을 호명할 때 대답하지 않고 한 손만 내밀었다. 

네!라고 대답하고 두 손을 내미는 훈련을 그렇게 시켰건만 실제상황에서 발휘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다니엘이 명찰을 핀으로 고정시켜 놓았는데 손으로 다 뜯어 버렸다. 왜 뜯었냐고 물으니까 테이프로 붙여야 한단다.

 며칠 전 까지 유리테이프로 종이를 붙이는 것에 재미를 붙였는데 명찰표도 그렇게 붙이고자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집은 시작되었고 선생님은 학부모님들은 뒤로 물러나라고 하셨다. 그래서 맡기고 물러났다. 

그러자 다니엘이 3반줄에서 이탈해서 2반줄에 가서 서 있었다. 6학년에게 상견례하는 자리에서 모든 신입생들이 뒤로 돌아 6학년 선배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는데 자기는 제일 뒷자리에서 그대로 서서 신입생들의 인사를 혼자 다 받고 있었다.

 오늘따라 입학식이 왜 이리 길어보이는지 교장선생님은 교감으로 계시다가 이번에 처음 교장발령을 받으셨단다. 그러니 또 오죽 열성이 계시겠는가? 그럭저럭 마음을 졸이는 가운데 입학식이 끝났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다니엘이 선생님이 주신 안내통지서를 끝까지 들고 있다가 아빠에게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또 3반에서 2반으로 자리를 짧게 이탈했을 뿐 전체적으로 크게 눈에 나지 않을 정도로 입학식에 협조(?)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반 줄에 선 것은 지난 번 예비 소집일 때 2반 교실에서 종도 치고 놀았기 때문에 자기는 2반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다시 물어보니 자기가 3반이란다. 담임선생님이 이쁘냐? 못생겼나?하고 물으니 이쁘다고 한다. 

선생님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선생님이 이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자기 나름대로는 선생님에 대한 관심을 가졌나보다. 돌아오면서 다니엘이 오늘 입학식을 참 잘 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아빠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다니엘이 맛있는 것을 사 주겠다고 했더니 자기는 조금 잘 했다고 한다. 조금 잘 했으면 오렌지쥬스를 먹고 많이 잘했으면 포도쥬스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는 조금 잘 했기 때문에 오렌지쥬스를 먹어야 한단다. 

자기가 명찰로 고집을 피운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가게에 가서 오렌지 쥬스를 고른 후 다혜에게 과자를 사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혜가 좋아하는 통키통키를 고르는 것이 아닌가? 얼마 전부터 네가 오빠니까 동생을 챙겨주어야 한다고 주입교육한 것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다혜가 무엇을 좋아하는 가를 알고 있고 동생을 위해 과자를 고르는 다니엘을 보며 다 키웠구나! 싶고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 준 아들에게 무척 감사한 하루였다. 

엄마에게 명찰사건을 이야기 해 주니 바늘끝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며 엄마가 살살 잘 달아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연구소의 교사인 박선생님이 옷을 벗고 먼저 달고 난 후 옷을 입혀 보라고 했다. 그러자 다니엘이 안심하고 옷을 입었다. 아빠인 나보다 나은 엄마의 모습이다. 내일은 9시30분까지 등교해야 한다. 아침9시가 되면 다니엘과 같은 반이 된 바울이, 하영이,그리고 같은 반은 아니지만 같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기광이가 우리 집으로 몰려 올 것이다. 학교가 멀어서 내가 아이들을 학교까지 태워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학교적응하는데 이 친구들이 많이 도와줄 것이다. 선생님께 바울이와는 짝꿍으로 같이 앉혀 달라고 특별주문을 해 놓았다. 세상에는 엄마의 치마바람보다 더 무서운 아빠의 바지바람이 있다는 사실??? !!!

할인점에서 DDR을 샀다. 오늘은 열심히 했더니 D(드디어)D(다리에)R(알이 배었다.) 어제는 처음했더니 꿈에 절벽을 등산하는 꿈을 꾸었다. 조금 연습하니 옛날 실력(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막춤으로 한Dance했음)이 나오는 것 같다. 원래는 아이들을 위해서 샀는데 아내와 내가 줄서서 돌아가며 애용한다. 다니엘이 처음에는 하지 않으려 하더니 우리가 너무 흥에 겨워 춤을 추니까 완전 개다리춤을 연상하는 동작으로 펄쩍펄쩍 뛰었다. ddr을 산 이유는 다니엘의 교육에 도움이 될까 해서다. 연구소의 수업에서 알림장을 적는데 다니엘이 조금 느리게 적는 편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알림장을 적으면 하루의 학교생활이 끝난다. 그런데 다니엘이 동작이 굼뜨니까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적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자극이 왔을 때 바로 반응을 할 수 있는 순발력 훈련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니엘이 아직 시끄러운 소리자극에 대해서 혐오적인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극복을 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ddr은 좋은 학습교재가 된다. 오늘은 녀석이 자기 입으로 ddr에서 댄스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조성모의 후회라는 곡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앞으로 계속 소리를 볼륨업해서 소리자극을 극복시켜야겠다. 아내와 내가 다니엘에게 DDR의 기회를 더 많이 주어야 할텐데....

오늘은 다니엘이 한 해 동안 다닌 유치원을 졸업했다. 다니엘이 다닌 유치원은 교육부 지정 시범 유치원이 된 지 2년째다. 

그래서 어느 해 보다 교사들이 열심히 했다고 한다. 계명대학교 부설 유치원이라 규모도 크다. 대구시내 가장 좋은 유치원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유치원이다. 그래서 이 유치원에 경쟁률이 높다고 한다. 이런 유치원에서 쫒겨나지 않고 졸업해 준 다니엘이 대견하다. 

그런데 오늘 졸업식장에서의 다니엘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다. 

졸업식장에 들어서자 학부모들이 빽빽이 모여서 사람을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들었다. 

교실에 들어가니 엄청나게 많은 무비카메라들이 자기 아이의 졸업장면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바쁘게 돌아가고 예식장용 대형 무비 카메라는 노란 불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다니엘은 기겁을 하고 자기 반 아이들의 좌석대열에 앉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부모 대기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다니엘이 극복하지 못한 부분 중 하나가 노란 불이다. 한때는 모든 불빛에 거부반응이 있었는데 지금은 흰 불빛은 극복했다. 

그러나 여전히 노란 불 앞에는 가자미눈을 하고 피한다. 

한편 다혜는 자기 반에서 가장 모범적이어서 앞에 나가 대표로 병아리반 졸업장을 받았다. 딸은 가장 모범생이고 아들은 가장 열등생인 셈이다. 

졸업식 내내 아들은 사진 한 장 찍어주지 않았다. 대신 맨앞에 있는 딸에게 나도 다른 부모들에게 질세라 부지런히 플래쉬를 터뜨렸다. 

딸도 내 마음을 아는 양 여우처럼 다양한 포즈를 취해 주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자기 반에서 선생님과 마지막 악수를 하고 기념촬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다니엘은 여전히 무비카메라가 못마땅하다. 아빠가 앞에서 사진을 찍을려고 불러도 한번도 고개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자기 반의 여자 아이가 혼자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그 여학생과 함께 사진을 찍고자 했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는 다니엘과 함께 찍기를 거부했다. 이 모습을 지켜 보던 아내는 열을 많이 받았다. 따돌림의 실체를 잠깐 엿본 것이다. 나 역시도 기운이 많이 빠졌다. 

녀석이 오늘 같은 날 엄마,아빠의 기분을 맞추어 줄줄도 알아야 하는데... 평소실력을 그대로 다 보여 준 것이다. 

이럴 때면 우리 부부가 입맞춰 하는 말이 있다. 초등학교에 가서 적응이나 하겠나? 저녁때까지 기분이 뒤숭숭하고 해머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그런데 곰곰이 다니엘의 문제행동을 분석하는 가운데 한가지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결론을 미리 말하면 다니엘의 문제행동은 다니엘의 개인의 문제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아빠도 원인제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니엘이 보여주는 행동 하나 하나가 어쩌면 아빠의 삶이 그대로 아이의 행동속에 투영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자꾸 온전치 못한 행동을 하는 아들만 탓하고 그로 인해서 쉽게 스트레스를 받지만 어쩌면 아이도 완벽하게 자기의 요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부모로부터 동일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내는 그래도 이번 졸업식을 준비한다고 졸업하기 하루 전에 미용실에 데리고 가서 아이의 머리를 깎아주었다. 

한편 아빠인 나의 자세를 살펴보자. 나는 이번 주에 다니엘이 졸업한다는 사실은 듣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아이의 졸업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별로 없었다. 나는 대개 다니엘의 일과생활에 큰 변화가 있으면 최소한 한 주전부터 다니엘에게 주지시킨다. 아이도 마음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진학에 대해서는 몇 달 전부터 마음을 예비시키고 있다. 그런데 졸업식을 앞두고는 내 마음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다. 

오늘 아침에 다혜가 나에게 넥타이를 주며 매라고 했다. 그리고 양복을 입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다혜야 오늘이 주일도 아닌데 왜 양복을 입으라고 하니? 하고 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다혜는 오늘이 졸업식이니 아빠가 정장차림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요구였다. 

그러나 나는 다혜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하고 평소에 입던 대로 방한복에 운동화를 신고 졸업장에 갔다. 10시30분까지 오라고 했는데 우리는 10시45이 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도중에 필름도 준비하지 못해 사야 했다. 

졸업식장으로 가는 도중에 학부모들이 꽃을 고른다고 분주하다. 그제서야 꽃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하고 아내에게 사오라고 했다. 아내도 내 마음을 아는 듯 가장 싼 5000원짜리 꽃을 사왔다. 

한의사 아들의 첫 유치원 졸업식의 축하꽃에 단돈 5천원을 투자하는 가정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도 조금 아깝다. 그 만큼 우리 가정은 실용적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째째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가정에는 우리 가족의 복지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사명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맡기신 물질을 아무렇게나 쓰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쨋든 부모마음에 준비되지 않은 아들의 졸업식이었다. 자연히 아들 자신도 준비하지 못한 졸업식이었다. 그러니 문제행동을 보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나는 다니엘에게 다니엘아! 졸업식은 너무 기쁜 날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 주러 오는 날이란다. 아빠는 사진기로 가끔씩 플래쉬를 터뜨리지만 다른 사람들은 무비카메라를 들고 1시간 내내 찍는단다. 불빛이 비치는데 너 어떻게 할거니? 하고 준비를 시켰어야 했다. 

다니엘아! 미안하다. 사실 졸업식장에서 성질같아서는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한 대 올리고 싶었다. 모자라 보이는 너의 행동을 지켜보는 아빠보다 쏘아대는 라이트를 피하느라 네가 더 힘들었겠구나. 3월3일 초등학교 입학식때는 아빠가 실수하지 않을께. 오늘 저녁은 아들의 졸업식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외식을 했다. 돈가스도 사주고 할인점에서 장난감도 사주었다. 할인점에만 가면 아이들이 먼저 비싸면 안되! 10가지 넘게 사면 안되!라고 외쳐서 우리 부부를 무안하게 만든다. 오늘은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들이 선택하는 것을 사주었다. 어차피 꽃값을 절약했으니까......

명절 때 미국 Triton에서 선교사역을 섬기시던 선교사님이 오셨다. 10년만의 귀국이며 윷놀이를 해 본지 17년이 되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윷놀이 한 판을 벌였다. 내기를 한 판돈이 약 5만원이 나왔다. 1만원여원은 아이스크림 사 먹고 나머지는 선교사님이 미국으로 돌아가실 때 쓰도록 헌금했다. 그런데 어른들이 노는 동안 아이들은 다른 방에 내몰려 있었다. 다니엘,다혜는 우리가 윷놀이를 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끼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날 저녁에는 다른 가정에서 또 모여 윷놀이 2탄을 벌였다. 이 때도 아이들은 끼이지 못했다. 저녁에 돌아온 다니엘은 엄마와 윷놀이를 해야겠단다. 윷이 없어서 연필에 청테이프를 붙여서 윷을 만들었다. 다니엘, 다혜가 너무 좋아했다. 다음 날 아예 윷을 사 주었다. 그 날 이후로 매일 우리는 강제로 윷놀이를 해야 한다. 그런데 다니엘이 윷판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빨리 나고 이기게 되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또 윷말도 직접 놓게 되었다. 오늘은 말을 두 개를 놓고 두는 법을 가르쳤다. 조금은 혼동이 되는 모양이다. 그동안은 말 하나만으로 게임을 했다. 두 개의 말을 놓게 되면 때로는 업쳐야 하기도 하고 자기 말이 잡힐 위기에서는 진행중인 말을 멈추고 새 말을 놓아야 하는데 아직 그런 응용력은 없어 보였다. 이번 주까지는 말 네 마리를 두는 법을 가르치고 다음 주 부터는 뒤또, 낙방(윷에 빨간 점을 찍어 빨간 점이 나오는 또는 낙방으로 규정)의 개념을 가르쳐 보아야겠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전통 윷놀이가 아이들의 정서함양과 두뇌개발에 탁월한 것 같다. 상호작용,사회성,놀이가 되는 것은 기본이다. 요즘 다니엘은 자기 가방에 윷을 아예 넣고 다닌다.얼마 전 까지만 해도 초등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새로 산 가방을 메지 않는다고 하더니 윷을 가지고 다니기 위해 초등학교 가방을 메기 시작한 것이다. 새천년이 되어서 일반 아이들은 영재교육을 한다고 영어학원에 다니고 컴퓨터교육을 받는 이 시대에 우리 아이는 바둑을 두고 윷놀이를 즐긴다. 우리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2010년에 중간평가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재교육,영재교육하는데 무엇이 진정으로 영재교육으로 가는 길인지 나와 내 아들 다니엘이 The way를 말할 수 있기를 .....

빙고게임은 가로,세로 다섯 줄씩 그어서 칸 안에 1에서 25까지 숫자를 기입한다. 그리고 서로 돌아가면서 숫자를 부르고 부른 숫자는 색칠을 해서 가로나 세로, 대각선에서 한 줄이 모두 색칠이 되면 빙고라고 부른다. 다니엘은 숫자를 좋아한다. 그래서 빙고를 아주 좋아한다. 다혜도 같이 할 수 있는 놀이이다. 그런데 다니엘이 귀여운 것은 자기가 숫자를 부를 때는 아빠인 나의 패를 다 보고 나에게 좋은 번호를 불러주지 않는 다는 점이다, 아빠를 이기기 위해서 머리를 쓰는 것이다. 자기가 빙고가 되면 춤을 추고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오목두기만 두려고 하더니 최근에는 빙고에 푹 빠져서 빙고게임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이 점이 문제인 것이다. 일종의 집착이다. 그래서 나는 오목 한판 하고 빙고 한 게임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아빠의 제안은 항상 묵살당한다. 그런데 오늘은 오랜만에 오목을 다시 두었다. 아직은 내가 많이 봐주면서 둔다. 그런데 얕잡아 보다가 3판을 졌다. 아마 조만간 장기게임으로 넘어 가야 할 것 같다.

다니엘이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수학문제를 풀면 대개 100점을 맞지만 받아쓰기를 하면 몇 문제씩 틀린다. 그래서 받아쓰기는 좀처럼 하지 않으려 한다. 바둑두기(오목)를 하면 자기가 이길 수 있는 사람과만 둘려고 하고 자기를 이기는 사람과는 잘 두려고 하지 않는다. 또 바둑을 두면서도 '내가 이겨야 돼' 하면서 은근히 져 주기를 요구한다. 다니엘은 대개 실수를 잘 하지 않는다. 자라면서 보통의 아이들은 깨지고 터지면서 자란다. 그러나 다니엘은 항상 돌다리를 두들기며 건넌다. 처음에는 아이가 소극적이고 조심성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자라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이것이 성격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수를 허용할 수 없는 완벽추구의 성향을 가진 아이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빠인 나의 성향을 물려받은 듯 하다. 어쨋든 다니엘의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은 자면서도 자기를 조절해서 이불에 오줌을 싸는 일이 없는데서 나타난다. 그런데 어젯밤에 이불에 오줌을 쌌다. 내가 알기로 이번이 두 번째다. 두 번 모두 자기 전에 물을 많이 마셨다. 그런데 녀석의 반응이 귀엽다. "엄마, 오줌쌌다. 미안해." 아내와 나는 즐겁다. 자라나는 아이가 이불에 오줌싸는 것은 당연한 발달과정이다. 8살의 나이에 자기가 오줌쌌다는 사실이 부끄러운가 보다. 아침에 내가 다니엘이 오줌쌌니? 하고 심술궂게 물으니 안쌌다고 거짓말한다. 요즘은 거짓말도 곧잘 한다. 그러면 아빠는 심술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아이를 코너로 몰아넣는다. "다니엘아, 조금 쌌니? 많이 쌌니?" 녀석은 금새 말려든다. "조금 쌌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진실치 못해서가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상황을 모면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아이에게 진실을 가르쳐야 한다. 자폐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데 우리 아이가 그런 점에서는 자폐의 그늘을 벗어난 듯 하다. 

나는 목욕탕에 갈 때마다 다니엘,다혜를 데리고 간다. 엄마보다 아빠가 힘이 더 좋으니까 아이들의 때를 더 잘 밀어주기 때문이다. 목욕탕에 들어가면 다혜는 가장 빨리 옷을 벗고 오빠를 도와주려고 한다. 다혜는 오빠가 항상 느리고 자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고 다혜가 오빠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항상 다혜에게 다니엘이 얼마나 똑똑한 오빠인가를 의식적으로 심어주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글자를 다 읽을 수 있고 수학을 잘 한다. 뿐 아니라 컴퓨터를 제 마음대로 요리한다. 가끔씩 녀석이 내 컴퓨터를 가지고 장난을 쳐 놓으면 내가 원상복귀를 하지 못한다. 다니엘은  I.Q가 모자라지는 않는데 비해 다혜는 J.Q(잔머리 굴리는 I.Q)가 뛰어나다. 어쨋든 오늘도 다혜가 오빠에게 도와줄 일이 없나 살핀다. 아내와 나는 아침에 출근시간에 쫒기기 때문에 다니엘이 옷입는 일을 거의 도와준다. 그래서 다니엘이 아직 완벽하게 자기 옷을 혼자 입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내가 다니엘에게 옷입는 법을 가르치는 유일한 시간이 목욕할 때이다.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혼자 옷을 벗고 목욕을 마치고 혼자 옷을 입게 하는 것이다. 벗는 것은 아무렇게나 벗으면 되지만 입을 때는 그렇지 못하다. 벗을 때 뱀이 허물벗듯이 벗어놓기 때문이다. 그러면 옷을 뒤집어서 입는 법을 배워야 한다. 솔직히 이 시간이 내게는 무척 괴로운 시간이다. 옷을 입는 데 대개 30분에서 1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 목욕을 마치고 나와 있는 사람들 앞에서 모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다. 그러나 사람을 의식하는 수준을 졸업한 지는 이미 오래다. 목욕탕 주인 아저씨는 아들과 내가 30분 이상씩 옷입는 씨름을 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이는 가 보다. 그런데 오늘은 그동안의 훈련이 결실을 맺어 약 20분만에 마쳤다. 녀석도 스스로가 대견스러운 가 보다. 

다니엘이 수학의 원리를 깨우치는 것을 보고 생활속에서 수학을 응용하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바둑은 집중력과 사고력을 길러준다. 또 한 사람이 하나씩 교대로 두기 때문에 상호작용에 도움을 주므로 사회성과 연결이 된다. 지금은 오목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인 친척형을 이길 정도로 실력이 있다. 어떻게든지 5알의 바둑을 모으기 위해서 가로, 세로, 대각선을 연결하고자 계획하는 모습이 여간 대견스럽지가 않다. 오목을 두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자기 삶을 계획성있고 차분하게 꾸려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앞으로 아빠인 나와 오목두기를 해서 10번 중 1번이라도 자기 실력으로 이길 정도가 되면 장기두는 법을 가르쳐 주리라. 현재 자기 엄마에게는 가끔씩 이기는 수준이다. 나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2학년때 나에게 장기를 가르쳐 주셨다. 나도 1년 후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 장기를 가르쳐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장기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장기알은 다양한 행로를 살아가는 병사들의 싸움터다. 아들이 변화무쌍한 장기의 세계를 이해하고 장기알을 조절할 수 있을 때 나는 '내 아들이 장애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낫노라'고 하늘을 행해 두 팔을 높이 들리라. 정녕 그 날이 속히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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